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선풍기를 위하여(엄원태)
[시 쓰는 가을] 열다섯 번째 시
늙은 선풍기를 위하여(엄원태)
고모님께서 한 십년 쓰시다가
미국 이민 가시면서 물려주신 일제 산요 선풍기가
우리집에 온 지도 이십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해마다 여름 맞아 이놈을 꺼낼 때마다
속초 처가 진돗개 진희를 겹쳐보게 됩니다
새끼들 쑥쑥 잘 낳아 퍼뜨리며 한 이십년 가까이 잘 늙어
웬만한 사람보다 속깊던
진희의 무심한 듯 검고 깊은 표정을 떠올리곤 합니다
진희처럼 새끼들을 낳지는 못했지만
이젠 이놈도 생을 다해가는 건지
철사로 된 얼굴에서 세월과 존재의 섭리랄까
일생이라는 것의 한 심연을 언뜻 드러내 보입니다
이젠 바로 일번을 누르면 이놈이
금세 돌아가지 않고 그으응, 하고 신음소릴 냅니다
살살 다뤄달라고, 말을 하게 된 게지요
목덜미의 꼭지를 뽑으면 목이 돌아가야 하는데
디스크라도 걸렸는지 관절 더덕거리는 소리만 내면서
오십견 온 내 목덜미며 어깨처럼 삐딱하거나
제멋대로 돌다 서다 하면서 고집을 피웁니다
한번씩 얼굴을 가린 철망을 변검술처럼 훌러덩 벗어버릴 때도 있어
가족들을 놀라게 할 때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비록 생명 없는 이놈의 물건이지만
이름 하나 붙여줘야 하는 건 아닌지요
출처:<물방울 무덤>, 창비,2007
오래된 물건에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물건이지만, 쉽게 대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들이 있어요. 기억은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것이지만, 사람의 기억이 덧대어진 물건은 더 이상 ‘물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손때가 묻은 물건, 나의 과거가 녹아 있는 물건, 너와 나의 시간이 담긴 물건. 그런 것들은 낡고 해져도 쉽게 버릴 수가 없어요.
‘늙은 선풍기를 위하여(엄원태)’의 화자에게 이십 년이 훌쩍 지난 낡은 선풍기는 그런 물건입니다. 물건이지만, 물건만은 아닌 존재. 낡은 선풍기가 아니라 늙은 선풍기. 화자에게 선풍기는 마치 처가의 진돗개 진희 같습니다. 진희는 ’웬만한 사람보다 속 깊은 ‘ 개라고 해요. 선풍기가 진희 같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보다 ’깊은 심연‘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에요. 여기저기 낡고 늙어, 제 기능을 제대로 못하지만 쉽게 내다 버릴 수 없는 선풍기. 화자는 그런 선풍기에게 ’이름 하나 붙여줘야 하는 건 아닌가‘ 반문합니다.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대상을 의미 있는 존재로 명명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는 마무리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 친정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딸들에게 방을 내어주신 엄마는 며칠간 할머니 방에서 잠을 청하셨는데요. 첫 번째 밤이 지나고 맞은 아침이었어요. “아이고, 어제 저 시계 초침 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잤다.” 엄마의 넋두리에 할머니 방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시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돌연 2007년 2월 늦겨울의 어느 날로 잠시 시공간 이동을 했어요.
