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이라는 지역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나의 동두천>. 펼치자마자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낼 만큼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지만 쉽게 감상을 쓸 수는 없는 소설이었다. 그만큼 묵직했다. 가볍게 한두 마디로 책의 내용을 정리해 버리기에는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나의 동두천>은 주인공 김정원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소설이다. 현재 정원은 인천에서 공부방을 운영한다. 이웃이자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정아와 그녀의 엄마를 우연히 도와주게 되면서 두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딸처럼 아끼던 정아가 이주노동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아의 앞날을 걱정하게 되고, 정아는 정원만은 이해할 거라 믿었다고 한다. 정아와의 대화 이후 정원은 26년 만에 유년기를 보냈던 동두천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유년기를 함께 했던 인연들을 하나둘씩 떠올린다.
소설은 과거로 회귀하여 경숙, 해자, 윤희 언니, 재민 등 정원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던 여러 인물들의 사연을 그린다. 동두천은 미군부대가 주둔한 곳이다. 그래서 등장인물 대부분이 미군부대와 관련된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셋방살이를 해야 했던 정원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해외입양을 간 경숙, 포주의 딸인 해자, 흑인과 사랑을 해 아이를 갖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난 윤희 언니, 동네에서 유일한 혼혈아이자 클럽 마담 출신인 엄마를 둔 재민까지. 모두 동두천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소설 속 여성들은 대부분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혼혈아였던 재민 역시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람들은 미국인은 동경하면서 혼혈은 이유 없이 비난했다.) 그 속에서 정원과 주변인들은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동두천을 살아냈다. 정원은 잊고 살던(어쩌면 잊고 싶던) 오랜 과거와 대면하며, 현재 이주노동자 ’ 타파‘와 사랑에 빠져 미래를 그리는 정아를 돕기로 마음을 바꿔먹는다. 정아와 타파의 결혼은 쉽지 않고 타파가 한국에서 자리 잡기는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정원은 26년이 지나 이들과 연대하는 것으로 과거 동두천에 남겨두고 온 마음을 조금씩 거두어들인다.
정원의 나이는 이미 사십대로 그려지지만, 이 소설은 결국 정원의 성장소설이 아니었을까. 정원은 유년기의 추억과 여러 인연들의 슬픔이 함께 얼룩져 있던 동두천을 떠난 후로 26년간 동두천에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나 정원은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고, 마침내 앞으로 자기 이야기가 흘러갈 방향을 직접 선택했다. “나는 그곳이 내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바로 이 소설을 설명하는 하나의 문장이었다. 이야기의 시작, 시작점에서 바라봐야 나아갈 길이 보이는 거니까.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이 음지와 양지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때는 보산리 기지촌과 생연리가 바로 그 음지와 양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두천을 떠나 좀 더 자란 뒤에는 동두천이 이 땅의 음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 더 뒤에는 이 세상의 양지는 모두 음지를 딛고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음지와 양지는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한 몸이었다. 그랬다. 동두천은, 그 그림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