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간다. 임신을 확인하고, 지독한 입덧을 견디고,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고, 웃고 우는 수많은 순간들을 거쳐, 무사히 이 시간에 도착했다. 아이의 영유아기는 참 모순적이지만, 너무도 길었고 꼭 그만큼 짧았다. 실수 투성이었던 초보 엄마는 작은 일에도 발을 굴렀고 마음을 졸였다. 힘든 순간에는 얼른 컸으면 싶었지만, 이내 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흐르는 시간을 야속해하기도 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자라는 그 순간순간이 다 아쉬워 시간을 붙잡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내 마음이 어땠든 간에 시간은 제 속도대로 흘렀고, 그러는 사이 아이도 제 속도대로 자랐다. 이제 더는 유아가 아닌, 초등‘학생’이 되었다.
첫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까지 휴직을 했다. 두 살 터울의 둘째까지 있었고, 두 아이를 모두 오롯이 우리 부부의 힘으로 키워야 했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만약 선택지가 있었더라도 나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이를 워낙 좋아하던 나로서는 내 시간과 마음을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는 일에 모두 내어주고 싶었다. 후회 없는 5년의 휴직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5년 만에 복직한 학교는 많이 달라진 듯했지만, 또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업무와 시스템은 달라졌어도 그곳에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다.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서 배움을 찾고,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함께 수업을 이야기하고, 책을 나누고, 마음을 전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잘 적응했고 행복하게 생활했다.
물론 힘든 일도 많았다. 아이가 없었을 때만큼 수업이나 학교 생활에 열정을 바칠 수 없었다. 그래도 허투루 하고 싶지는 않아서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을 채우고자 잠을 줄였다. 당연한 수순으로 자주 아팠다. (복직 2년 동안 맞은 링거가 지난 십 년 동안 맞은 링거보다 많았을 것이다.)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있다 보니, 휴직 5년이라는 이력은 금세 사라지고 부장직을 맡아야 했다. 업무는 쉽지 않았고, 누구와도 갈등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무리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살폈다. 책임은 컸고 마음은 늘 무거웠다. (가끔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다 좋은 날들이었다. 좋은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 출근이 기다려지는 기이한(?) 경험도 했고, 나를 따르는 아이들 덕분에 교실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뿐한 신비로운(?) 경험도 했다. 하고 싶던 글쓰기 수업을 신나게 했더니 수업 수기를 신문에 싣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교육 신문에 기고도 했다. 글쓰기 수업은 배움과 성장이 있는 우수 수업 사례로 당선되어 교육청 자료집에 실리기도 했다. 참, 행복한 2년이었다.
내년에 첫째가 초등학교에 가니 휴직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5년 만에 돌아와서 겨우 2년을 일했고, 이제 다시 학교가 재밌어졌는데 다시 휴직을 해야 한다니 막막했다. 또 이렇게 학교에서 멀어지는 게 두렵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휴직보다 시간선택제(특정 요일을 선택해 해당 요일만 출근하는 제도)를 권했다. 일주일에 2일 혹은 3일만 출근을 하면 그만큼 월급은 줄겠지만, 학교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겠냐고들 했다.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꾸준히 출근을 한다면 수업과 업무, 학교 생활에 대한 감을 완전히 잃지는 않을 듯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시간선택제는 신청만 하면 거의 다 되는 분위기라는 소문을 들어서 더 고민하지 않고 신청을 했다.
결과는, 보란 듯이 떨어졌다. 그러자 대안이 없어졌다. 초등학생이 될 첫째는 열두 시면 하교를 할 테고, 그런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하려면 학원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서 돌려야 했다.
‘지금 나의 1년과 지금 아이의 1년 중 어디에 비중을 둘 것인가.’
질문이 정해지자 답은 금세 나왔다. 지금 나의 1년은 지금 있는 곳을 유지하는 1년이지만, 지금 아이의 1년은 완전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1년이자 앞으로의 학교 생활에 초석이 될 1년이었다. ‘그래! 까짓것! 1년 더 아이 곁에 있자!’ 답을 내리자마자 교감 선생님을 찾아가 내년 1년 휴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날 저녁, 두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얘들아, 엄마 내년에는 학교 가지 않고 집에 있을 거야. 사랑이 학교도 데려다주고, 봄이 유치원 버스도 기다려주고 할게.”
별생각 없이, 가볍게 툭 던진 말이었는데, 요즘 들어 무뚝뚝한 남자 어린이로 거듭나는 중인 첫째가 답했다.
“아싸! 역시 계속 기다리면 행운이 온다니까!”
하며 콧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그때 알았다. 내가 학교 생활을 하던 2년 동안 아이는 나를 많이 기다렸다는 것을. 아이에게는 내가 ‘행운’이라는 사실도.
내년 1년은 교사로서의 삶은 쉬어가게 되었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내년에 출간 계약을 한 원고도 있어서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은 열심히 원고를 쓰고, 아이가 돌아오면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엄마가 된 후로, 인생은 자주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그래도 싫지 않은 것은 엄마의 시간이 있어서 내 생이 말할 수 없이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었고,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키워주었으며, 가끔은 멈춰 쉬게도 해 주었다. 그리고 끝내 내가 나답게 살아내는 방법을 깨치게 해주었다. 그러니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할 만한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