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정호승)
[시쓰는 가을] 열네 번째 시
창문(정호승)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은 닫으면 문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이 창이 되기 위해서는
창과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창문이
닫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는 데 평생이 걸렸다
지금까지는
창문을 꼭 닫아야만 밤이 오는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창문을 열었기 때문에
밤하늘에 별이 빛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제 창문을 연다
당신을 향해 창문을 열고 별을 바라본다
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여행>, 창비, 2013
날씨가 참 좋은 계절입니다. 일교차가 심하긴 하지만, 하늘도 바람도 온도도 어디 하나 아쉬울 틈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이내 찬바람에 휩쓸려 가버릴 계절이란 걸 알기에 더욱 귀하고 값진 날들입니다.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건, 역시나 날씨 때문이겠지요. 날씨 때문에, 날씨를 핑계로, 습관처럼 창문을 열고 한껏 숨을 들이켜게 됩니다. ‘아, 좋다!’ 감탄사가 절로 나와요.
창문을 열면 바깥이 보입니다. 창문을 닫아두어도 보이지만, 열고 보면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어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작고 사소한 것들이 보입니다. 느껴지지 않던 바람이 느껴지고, 나지 않던 향기가 감돕니다. 창문을 열든 닫든, 안의 공간은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져요. 모든 것이 제자리인 것 같아도, 창문을 열기 전과 후는 결코 같은 공간일 수 없어요. 내가 문을 열어 바깥의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바람, 향기 같은 것들이라고 할지라도요.
‘창문(정호승)’은 창문의 존재 이유에서 출발하는 시입니다.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고, 문도 아니며 오직 ’벽‘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창문을 닫아둘 목적이라면 부러 창을 만들 필요가 없지요. 그저 벽이면 충분합니다. 단단한 벽의 일부를 허물어 틀을 세우고 문을 다는 것은, ’열기 위함‘입니다. 창문을 닫아야만 밤이 온다고 생각했던 화자는, 창문을 열어 밤하늘의 별을 발견합니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당신의 모습’을 발견해요. 내내 닫아두었던 창문을 열고 보이지 않던 밝고 환한 것들을 마주합니다.
창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안의 사람입니다. 창문이 있는 공간의 소유자예요. 그냥 문은 바깥에서도 열 수 있지만, 창문은 반드시 안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창문이 창이 될지 벽이 될지는 창문의 소유자만 결정할 수 있어요. 그래서 창문을 여는 것이 더욱 쉽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바깥이 너무 추우면 어떡하지, 너무 시끄러운 어떡하지, 반갑지 않은 이를 마주하면 어떡하지… 상념이 끊이지 않습니다.
감히 확신할 수는 없으나, 시의 표현을 빌려보면 창문을 열어야만 보이는 별이, 당신이 있다고 해요. 내가 마음의 창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에야 보이는 빛이, 보이는 인연이 있습니다. 내가 닫아두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들이요. 이 글을 쓰는 동안, 몇몇의 인연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고단하던 때에, 그저 꽁꽁 숨어버리고 싶던 때에 만난 귀한 인연들이요. 나의 고단함에 갇혀 웅크리고 있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던 인연들. 뒤늦게 열어본, 마음의 창으로 별빛처럼 환하게 쏟아진 인연들.
창문을 열어두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이박 삼일의 연휴 동안 마음의 창문도 함께 열어 선하고 맑은 가을 공기로 환기를 해야겠습니다. 열어둔 창문 밖에서 저를 호명하며 손 흔드는 인연과 가을볕처럼 따사로운 추억도 많이 만들어보겠습니다.
모두 기꺼운 연휴 보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