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풀리다(유안진)
[시쓰는 가을] 열세 번째 시
오해, 풀리다(유안진)
그랬어?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그래서
그토록
그렇게도
그랬었구나.
출처: <거짓말로 참말하기>, 천년의 시학, 2008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오해로 멀어지는 관계가 생깁니다. 저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는데요. 고등학생 때 만나, 가장 어려운 시간을 오롯이 함께 했던 친구들과 멀어진 일입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지긋지긋할 만큼 붙어 지내면서도 한 번도 지겹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친구들이었어요. 부모님의 이혼을 처음 고백했던 친구들이기도 했고, 서로의 집을 제 집처럼 오가며 일상을 함께 하던 친구들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바다를 함께 갔던 것도, 서로의 첫사랑과 연애사를 속속들이 공유했던 기억도 모두 그 친구들과의 추억입니다. 주고받은 마음만큼이나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당시 한창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도 참 많이 찍었었지요.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더라도, 그 친구들의 존재는 제 삶에서 너무나 큰 부분이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과 마찰이 생겼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편이 되어 저를 지켜준 친구들도 그 친구들이었어요. 서로의 부모님을 다 알았고, 서로의 부모님들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친구 사이였지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새로 만나는 인연이 주는 신선함에 빠졌고, 고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생활에 그저 신이 났습니다. 그 와중에 용돈을 벌어 써야 했고, 장학금을 받아야 대학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이었기에 공부에 쏟아야 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친구들과 조금씩 소원해졌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들은 늘 거기에 있어주리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모두 다 각자의 대학생활에 바빴기에,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조금 덜 만나도 우리 사이에는 금이 가지 않으리라 자만했어요.
정말로, 자만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서너 번 모일 때 한 번쯤 얼굴을 비출까 말까 했던 저는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만 몰랐던 것 같아요. 어쩌면 친구들도 의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러는 사이에도 친구들은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인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고, 저는 여전히 과거완료형인 우정에 매달려 있었어요.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임용 시험을 치고, 혼자 타지로 취업을 해서 고향을 떠나면서 친구들과의 인연은 완전히 끝이 나버렸습니다.
마흔이 된 지금, 십 년도 더 지난 일을 떠올리는데 여전히 가슴이 아립니다. 친구들과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졌구나, 느꼈던 날. 저는 묻지 못했어요. 왜냐고 물었을 때, 제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제 잘못을 듣게 되면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더 솔직히 말해 ‘이제 우리는 네가 싫어.‘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친구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제 삶에 빠져 친구들의 어려움을 살피지 못했던 저의 철없는 시간들이 서운했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누구에게(그것도 한때 가장 사랑했던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까 겁이 났어요. 돌이키지 못할 마음이라고 단정했기에, 친구들의 진심을 묻기보다는 오해한 채로 그냥 끝내는 편이 서로에게 나은 선택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해, 풀리다(유안진)’를 읽으며, 마음이 턱. 막혔습니다. 오래 묵은 마음에 사래가 걸린 것처럼 한참 동안 시간의 기침을 해야 했어요. 특별한 비유도 없고, 특정한 상황 묘사도 없이. ‘그랬어?’로 시작해 ‘그랬었구나’로 끝나는 이 짧은 시에서 이렇게 묵은 마음이 터질 줄이야.
이 시는 제목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시인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없는 시입니다. 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오해, 풀리다‘는 시 본문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요. 그러나 제목과 시를 함께 읽으면, ’아, 정말 이런 게 오해가 풀리는 과정이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첫 행이 ’그랬어?‘로 시작하는 것이 의미심장해요. ‘오해’의 사전적 의미는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 또는 그런 해석이나 이해.’입니다. 오해는 오해하는 사람의 ‘해석’이나 ‘앎’에 문제가 생긴 상황입니다. 그릇된 해석이나 잘못된 앎을 바로 잡으려면 물어야 해요. ‘네 마음이 그랬어?’라고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그럼/그렇지’ 하고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오해했음을 확인해야,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까지 나아가면 다음은 ‘그러니까 (네 마음이 그랬던 거구나) / 그래서 (네가 그랬던 거구나) / 그토록 (어려운 마음이었구나) / 그렇게도 (생각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끝내는, ‘그랬었구나’ 하며 깊은 오해를 풀 수 있어요.
과거의 저는 ‘그랬어?’ 물을 용기가 없었습니다. 오해를 풀어보고자 대화하고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여기까지로 인연을 정리하는 편을 선택했어요. 그때는 그 편이 덜 힘든 선택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선택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노력했다고 해서 오해가 풀리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더 나쁜 기억으로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오해, 풀리다‘라는 시를 읽자마자 그 친구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여전히 그때의 기억은 아프고 아리게 남아 있나 봅니다.
모두 어디선가 잘 살아가고 있겠지요. 여전히 듣지 못한 그들의 마음을 오해한 채로, 이제 와 새삼 그들의 안녕을 소망해 봅니다.
지금 곁에 있는 인연들과는 이유조차 묻지 못한 채, 오해하며 멀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 봅니다. 어쩌다 오해가 생기더라도‘그랬어?’ 먼저 물어야지, 마음을 묻고 답하기에 주저하지 않으며, 마음의 실타래는 엉키기 전에 잘 풀어내야지, 용기를 다져봅니다. 그리하여 이들만큼은, 오래오래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인연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원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