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백온유)

by 진아

열아홉 시안의 엄마는 식물인간이다. 벌써 6년이 넘었다. 시안의 삶은 오직 엄마의 간병으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미숙했지만 이제 웬만한 간병인보다 더 베테랑이 되었다. 시안의 엄마는 6년 전 바이러스 감염의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 바이러스는 해외에서 유입되었고, 국내 최초 감염자는 시안의 친구인 해원의 엄마였다.


해원과 시안은 어린 시절 친구였고 바쁜 해원 엄마를 대신해 해원 남매는 시안 엄마의 보살핌을 자주 받던 아이들이었다. 해원 엄마가 해외에 다녀오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해원 가족은 슈퍼 전파자가 되어 지역 사회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되었다. (코로나 초기 때가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그 뒤 해원 가족의 모든 동선이 공개되었고, 해원 가족은 지역 사회에서 매장될 정도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결국 해원 가족은 야반도주하듯 그 도시를 떠나버렸고, 시안은 하루아침에 건강하던 엄마와 더불어 마음을 나누던 유일한 친구 해원마저 잃었다.


이후 시안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고 시안은 더 이상 일상적인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간병으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되었다. 일부러는 아니었겠지만 엄마를 그렇게 만든 해원 가족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시안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안이 해원의 오빠인 해일을 다시 만나면서 시안과 해원의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시안은 해원에게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함께 있으면 애쓰지 않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그저 편안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시안에게 없는 미래가 해원에게는 있다는 사실이 시안을 아프게 했다. 결국 시안은 해원을 원망하고, 해원을 궁지에 모는 것으로 자신의 불행을 탓하고 싶어 한다. 그동안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도 몰라 그저 엄마를 돌보는 것으로 일상을 꾸리던 시안에게 갑자기 등장한 해원의 존재는 쉽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해원은 시안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과 그 일의 원인은 자기 가족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엄청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는 중에 시안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엄마의 산소통 밸브를 잠가 달라는 엄청난 일)을 해원에게 부탁한다. 간병에 지쳤지만 간병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알 수 없던 시안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 진짜 죽음. 그게 비록 부당한 방법일지라도, 시안은 그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정상적으로, 일상적으로. 시안이 해원에게 그런 일을 부탁한 데에는 결국 해원 가족으로 인해 발생한 일을 해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왜곡된 원망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해원은 시안 엄마를 지켜내는 인물이 되고, 시안은 그 일을 겪으며 엄마를 요양병원에 보내는 결정을 한다. 엄마와 자신의 삶의 분리, 그것을 통해 시안은 조금 다른 삶을 그리게 된다.


이미 죽은 몸으로 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시안 엄마, 그런 엄마를 돌보며 하루하루 죽은 것과 다름없는 일상을 꾸리는 시안과 시안의 아빠. 두 사람은 엄마이고 아내인 사람을 그만 놓아버릴 수도 그저 무한히 사랑할 수도 없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던 둘은 최선을 다해 엄마이자 아내를 돌보는 일에 매진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읽는 내내 아무리 짐작하려 해 봐도 두 사람의 무게를 알 수 없었다. 이건 경험하지 않고서야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에 겨우 도달했을 뿐이다. 공감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대단하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시안은 엄마를 내려놓고 조금 나아졌을까. 끝내 해원과도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과거과 진짜 이별을 하게 될까. 시안의 미래가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안이 내일을, 내년을, 십 년 후를 그려보게 될까. 아주 조금이라도 행복해질까. 축축한 일상에서 볕 드는 일상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 아빠가 썩든 내가 썩든 누구 한 명이 썩기 시작하면 금방 두 사람 다 썩을 것이다. 오염된 물질들은 멀쩡한 것들까지 금세 전염시키니까. (98쪽)

해원에게 책임을 묻는 게 타당할까. 따지자면 해원보다는 해원의 엄마를 추궁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해원의 가족은 순간의 불찰로 인해 키운 잘못에 대한 대가를 과거에 치르지 않았던가. 나는 복잡한 내 마음 안에서 헤맸다.
해원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비약이겠지만 더 이상 그런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면 뭘 원하는데?
저 애가 내가 느끼는 고통의 일부의 일부라도 이해하는 것.(121쪽)

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 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엄마의 가장 깊은 곳에서도 더 이상 엄마를 발견할 수 없고 엄마에게서 배어 나오는 것은 땀과 악취뿐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고름 같은 기억을 쥐어 짜낸다. 나는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썩지 않도록 엄마를 돌려 눕히는 일을. 엄마의 작고 마른 발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 얇은 발목을 무언가가 움켜쥔 채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공포에 빠진다. 오늘도 무겁고 끈끈한 그림자가 내 발밑에 달라붙어 있었다. (177쪽)

나는 두려웠다. 같이 있다 보면 좋은 날들도 많겠지만 나쁜 날들도 있을 것이다. 불행해지면 원망할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해칠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 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에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게 나았다. (중략)
해원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 애가 학교로 도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교문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다시는 해원을 보지 못하리라 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의 숨결 같은 바람이 등을 떠밀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늘을 벗어나 한걸음, 햇볕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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