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행복으로 가는 자기만의 지도를 지녔다는 생각을 한다. 속상하고 슬프다가도 금세 까르르 웃고, 금방 팔짝팔짝 뛰며 기뻐한다. 어떤 행동이 자신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지도 잘 알고, 행복의 감정을 온전히 누릴 줄도 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어른의 행복은 너무도 계산적이고 비일상적인 것 같다는 생각에 멈칫할 때가 있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갖고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도 있다.
“내일 이 사진 어린이집에 들고 가야지~!”
”무슨 사진이야?“
“이거!”
“가족사진이네. 이걸 왜? 선생님이 가족사진 가져오라셨어?“
“아니, 엄마 얼굴 보고 힘내려고.”
(멈칫했다.) “…엄마 얼굴 보면 힘나?”
“응, 엄마 얼굴 보면 행복해지지!”
다섯 살 아이는 안다. 가족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가족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힘들 때, 슬플 때,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는 사실을, 이내 다시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누가 가르쳐줘서 아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그냥 안다.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지금 아이가 지닌 행복으로 가는 지도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하다. 지름길이랄 것이 따로 없다. 좋아하는 과자 하나에, 재미있는 만화 한 편에, 신나는 미끄럼틀 한 번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모두 행복이 있다. 아이의 행복은 너무나 곳곳에 놓여 있어 길을 헤맬 필요가 없다. 행복을 향한 아이의 걸음은 언제나 직진이다.
자랄수록, 아이의 행복 지도는 복잡해질 것이다. 그곳에서 가끔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야 행복이 있는지 방향도 알 수 없고, 때론 막다른 길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마치 꼬이고 꼬인 미로 찾기처럼. 골인 지점에는 분명히 행복이 있을 테지만, 그곳에 닿기까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길을 오랫동안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에도 까르르 웃는 아이가 자라, 행복을 찾아 헤맬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쿡쿡 쑤신다. 이 통증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자라고 자라도, 아이의 행복지도는 언제나 직선이었으면.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지금의 지도처럼, 작은 일에 기뻐하고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어른이 되었으면. 작고 소소한 것이 결코 하찮은 것은 아님을 아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임을 아는 멋진 어른이 되었으면.
오늘 아이가 나에게 선물한 행복 한 아름.
”엄마 마음은 오늘 어떤 색깔이었어?“
잠자리 대화 중 하루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하던 딸이 물었다.
“엄마는, 오늘 주황색?”
“주황색은 무슨 마음이야?”
“음, 행복한 마음? 오늘 엄마가 점심시간에 잠깐 산책을 했는데, 나무들이 온통 주황색인 거야. 그 나무들이 생각나서 주황색이라고 했어. 엄마는 그때 행복했거든.“
“음, 행복은 핑크색인데?”
“왜 핑크색이야? 사람마다 행복 색깔은 다 다를 수 있는 거 아니야?”
“나한테는 행복이 핑크색이야.”
“그래? 그럼 엄마도 핑크색 할게. 오늘 마음은 핑크색! 아, 잠들기 전에 우리 봄이가 뽀뽀 한 번 해주면 핑크 핑크 왕핑크일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을 뚫고 핑크빛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봄이의 입맞춤에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소리가 난다. 너무도 선명하고, 경쾌한, 쪽! 그렇게 뽀뽀를 퍼붓던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덕분에 오늘 나의 밤은 정말로 고운 핑크빛이다.
내 삶을 가장 완벽한 행복으로 물들인 봄이. 따스한 봄날에 내게 와, 복잡하게 꼬이고 꼬였던 나의 행복 지도에 선명한 지름길이 되어준, 봄보다 아름다운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