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하루에도 여러 번 딸아이의 머리칼을 빗긴다. 나도 딸아이도 특별히 예쁘게 머리를 묶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저 하나로 질끈 묶어주는 게 다다. 가끔 인스타에서 딸아이 머리를 엄청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엄마들의 영상이 올라오는데,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런 데는 뜻도 없고 재능도 없는 엄마를 닮아 딸아이도 수더분해서 참 고맙다.
딸아이의 머리칼을 빗길 때면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 특히나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를 묶어줄 때가 그렇다. 명도가 낮은 조명 하나만 켜진, 어둡고 아늑한 방 안에서 딸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빗다보면 울컥할 때가 있다. 빗길 것도 없이 약하고 가늘었던 아이의 머리칼은, 어느새 나이만큼 단단해지고 있다. 제법 숱도 많아져서 이제는 한 손 가득 쥐어질 정도다.
아이가 자란다. 키도 자라고, 몸무게도 는다. 손도 크고 발도 큰다. 말도 늘고 행동도 민첩해진다. 매일 보는 내 아이라, 의식하고 보지 않으면 매일의 자람은 알 수 없다. 문득 돌아보면 놀랄 만큼 자라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이나 영상만 봐도, 아이의 자람이 불쑥 와닿는다.
매일 빗어주는 머리칼의 감각도 그렇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빗어주다 보니 머리가 자라는지, 머리숱이 늘었는지, 머리칼이 단단해지고 있는지 별다른 감흥이 없다. 대충 손빗질로 질끈 묶어주는데 채 삼십 초가 걸리지 않으니 그 감각을 만끽할 여유도 없다. 그러다 문득,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의 머리칼을 천천히 묶다 보면 ‘아, 정말로 많이 자랐구나’ 느끼는 것이다.
아이의 머리칼을 빗다가 울컥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아이의 신체적 자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의 뒷모습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저릿하다. 갓 태어난 아이는 나만 본다. 뒤통수를 바닥에 대고 누운 자세로 하루 종일 엄마의 눈빛과 엄마의 손짓만 찾는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잠이 들고,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먹는다. ’뒤집기’가 아이의 첫 번째 과업인 것은 처음으로 엄마에게 뒷모습을 보이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괜히 의미를 부여해 본다. 물론 끝내는 멀리 있는 엄마를 보기 위한 뒤집기가 되고야 말지만.
언제 어디서나 나를 향해 기어 오고 달려오던 아이가 뒷모습을 보이고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이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아이는 자라는 것일 테다. 아직은 오래지 않아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발걸음이지만, 언젠가는 아주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하는 발걸음일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이의 머리를 빗기며 한참 동안 뒷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언제나 조금 울컥하고야 만다.
오늘따라 아이가 쑥 자란 것 같아, (머리가 덜 말랐다는 핑계로) 한참 동안 머리를 빗겼고 그만큼 한참 동안 아이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제까지 나에게 등을 내어 보이며 “엄마, 머리 묶어줘!”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오래도록 아이의 머리칼을 빗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더는 내 손길이 필요 없어질 때쯤이면, 지금보다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가을이 오려고 해서 그런가, 어쩐지 그 자유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좀 더 오랫동안 아이의 머리칼을 빗기는 손빗이 되고 싶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꼼꼼히 빗어 묶어주고 싶다. 그렇게 오래오래, 매일의 아침과 밤이면 사랑과 온기를 담뿍 담은 손길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