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될 것>은 이제껏 읽었던 작가님의 장편소설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구의 증명>,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의 소설에서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매우 극적이었던 터라, 그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것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결국에는 그들에게 공감하게 된 것이 작가님 소설의 마법이었지만!
<쓰게 될 것>의 인물들은 대체로 현실과 닿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Sf소설적 요소가 있는 <인간의 쓸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이 여타의 장편소설보다 훨씬 현실감이 있었다.
표제작인 <쓰게 될 것>에서 ’나‘는 전쟁을 경험한 인물이고, <유진>의 ’나‘는 과거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던 유진 언니와 그때의 시간을 떠올리는 인물이다. <ㅊㅅㄹ> 의 ’서진‘은 무미건조한 일상생활 중에 잘못 온 문자의 발신인인 10대 소년 ’이은율‘과 대화를 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인물이다. <썸머의 마술과학>의 ‘이봄’은 부모님의 갈등을 가까이에서 목격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믿는 동생 ‘이여름(썸머)‘의 마음을 지키는 인물이다. <디너코스>의 ’오나영‘은 퇴직한 아버지 ’오석진‘의 퇴직 축하자리를 준비하고 맞이하면서 자신의 직장생활을 돌아보고 과거 이해하기 어렵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차고 뜨거운>의 ’나‘는 엄마의 지나친 간섭을 거부하거나 거절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살아왔지만 점차 엄마에게서 건강하게 벗어나는 길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홈스위트홈>의 ’나‘는 사십 대에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선택지를 뒤로 한 채 어린 시절 기억이 머문 집을 찾고 설계하며 다시금 삶이라는 선택지를 들여다보는 인물이다.
여러 단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홈스위트홈>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홈스위트홈>에서 ’나‘와 동거인 ’어진‘은 경기도의 작은 집들을 오가며 생의 빈곤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시들어가던 중이었다. 그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도시를 버리고 시골의 작은 빌라로 이사를 간 후였다. 수입은 줄었지만 여유를 되찾은 삶.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가 가장 중요한 대화 주제가 되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잔잔한 웃음을 나누던 삶. 그 삶이 위태로워진 것은 ’나‘가 암진단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수술과 항암을 반복하던 중에도 암은 계속해서 재발했고, ‘나’는 자신이 잘못 살아왔기에 암에 걸린 것이라며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자신의 마음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줄 ‘홈스위트홈’이 절실해졌다. 그리고, 그 집을 찾아 나선다.
‘나’가 진짜 자기 집을 그리고 찾아내, 그린 대로 집을 고쳐나가는 과정은 ‘나’가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닿아있었다. 삶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병과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매일의 행복을 찾아 누리며, 끝내는 온전한 자신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각오를 다지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 공간에서 ‘나’는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가 집을 완성해 나가며 자신의 남은 생을 그리는 장면, 어쩌면 이미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를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은 눈물겨웠지만 아름다웠다. 그 장면에서 ’나‘가 하는 모든 말들은, (역시나 최진영 작가님 소설답게) 사랑에 닿아있었다. 아마 ’나‘가 남긴 그 말들은 내 마음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아주 오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쓸 거야.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두라는 뜻이야. 내 몸에 어떤 튜브도 넣지 말고 나를 살리겠다고 나의 가슴을 짓누르지도 말란 뜻이야.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하다는 뜻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287쪽)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듯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