時間입니다(최승자)
[시쓰는 가을] 세 번째 시
時間입니다(최승자)
과거를 현재로 살고 있는 사람들
파먹을 정신이 없어서
과거를 오늘의 뷔페식으로
섞어 먹는 사람들
언제쯤 그 정신이라도
끝날 날이 없을까
그 정신 뷔페식을
같이 먹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사람들
그냥 꿈결이었다고
건너 뛸 수는 없을까
해 지고 달 떠도
정신은 아귀아귀여서
과거의 바윗덩어리라도
삶아 뜯어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
과거 때문에 현재도 미래도
다 놓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찰칵찰칵 시간이 잘 지나갑니다
혹은 엘리엇的으로 時間입니다 時間입니다
출처:<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지성사,2011
‘아, 그때 좀 잘할걸!‘
‘하, 그때 참 좋았는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질문이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후회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에 아쉬움이 하나도 없기는 어렵겠지요. 지금보다 나은 과거였다면, 한 번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고요.
오늘의 시, ‘時間입니다(최승자)’는 시간에 관한 시입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편안하게 읽히지 않는 시였어요. 시에는 ’정신‘이라는 시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정확히 시인이 어떤 의도로 정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거든요. 제가 시를 고르는 가장 우선적인 기준은 ’편안하게 잘 읽히는 것‘인데, 이 시는 그 기준에 부합하는 시가 아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시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요.
‘과거 때문에 현재도 미래도/ 다 놓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찰칵찰칵 시간이 잘 지나갑니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과거를 현재로 살고 있는 사람들, 과거 때문에 현재도 미래도 다 놓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어요. 과거에 매여 현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으니까요. 당장 제가 가르치는 열여덟 살 아이들만 하더라도,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도 미래도 다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샘, 저 이제 수시는 못 가요! 1학기 기말고사 완전히 망쳤어요.”
“샘, 저 중학교 때는 진짜 공부 좀 했거든요?”
“샘, 저 정시 준비하려는데 지금까지 해 놓은 게 하나도 없어요.”
“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딴짓하지말고 공부할 걸 그랬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정말 많이 듣는 말들입니다.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과거를 아쉬워하며 당장 오늘 해야 할 공부를 놓치는 아이들, 과거의 성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오늘을 직시하지 못하는 아이들. 이미 그 시간들을 지나온 제게는 더없이 안타깝고 아깝기만 합니다. 어제 말고, 지난 학기 말고, 작년 말고, 오늘 네 몫을 하라고 해도 아이들은 오늘의 자리에 어제를, 지난 학기를, 작년을 놓고 불안해해요.
하긴, 이렇게 말하는 저라고 뭐 다를까요. ‘아, 그때 미리 좀 해둘걸. 그때 다른 선택을 할걸. 그때, 그때….’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수시로 과거에 현재를 내어주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래도, 적어도 ‘과거를 오늘의 뷔페식으로 /섞어 먹는‘ 일에 익숙해지지는 않으려 어제보다는 오늘을, 지난주보다는 이번주를, 지난해보다는 이번해에 집중하는 연습을 합니다.
오늘 글의 마무리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책 <라틴어 수업>(한동일)의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하려 합니다. 내일의 해가 밝아 다시 ‘오늘‘이 오면, 한 상 가득 차려질 ‘오늘의 뷔페식’에서 유통기한 지난 과거는 과감히 덜어내 보시기를!
인간은 오늘을 산다고 하지만 어쩌면 단 한순간도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와 오늘을 비교합니다. 미래를 꿈꾸고 오늘을 소모하죠. 기준을 저쪽에 두고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그때보다, 그때 그 사람보다, 지난번 그 식당보다, 지난 여행보다 어떤지를 이야기해요. 나중에, 대학 가면, 취직하면, 돈을 벌면, 집을 사면 어떻게 할 거라고 말하죠. 재미있는 것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니라는 거예요. 1강에서 소개한 라틴어 동사 활용표를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과거와 관련된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 시절의 로마도 다르지 않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것도, 과거에 매여 오늘을 보지 못하는 것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요? 10대 청소년에게도, 20대 청년에게도, 40대 중년에게도, 70대 노인에게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때이고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이에요. 시인 호라티우스와 키팅 선생의 말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입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라틴어 수업, 1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