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이신 박주영 판사님을 처음 만난 건 유퀴즈온더블록(이하 유퀴즈)라는 예능에서였다. 판사로서 책임감을 견디는 모습과 한 인간으로서 진솔한 모습에 반해 책을 구입했다.
읽는 동안,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박주영 판사님의 삶에 묘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이상하게 재판장과 학교의 모습이 자주 겹쳐졌다. 특히나 소년범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부분에는 자주 숙연해졌다. 결국 가정에서 포용되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끝내 소년 법정에 섰다. 그리고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이 책에서 다루는 소년범은 흉악범은 아니다. 생활고나 가정 폭력 등의 이유로 단 한 번도 애정과 관심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이다.)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쩐지 자꾸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어떤 사건에 대한 ‘양형 이유’는 판결문 가장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는데, 판사님은 그 부분에 많은 애정이 있으셨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로 모든 판결문의 ‘양형 이유’를 애정과 공을 들여 쓰지는 못하나,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과 같은 사건(피의자나 피고인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이 사건이 영원히 기록에 남기를 바라는 사건 등)에는 마음을 다해 양형 이유를 쓰신다고 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로는 앞서 말한 소년범, 거대 기업에 맞서는 산재 피해자, 환경 관련 사건 등이 있었다.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 판사님의 삶이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일 것이라는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책은 전혀 어렵지 않게 술술 읽혔다. 특히 실제 사례를 예로 드는 부분은 뉴스보도에서나 볼법한 사건들의 기술이라 흥미롭기까지 했고(기분 좋은 흥미는 아니었다만), 판사님의 고뇌는 나의 고민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잘못된 판결을 내릴까 매 순간 두려움을 느끼는 판사님에게 내가 자주 겹쳐 보였다. 나 또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뱉는 말 한마디에 아이들이 잘못된 결정이나 선택을 할까 봐, 내가 선택한 수업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아이들에 좋은 결과를 미치지 못할까 매 순간 두렵다. 재판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각자 개별성을 가진 존재로 보지 못하고, 그저 피의자, 피해자, 고소인, 피고인 등의 뭉뚱그려진 대상으로 바라보게 될까 봐 걱정하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모두 개별성을 가진 존재들인데, 가끔은 그저 고1 학생, 고2 학생, 남학생, 여학생이라는 프레임에서 개별성을 잃은 존재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늘 고민한다.
여러모로 좋은 책이었다. 평소 우리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도 꽤 많았고 단문으로 쓰였지만 글 자체가 매우 유려하게 느껴져서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 요즘 판사라는 직업 자체, 법조계라는 집단 자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데, 이렇게 현장에서 정의를 고민하며 한 사람을 삶으로 건져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오랜만에, 인생책 한 권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