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속편으로 만들어진 <인크레더블2>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좋은 평점을 받고, 흥행도 이런 저런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중입니다. 픽사의 열혈 팬이자 1편을 너무도 재미있게 봤던 저는, 오랜만에 나온 속편에 반가웠고 많은 기대를 안고 극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보고 나서 뇌리에 계속 남은 것은 메인 메뉴였던 <인크레더블2>가 아니라, 픽사의 쇼트 무비였네요. 에피타이저로 상영된 8분 짜리 <바오>가 상영 시간 두 시간이 넘는 본 영화를 치고 들어 온 겁니다.
<바오>는 픽사 쇼트 무비 사상 최초로 여자 감독이 기용됐다는 점이 화제가 됐습니다. 감독이 28살 밖에 안되는 캐나다 출신 중국인이라는 점도 뉴스거리가 됐고요. 그런데 이런 배경적인이슈 보다 관객에게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영화에 등장한 중국인 엄마의 캐릭터였습니다. 북미인들은 아이에게 집착하고 과잉보호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엄마를 거부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자신의 십대 시절이 떠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 또한 있었어요. 그래서 SNS는 물론 언론까지 호불호가 엇갈리는 의견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영화에 나오는 중국인 이민자 가정은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입니다. 엄마는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의 안전에 늘 노심초사하죠. 그들이 먹는 밥은 중국식 만두이지만, 전기밥솥이 있는 부엌 풍경이나 무심한 아빠의 모습까지 한국 가정과 많이 닮아 있어요. 즉, 이들은 외국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 고유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영화 속 상황이 북미인들에게 낯설 수 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속에서 다루는 갈등이 보편적 이슈(아이의 사춘기, 결혼, 엄마의 빈 둥지 증후군)이다 보니 공감대 또한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Bao>는 픽사 역사 상 가장 논쟁적인 쇼트 필름이 아닐까 싶어요.
<Bao>에서는 아들로 비유되는 만두를 엄마가 먹어버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급작스런 실수였고 엄마는 당장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만, 북미의 반응은 지나치게 대담한 연출, 또는 엽기적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심지어 ‘식인 엄마’라는 표현까지 있더군요. 저는 ‘식인 엄마’라는 표현을 본 순간 ‘카니발리즘’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심하게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의 심리 분석을 어디까지 해야 하나 고민스럽더군요. 사실 결혼 상대에게서 아들을 빼앗으려는 엄마의 모습은 병적으로 보였고(동양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이기도 합니다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역발상이라는 느낌까지 받았기 때문에, 저도 엄마가 만두를 먹는 장면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연출한 감독의 의도를 곰곰히 헤아려 봤습니다.
우선 아들을 만두에 비유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요. 막 쪄낸 만두는 아기의 살갗처럼 따뜻하고 포근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와 달리, 만두는 맘대로 할 수 있잖습니까? 아마도 엄마는 만두를 빚으며 아이 기르는 것도 이렇게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 바램이 만두 아기로 태어난 것이라 봅니다. 또, 아들에 대한 엄마의 지나친 집착이 아이를 임신했던 때로 시간을 역주행시키고 싶었고, 그 욕망이 만두를 먹는 행위로 표출된 것 같아요. 사실 만두란 것이 사람에게 먹힐 운명임을 고려해 보면, 플롯 전개가 나름 타당하지요.
혼자 이런 저런 해석을 하던 저는 감독의 의도가 궁금해서 인터뷰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동기가 터무니 없이 단순하더군요. 십대 시절, 엄마의 간섭에 반항하던 감독에게 “너를 내 뱃속에 다시 넣어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네가 어디 있는 지 항상 알 수 있으니까”라고 엄마가 말한 것을 옮긴 것 뿐이라네요. 기사를 읽고 참 허무했습니다. 대부분의 예술작품이 그러하겠지만,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감독은 자기 작품에 쏟아지는 무수한 억측들에 대해, 지나친 해석은 사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을런지도 모릅니다.
여자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왜 딸이 아닌 아들일까요? 그 이유는 아들의 경우, 배우자로 인한 갈등이 비교적 심해서,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여자들은 멀티 테스킹이 가능하고, 본능적으로 남을 보호하고 배려해주는 능력이 남자보다 낫다 보니, 결혼 후에도 딸들은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아들들은 자신의 여자가 생기면 엄마를 챙길 여력이 없습니다. 한 곳 이상에 집중할 수 없는 능력의 한계를 타고났으니까요. 그래서 엄마들의 빈 둥지 증후군과 갱년기는 더욱 악화돼고, 결국 그 화살은 엉뚱하게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날라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지만 영화는 전체관람가에 알맞는 마무리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결말 부분에서는 좀 맥이 빠지더군요. 아들과 엄마가 화해를 하고, 백인 며느리는 중국인 시어머니에게 만두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결말이 너무나 동화적이라서요. 엉뚱한 생각이지만 영화가 전체 관람가가 아닌 19금이었으면 어떤 결말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타이거 맘’ 논쟁이 뜨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예일대 법대 교수인 중국인 엄마가 주장했던 동양식 훈육방식은 세계적으로 많은 반발을 샀죠. 저는 영화를 보면서 <바오>의 엄마와 타이거 맘은 아이를 심하게 통제하고 간섭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타이거 맘들은 아이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와 피로, 불안에 시달린다 하는데, 영화 속 엄마도 행복한 모습은 아주 잠시였던 것 같네요. 이를 보면 <Bao>는 동양인 엄마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영화가 아닐런지요. 영화 속 엄마는 그야말로 적나라한 모습으로 등장했잖아요. 서양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동양의 문화가 무조건 틀리다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로봇으로 살고 싶지 않고, 또 때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엄마를 떠나려 하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가 숙고해야 할 과제가 아닐런지요. <바오>는 곱씹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입니다. 8분 짜리 애니메이션이 일으키는 파장이 참으로도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