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킴 Aug 16. 2018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사후세계의 변화

<신과함께> <코코> <유령신부> <코르테오>를 살펴보다

태양의 서커스의 <코르테오(Corteo)>에는 자신의 장례식을 슬픔과 애도의 장소가 아닌, 축제로 만드는 광대가 등장합니다. 그는 외줄 위에서 자전거를 타며 가족에게 밝게 굿 바이를 외칩니다. 명랑하기만 그의 모습을 보면 다른 여정을 향해 기쁘게 길을 떠나는 것 처럼 보여, 죽음을 대해는 태도가 저렇게 태연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흔히 죽음을 상상하면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무서운 지옥의 심판을 받는 것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말이죠. 게다가 최근 헐리웃 애니메이션에서도 사후세계가 밝게 그려진 걸 보면, ‘저승’이라는 공포스러운 이미지에 변화가 온 것 같습니다.



저승사자와 사후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최근 <신과 함께>로 인해 최근 우리에게 친숙해졌는데, 저승사자들의 모습이 전통적인 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강림도령, 해원맥, 덕춘이 3인 1조로 일하는 것은 같지만, 웹툰과 영화에서는 복장을 현대화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저승사자의 모습은 검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있죠. 그러나 이것도 후대에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라 합니다. 원래 저승사자의 복장은 검은 색도 아니었고, 이승을 떠나지 않으려 저항하는 망자에 대비해 무기 또한 들고 있었다고 하네요. 이런 모습의 저승사자를 따라가 망자는 사십구일에 결쳐 일곱 번의 재판까지 받아야 한다는데, 저는 솔직히 힘든 인생을 마친 우리가 사후세계에 들어가 왜 또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펄펄 끓는 무쇠솥과 칼로 이루어진 산이 있어, 죄를 짓지 않은 자라 해도 공포스러움이 극한에 달할 것 같은 그 곳에서 말입니다.



서구의 저승사자는 우리 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 리퍼(Grim Reaper)라고 불리는 그들은 전신을 감싸는 검은 망토에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입니다.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킨다는 그 낫은 영혼이 아닌 목을 베일 것만 같은 공포스런 느낌이고요. 명부를 들고 다니며 임무 수행을 하는 우리의 저승 사자가 관공서나 보험회사의 직원 같은 느낌이라면, 그림 리퍼는 청부살인업자 같은 극악스런 이미지입니다. 원혼을 도와주고, 망자가 억울한 심판을 받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는 <신과 함께>의 인간적 매력이 있는 차사들과 달리 그들은 거대한 낫으로 사람의 목숨을 수확(?)해 갑니다. 그린 리퍼는 흑사병이 유럽을 뒤덮었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라 합니다. 그러니까 14세기 이후 계속 죽음의 전령사로 자리 하고 있네요.


<유령신부>의 회색 빛 인간 세계


<유령 신부>에서 화려하게 그려진 사후 세계


그런데 최근, 서양에서 그려내고 있는 사후세계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우리 보다 몇 배는 더 공포스러운 죽음의 전령사가 있는 그곳에서 말이예요. 그들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구현해낸 사후세계의 모습은 밝고 유쾌하며,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 보다도 더 화려합니다. 팀 버튼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인 <유령 신부>에서는 현실을 무채색의 건조한 분위기로 보여준 반면, 사후의 세상은 화려한 색을 사용한 데다 밝고 떠들썩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역동적으로 연출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려진 저승 이미지에 대한 역발상인 것이죠. 그리고 이 발상의 전환은 <코코>에서 극대화 됩니다.


멕시코에서 망자들이 간다는 사후세계는 화려한 비주얼 뿐만 아니라 음악과 춤까지 흘러넘치는 축제의 분위기 입니다. 이들의 세상을 스크린에서 보며, 저는 <코르테오>에서 자전거를 타고 밝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그 아버지가 신나게 굿바이를 외치며 향한 곳이 바로 저 곳이라면, 공연을 봤을 때 생경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코코>에서도 죽음이 주는 중압감과 공포는 있습니다. 망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 기억되어야만 하며, 그렇지 못할 땐 먼지로 사라져버려 즐거운 저승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묘지를 찾아 꽃을 뿌리고 초를 밝히는 의식을 행하며, 그들을 기억해 줍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49일 간 심판을 받아야 하는 우리의 저승길에 비하면 작은 공포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과거 서양의 사후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어둡고 두려웠지만, 밝고 친숙하게 변화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공포스런 사후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것 보다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코코>를 보고 공포를 느꼈다거나 불쾌했다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누구에나 주어지는 삶의 마지막 통과의례이며,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곳인 사후세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달리 상상될 지 기대해 봅니다.


오래 전 우리 어르신들께서 하신 말씀 중에 ‘그래도 이승이 낫다’는 것이 있습니다. 당시 민초들의 삶이 고달팠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표현을 했다는 것은,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저승은 싫고 공포스럽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그리고 이런 말이 대에 대를 이어 내려왔다는 것은,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 또한 지속돼 왔다는 반증일 겁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조금은 걷어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100세 시대라는 지금은 단지 웰빙(well being)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웰에이징(well aging)에다 심지어 웰다잉(well dying)까지 인생에 대한 이슈가 확대되고 있죠. 그래서 저는 죽음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코코>와 <유령 신부>에서 보여준 참신한 해석과 비주얼 처럼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크레더블2>의 관심을 앗아간 논쟁적 만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