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코로나다. 작년 3월에 첫 코로나를 겪었으니, 거의 2년 만에 재감염이다. 요즘은 코로나라도 하더라도 격리가 필수는 아니다. 다만 내가 근무하는 곳은 학교이다 보니 집단 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서 격리를 권고하고 있다. 학기말, 심지어 학년말, 지금 학교는 거의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데 병가라니. 그것도 5일이나! 마음 같아서는 마스크를 몇 겹을 쓰고라도 출근하고 싶었지만, 다수의 학생들과 대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사실 그에 앞서,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많이 아팠다.
오랜만에 고열에 시달리고, 몸살에 끙끙 앓았다. 밤새 두통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었고, 목소리가 잠겨 아예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간간이 터지는 기침에 목이 따갑고 코가 막혔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 나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집에서도 안방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다행히 코로나 진단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았던 터라 아이들과 남편은 하루이틀이 지나도 멀쩡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전담하는 동안 나는 안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안방에 달린 화장실만 이용하고, 식사도 방에서 죽이나 도시락을 먹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으니 누구와 전화통화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철저히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했다.
11월 중순을 지나면서 너무 바빠 하루도 푹 쉴 수가 없었다. 학교 일도 너무 바빴고 개인적인 일들도 너무 많았다. 아이들도 번갈아 감기를 치렀고, 친정에도 마음 쓸 일이 많았다. 잠을 푹 자지 못했고 스트레스는 늘 극에 달해 있었다. 정말 누가 손끝으로 쿡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날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덕분에 완벽한 타의로 강제 5일 휴식을 선고받고야 말았다.
격리 5일 차.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지난 5일을 돌아보니 잃은 것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얻은 것만 생각난다. 정말 원 없이 자고, 원 없이 누워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읽고 싶은 책들을 켜켜이 쌓아놓고도 한 권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지난 5일 동안 못 읽은 책을 실컷 읽었다. 평소에는 영화나 드라마 보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숏츠 나 유튜브 편집 영상으로만 보았는데, 누워 있는 김에 보고 싶던 영화와 드라마도 실컷 보았다. ‘원 없이’, ‘실컷’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시원하게 쓸 수 있으니, 지난 5일은 나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5일 동안 많이 아팠다. 아픈 걸 호소할 데도 없어서 혼자 웅크린 채 울다 잠이 들기도 했다. 출근하지 못한 동안 처리했어야 하는 일들은 여전히 미처리 상태로 쌓여 있다.(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그럼에도 지난 5일은 격리가 아니라, 휴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방치했던 나를 돌보고 보살피는 시간. 꼭 필요하지만 애써 내기는 힘든 시간. 넘어짐을 핑계로 잠시 멈출 수 있었던 시간.
아프기 전에 나를 돌보고 멈추었다면 좋았겠지만, 미숙한 나는 이번에도 아프고서야 나를 돌볼 여유를 찾았다. 아마 단순 감기였다면 하루쯤 끙끙 앓다가, 덜 나은 몸으로 또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낑낑댔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또 가혹했을 것이고, 그게 잘하는 일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단순 감기가 아니라 코로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남한테 피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 결국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휴가를 준 셈이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꽤나 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나보다 남들을 의식하는가 보다. 나를 위한 휴식에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휴식에는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홀가분했으니.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가장 아껴야 한다고, 조언은 잘만 하면서 정작 나는 나에게 그러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쩌면 좋은지.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를 혹독하게 대하고, 나를 아낀다면서 나를 방치하는 이 모순을 어찌해야 하는지. 지난 5일은 이 아이러니와 모순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시간이었다. 정말 마음껏 나를 돌보았다. 외부와 단절된 채 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원하는 것만 했다.
덕분인지, 회복이 빠르다. 아직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지만, 기침도 잦아들었고 몸살 기운도 수그러들었다. 두통도 꽤 괜찮아졌고 몸을 짓누르던 피로도 많이 씻겨나갔다. 이렇게 나를 회복했으니 또 씩씩하게 출근하고, 일상을 누릴 수도 있겠다 싶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때가 있었다. 넘어져서 다치는 것도, 넘어져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모두 피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넘어짐이 두렵지만은 않다. 할 수 있다면 넘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싶지만, 몸과 마음이 감당하기 힘들 때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넘어지면 쉬어야 하고, 넘어지면 멈추어야 한다는 것도.
실컷, 원 없이 쉬었으니. 내일은 훌훌 털고 일어나야겠다. 다시 시작될 일상에 또 스스로에게 가혹해지기도 하고 스스로를 홀대하기도 할 것이다. (나란 인간은.. 쯧쯧..) 그래도 꽤 많은 에너지를 채웠으니 조금 까먹더라도 다시 쉽게 바닥을 치진 않겠지 싶다.
넘어진 김에 참 잘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