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에 달렸어요(정현종)
[시쓰는 가을] 다섯 번째 시
마음먹기에 달렸어요(정현종)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
마음에 저절로 물드는
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
있는 그대로 물드는
그 그림자들도
마음먹은 뒤에 그래요.
마음을 먹는다는 말
기막힌 말이에요.
마음을 어쩐다구요?
마음을 먹어요!
그래서
안되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마음먹으니
노래예요.
춤이에요.
마음먹으니
만물의 귀로 듣고
만물의 눈으로 봐요.
마음먹으니
태곳적 마음
돌아보고
캄캄한데
동터요.
출처:<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벌써 9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속도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금세 2023년도 끝나버릴 것 같네요. 하루하루는 참 긴데, 일 년 이 년은 어쩜 이토록 빠른지!
오늘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강연자가 “마음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어요. 어떤 이는 가슴에 있다고 했고, 어떤 이는 머리에 있다고 했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마음이 온몸에 마치 혈관처럼 얽혀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고장 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힘이 다 빠집니다. 어디 한 곳을 지정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무너져요. 반대로 마음이 가뿐하면 몸의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차오릅니다. 온몸 구석구석까지 볕이 들어요.
사실, 마음은 실체가 없죠. 신체 어디에도 ‘마음’이라 이름 붙은 곳은 없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울고 웃고 기쁘고 괴롭고 아프고 행복합니다. 마음이 놀라운 이유입니다.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죠.
‘마음먹기에 달렸어요(정현종)‘는 이 놀라운 ‘마음’에 대한 시예요. 마음먹기에 달렸다,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다, 너무나 흔한 말이지요. 화자는 ‘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기막힌 일이라고 해요.
‘먹다’의 1번 뜻은 ‘음식 따위를 입을 통하여 배 속에 들여보내다.’입니다. 이 뜻에서 의미가 파생되어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품다.’라는 뜻도 생겼어요. 실체가 분명한 음식과 실체가 없는 마음 뒤에 ‘먹다’라는 단어가 함께 쓰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단어의 의미 파생 과정을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음식을 먹는 행위나 마음을 먹는 행위는, ‘비어있던 곳을 채운다’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음식을 먹으면 배가 채워지고, 마음을 먹으면 삶이 채워집니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기관을 통해 몸의 에너지가 채워지고, 마음을 먹으면 생각과 행동을 통해 삶의 에너지가 채워져요.
마음먹으면 삶이 노래고 춤입니다. 세상만물이 들리고 보여요. 처음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고, 어둡던 밤이 물러간 자리에 동이 틉니다. 희망과 기쁨이 가득 찬 시행들로 시는 끝을 맺습니다.
어떠신가요? 마음먹기에 달렸다,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마음먹으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이 말들에 동의하시나요? 저는 100% 동의합니다만,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도 100% 동의합니다.(마음먹고 못한 일들이, 마음먹는 데서 끝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기억에 스치네요.) 실체도 없는 것을 먹으려 하니, 참으로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마음먹어보세요!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물론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건 분명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너무 가뿐하게 해 보시라 말씀은 차마 못 드리겠네요. 일단 마음먹기 전에 밥부터 든든히 드셔보시길! 배부터 든든히 채워지면, 마음도 먹어볼 자신이 생기지 않을까요? 마음에 휘둘리기보다는, 꿀꺽! 삼켜버릴 용기가 날지도 몰라요!
그러니 내일은 꼭 아침 든든히 드시고 출근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