때는 저의 대학 졸업식이었습니다. 꽤 큰 강의실이었고, 저는 교수님께 상을 받고 있었어요. 3학년 때 과대표를 했었는데, 그 때문이었던 같아요. 상의 명칭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단상에 올라가 상 하나를 받았습니다. 사실 당시 제게는 별 의미가 없는 상이었어요. 상을 받는다고 해서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누가 알아줄 만한 대단한 일을 해서 받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졸업식을 축하해 주러 오셨던 어른들 눈에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대학 졸업식에서 단상에 올라 상을 받는 딸의, 손녀의 모습이 무척 대견하고 기특하셨던가 봅니다. 제게 드러내놓고 대단한 칭찬을 해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이후 그 상의 부상으로 받아온 벽걸이 시계는 마치 가보처럼 귀한 물건 대접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할아버지께서 더 그러셨던 것 같아요. 한참 후에나 들은 이야기이지만, 몇 년간 잘 쓰던 시계가 고장이 나자 할아버지는 그 시계를 들고 시곗방을 오가며 수리까지 해오셨다고 했어요. 대단히 좋은 시계도 아니었고 흔하다면 흔한 부엉이 모양의 작은 궤종시계였는데, 할아버지께는 그 어떤 비싼 시계보다도 더 귀한 시계였던가 봅니다. 오래된 시계라 수리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는 백방으로 수리할 곳을 알아보고 결국은 고쳐 오셔서 원래 걸려 있던 자리에 다시 걸어두셨다네요.
할아버지께 저와 제 동생, 그리고 엄마는 아픈 손가락이었어요. 이른 나이에 혼자가 된 엄마도, 그리고 아빠 없이 자라야 했던 저와 제 동생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거두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저희 세 식구를 평생 품고 사셨던 할아버지에게 저의 대학 졸업은 큰 의미였겠지요. ‘무사히 어른이 되었구나. 이제 세상에 나아가는구나.’ 싶으셨을 겁니다. 그런 의미 있는 자리에서 손녀가 상까지 받아 왔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셨을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힘들게 시계를 고쳐오실 만큼 애지중지하셨다는 사연을 알기 전까지 그 시계는 제게 정말 별 의미 없는 시계였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녔던 3년 간은 집에 있는 시간보다 도서관과 학교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대학원을 수료한 이후에는 집을 떠나 완전히 독립했기에 실제로 저는 그 시계를 볼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계가 여전히 집에 있다는 사실도, 아니 졸업식에서 상으로 받아왔다는 사실도 어렴풋했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계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었어요. 이제 그 시계는 볼 때마다 할아버지의 사랑과 자랑이었던 과거의 저를 떠올리게 하는 꽤 애틋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밤새 초침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셨다는 엄마의 넋두리를 듣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았습니다. 아침 시간이라 크고 작은 소음이 가득한 방안에서도 초침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어요. 평범한 초침 소리를 넘어, 어딘가 이상이 생긴 듯한 소리였어요. 벌써 십칠 년쯤 되었으니, 이제 정말로 수명이 다할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차마, 버리자고는 못했어요. 아마 버리라고 했더라도 엄마와 할머니가 선뜻 그러마 답하시진 않았을 겁니다. 저보다 오랜 세월을 그 시계와 함께 살아온 두 분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물건일 테니까요. 제게 그 시계가 저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자 할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라면, 두 분께는 할아버지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일지도 모릅니다. 두 분은 할아버지가 그 시계를 보고 아침드라마가 하는 시간을 짐작하고, 전국노래자랑으로 채널을 돌리며, 혈압약과 당뇨약을 복용할 시간을 체크하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실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지금 저희 집에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살아 있는 물건들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애착 이불과 장난감들, 배냇저고리와 아기띠, 저희 부부의 결혼식 청첩장, 결혼 선물로 받아 십 년 가까이 잘 쓰고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 처음 마련했던 여러 살림살이 등. 어떤 것은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지만, 뽀얀 시간의 먼지가 쌓여 더는 쓸모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 물건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쓸모를 벗어나, 기억과 추억이라는 나름의 존재 가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추억보다 쓸모없음의 비중이 더 커지는 날이 오면 그런 물건들은 제 시공간에서 사라지겠지요. 한때는 그 물건들로 인해 살아지던 때가 있었다는 것도 아스라해질 때가 오면요. 살아지고, 사라지는. 한 끗 차이로 참 다른 두 단어가 한 물건에 겹쳐집니다. 아직은 살아지던 때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 사라지지 못하는 물건들 속에서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