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시 필사 모임을 운영해 왔다. 모임의 운영 방법은 매일 아침 내가 인스타스토리로 한 편의 시를 올리고 멤버분들을 태그 하면, 그분들은 하루 중 여유 있는 시간에 필사를 하시고 시와 관련된 짧은 단상을 써서 다시 스토리에 올리고 나를 태그 해주시는 게 다다. 너무 느슨한 모임이라 모임을 운영한다고 말해도 되나, 자문하게 되지만 그래도 딴에는 꽤 많은 에너지를 쏟은 모임이기에 감히 운영자를 자청해 본다.
내가 운영한 모임의 이름은 [시쓰는계절]이다. [시쓰는봄], [시쓰는여름], [시쓰는가을]까지. 벌써 세 계절을 지나왔다. 세 계절 모두 함께 해주신 분도 계시고 , 봄에 함께 하시다 여름을 쉬시고 가을에 다시 합류해 주신 분도 계신다.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분들도 물론 계시고. [시쓰는계절]에는 따로 참가비가 없다. 줌모임이나 오프라인 모임도 없다. 계절에 따라 모임을 운영했기 때문에, 한 번 모임이 두 달 반에서 석 달까지 이어진다. 즉 모임의 호흡이 매우 길다. 아무런 보상도 없고 특별한 피드백도 없다.
필사 모임을 시작한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작년 일 년 동안 시와 일상, 시와 가치를 연결하는 원고 작업을 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많이 만났다. 올해 초, 세 번째 책의 원고의 초고를 마무리했는데 그때 수집한 시의 반의 반도 활용하지 못했다. 한글 파일에 ‘시 모음’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시들을 혼자만 알고 있자니 너무 아까웠다. 이 좋은 시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라는 작은 소망이 필사 모임의 시작이었다. 그 안에는 필사 모임을 운영하다 보면, 다음에 나올 책을 자연스럽게 알릴 수도 있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욕망도 있었다.
올초에 초고를 완성했기에 늦어도 여름에는 책이 나올 줄 알았다. 세 번째 출판인데도 그렇게 순진했다. 책은 내가 원고를 다 쓴다고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듬는 작업, 조율하는 작업, 디자인과 편집 작업, 거기에 더해 적절한 시기를 보는 작업, 심지어 이번 책은 저작권 문제까지 있었다. (내가 활용한 대부분의 시가 저작권 협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일일이 작가 개인 또는 출판사와 저작권 협의를 해야 했다.) 필사 모임을 운영하며 책을 알리겠다는 현실적인 욕망은,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식어갔다. 언제 출판될지 모르는 책 때문에 이 모임을 운영한다고 하기엔, 필요 이상의 많은 에너지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 모임을 일 년 가까이 운영한 것은, 결국 이 모임의 매력에 내가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매일 같은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이 모임의 아름다움에! (운영자가 더 좋아하는 모임이라니!)
매일 새로운 시를 한 편씩 소개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품이 들었다. 모아둔 시들이 많았다고 했지만, 모아놓은 시들을 매일 기계적으로 올릴 수는 없었다. 시는 날씨를 탔고, 분위기를 탔고, 기분을 탔다. 매일 시 한 편을 배달하기 위해 매일 한 권의 시집을 읽어야 했다. 어떤 날은 몇 권의 시집을 읽고도, 내일의 날씨와 어울리는 시를 찾지 못해 오늘의 기분을 담은 시를 찾을 수 없어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고 이전에 써두었던 필사 노트를 뒤지기도 했다. 학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는 날이면 시부터 찾아봤다. 세 개 학년의 모의고사를 모두 구해 어떤 시가 출제되었는지 살피고 한글 파일로 만들어두었다.
모임이 계속되면서 이 시를 소개한 적이 있었던가 헷갈리는 시들이 생겨났다. 소개한 시의 목록을 만들고, 노션이라는 프로그램에 그간 소개한 시를 카테고리로 묶어서 분류하기 시작했다. [시쓰는여름]부터는 브런치 연재도 시작했다. 모임 멤버분들의 단상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이번 여름은 세 번째 책의 최종 퇴고가 막 끝난 시점이었다. 대개 그런 시점에는 한동안 글쓰기의 기역 자도 듣고 싶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또 쓰고 싶다’는 욕망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브런치에도 [시쓰는여름]의 시들을 소개하고 단상을 썼다.
“힘들지 않아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아이가 입원한 병실에서도 아침이면 한 편의 시를 올렸고, 내가 너무 아파 출근조차 힘들었던 아침에도 시를 올렸다. 남편과 다투고 마음이 지옥인 날에도, 아이들에게 날 선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울며 잠든 밤의 다음날에도. 나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시 필사 모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시를 나누는 마음이 좋았다. 시는 조용한 골방에서 혼자 읽어도 좋았지만, 공개된 공간에서 함께 읽고 나누니 더 좋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건드려주는 멤버들의 단상이 큰 자극이 되었다. 그저 문제 풀이를 위해 시를 읽고 익히던 국어 교사에서, 진짜 시를 사랑하고 시를 나누는 국어 교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성장을 맛보았다. 비단 나만의 성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함께 해주신 분들도 그랬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모임에 참여했지만, 매일 한 편의 시를 읽고 생각을 쓰면서 마음이 깊어지셨다는 분들이 꽤 있었다. 세 계절을 모두 함께 해주신 분들의 단상은 내가 봐도 처음과 달랐다. 길이도 길이지만, 훨씬 더 내밀한 이야기를 단상에 담아주셨다. 누군가의 성장과 성숙을 마주하는 기쁨은, 나의 성장과 성숙을 확인하는 기쁨 이상의 충만함을 주었다.
어제 [시쓰는가을]의 마지막 시가 배달되었다. 멤버분들의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단상들을 읽으며, 바쁘게 [시쓰는겨울]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는 정말 ‘시로 일 년 살기’를 한 기분이다. 비록 내가 있는 공간을 떠나, ‘00에서의 일 년 살기’는 못해봤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누린 ‘시로 일 년 살기‘는, 어떤 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가장 달콤했고, 가장 진지했고, 가장 깊어졌던 시간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께도 선물 같은 한 해였기를 소망한다. [시쓰는겨울]에도 함께 해주시면 더없이 행복할 거라고, 살짝 귀띔해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