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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y 31. 2020

내 앞에 놓인 나의 생을 생각하다

첫 번째 시간-『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편의 소설을 읽었는데,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머릿속에 모모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았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언제나 부단히도 애를 쓰던 열네 살의 모모의 삶이 참 서글프다. 모모에게 '생'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생과 관련된 모모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서술들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120)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하밀 할아버지는 이미 당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178)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236)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256)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더 구역질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300)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303~304)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311)



모모에게 생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었던가 보다. 나아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모모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할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나 그리워서 매일 밤 자신만의 암사자를 제 침대로 불러들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모모는 아마 생을 유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생이라 여겼기에, 로자 아줌마를 그렇게도 끔찍이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받은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로자 아줌마가 하루하루 생과 멀어져 갈 때, 아르튀르를 만들어내 그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을 버텼던 모모. 모모에게 생이란 바로 '사랑'이었다.


마지막까지도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있는지, 과연 생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물으며 로자 아줌마가 떠난 뒤 자신의 생이 어떻게 이어질지 두려워한 아이. 다행히 나딘이라는 새로운 사람과 그의 가족을 만났으니 어쩌면 모모의 남은 생은 또 다른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너무도 사랑했던 로자 아줌마는 모모의 곁을 떠났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모모 곁에 남아서 정말로 다행이다. 슬픈 결말이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결말이라 정말 다행이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참 많은 생각을 했던 책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 자기 앞의 생에 대한 특별한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 앞의 생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그저 툭하고 주어진 생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기도 하고, 그렇게 나의 선택 없이 주어진 생을 원망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생을 사랑이라 여기지만 누군가는 성공이라 여기기도 한다.


나에게 생은 어떤 것일까. 모모의 질문처럼 이 생을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내 곁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생을 빛나게 채워주는 나의 사랑, 나의 사람들에게 무한히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줄거리 요약>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집에서 사는, 부모로부터 맡겨진 아이다. 로자 아줌마는 주로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서 키워주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 과거의 그녀 역시. 몸을 파는 일을 했었다. 로자 아줌마의 집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았고 아이들은 나이, 성별, 종교, 인종까지 모두 달랐다. 로자 아줌마네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산 아이가 바로 모모였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특별한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기도 했고, 일종의 책임감이기도 했다. 자기와 로자 아줌마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그런 마음. 그래서 자신에게로 입금되는 돈이 끊어졌을 때,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자신을 버릴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아줌마를 버리고 집을 나가는 일을 없을 거라며 아줌마를 안심시켰던 것이다.


모모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은 하밀 할아버지인데, 과거에 양탄자를 팔았으나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일로 소일을 삼는 분이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인생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배우게 된다.


모모는 어느 날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인 '나딘'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나딘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자 훗날 로자 아줌마가 죽은 뒤의 자신의 삶을 함께 할 누군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 그 관심이 싫지 않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두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모는 큰 실망감에 빠진다.


나이가 많은 로자 아줌마는 여기저기가 아프고, 자신이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죽을병은 아니었으므로, 자꾸만 정신을 놓는 날이 많아지자 자신을 병원에 입원시켜 강제로 생을 연장하게 될까 봐 불안해한다. 그래서 항상 정신이 돌아오면 모모에게 자신을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모모는 아줌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겠다고 항상 다짐한다.


아줌마의 건강은 자꾸만 나빠지고, 모모는 아줌마가 자신의 곁을 떠날까 봐 불안해한다. 그 와중에 모모의 아버지가 로자 아줌마를 찾아온다. 모모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통해 자신이 열네 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마의 이름, 엄마의 직업, 그리고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된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가 모모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도. 끝내 모모가 자신의 아들인 것을 모르고 아버지라는 사람도 죽게 된다. 모모는 그것이 조금 슬프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로자 아줌마는 점점 위독해지고, 결국 모모는 사람들이 아줌마를 병원으로 옮기려고 하자 아줌마의 친척들이 아줌마를 고향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는 자기와 아줌마만 아는 지하실로 아줌마를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아줌마는 죽음을 맞이하고, 거의 3주 동안이나 모모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줌마 곁을 지킨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나자 사람들이 아줌마와 모모를 찾아냈고, 모모는 나딘에게로 보내져서 당분간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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