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읽다 보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관한 기사가 자주 눈에 띕니다. 궁금한 마음에 티브이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제목 그대로의 상황이 연출되더군요. 물론 이 프로그램은 편집 논란도 있고, 사전 합의가 있었다는 설이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작년 인스타에서 핫했던 <며느라기>와 고부갈등을 초극세 사실주의적으로 담아냈다는 <B급 며느리>가 최근 개봉한 걸 보면, 역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진행형 임이 분명합니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인스타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책까지 출판된 <며느라기>의 주인공은 밤고구마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시어머니에게 대꾸 한마디 못하고, 남편의 무심함을 참아내며, 시댁 대소사는 물론 시부모님 결혼기념일까지 챙겨드립니다. 반대로 영화 <B급 며느리>에는 기존 관습에 맹렬히 저항하는 며느리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시동생에게 반말을 하며 ‘도련님’엔 님자를 붙여야 하는데, 왜 며느리는 ‘며느님’이라 불러주지 않냐는 당돌한 항변을 하죠. 게다가 시어머니 말씀하실 때 말대답은 기본에, 심지어 명절 때 남편과 아이만 내려보내기도 하더군요.
사실 고부갈등이란 어느 집에나 있는 보편적 이슈이지만 <B급 며느리>에 나오는 며느리는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의 갑툭튀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녀는 백 년 전 조선 땅에서 혼인계약서를 쓰고 결혼한 나혜석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이나 도전적인 여성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녀를 도발하는 시어머니가 일조하시긴 했지만, 이 언니 상당히 셉니다.
어쨌거나.... 양순한 며느리든, 전사 같은 캐릭터의 사나운 며느리든, 그 배경엔 비슷한 성향의 시어머니들이 존재하고 계십니다. 그분들의 그 독특한 성향이 고부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거죠. 물론 모든 고부갈등이 시어머니 탓만은 아니지만, 그녀들의 아들을 향한 잘못된 마음자세와 시선 덕분(?)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어머님들의 모성애는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며느리는 쏙 빼고 내 자식의 잔에만 차고도 넘치며, 그 사랑의 힘이 질기다 보니, 이미 태어날 때 잘린 탯줄을 아들이 성인이 돼서도 부여잡고 놓질 못합니다. 한번 아들은 영원한 내 아가인 것이죠. 그렇다 보니, 엄마 마음은 늘 노심초사 아들 걱정입니다. 못 미더워 잔소리를 해야 하고, 아들 부부 사이에 끼어들기를 즐기며, 심지어 손주들의 육아까지 간섭합니다. 손주의 경우는 ‘내 자식의 자식 = 내 새끼’라는 논리를 세워 옷 입히는 것, 아이의 교육까지 참견을 하는 것이죠. 일부 엄마들은 다 큰(심지어는 늙어가는) 자식의 잔디 깎기 맘 노릇을 자처하기도 하고요.
예컨대, <며느라기>에서는 맞벌이 부부인데도, 집안일을 은근 며느리에게만 책임 지우려 하는 시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아들의 밥을 걱정하는 시어머니는 앞치마를 대단한 선물인 것처럼 포장해서 며느리에게 주기도 하죠. 그리고 <B급 며느리>에는 며느리가 입혀놓은 아이 옷을 늘 갈아입히는 시어머니가 있어요. 이런 시어머니들에 관한 이야기는 브런치에도 적잖이 올라와 있는데, 저는 그녀들에게 자신들의 며느리도 어느 누구의 귀한 자식(그녀들의 아들만큼이나)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아들의 부인이자 손주들의 엄마라는 이유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도 함께 아울러서요.
아들과 엄마 사이엔 묘한 순환고리가 작용합니다. 아들은 처음으로 엄마 곁을 떠나 유치원을 갈 때 분리불안을 겪지만, 커가며 심리적으로 독립을 하고, 결국 엄마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엄마는 바로 이때 분리불안을 겪게 되는데, 이 성장통을 잘 이겨내지 못한 엄마들은 이상한 나라의 시어머니가 돼버립니다.
영원히 내 곁에 두고 싶은 아들은 성인이 돼 자신의 둥지를 틀게 되고, 이를 바라보는 엄마는 허전함과 서운함, 그리고 아직도 못 미더운 아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는 거죠. 그리고 동시에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보호본능이 솟구쳐 아들 부부에게 해결사를 자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며느리가 원치 않는 시어머니의 멘토링이나 참견은 가정불화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는 고부갈등은 물론, 부부 사이, 심지어 엄마와 아들의 관계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겁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그리고 동서고금까지 막론하고 존재해온 고부갈등이지만, 노력하는 한 해결책은 있습니다. 물론 노력은 쌍방이 다 해야겠지만, 웃어른이 먼저 나서서 해주세요.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우선, 아들은 내 아들이기 전에 내 며느리의 남편임을 인정해야만 하겠어요. 나를 떠나 가정을 이뤘잖습니까. 그리고 자식이지만 성인이 된 이상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아들이 데려오는 자신의 짝이나, 결혼 후 생활방식과 손주의 육아 등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말고는 아들과 며느리의 자유임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그들 하는 짓이 진정 맘에 안 든다면 그냥 포기하세요. 대신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주느라 진빼지 마시고, 나 자신을 위한 일로 시간을 보내세요. 그리고 옆을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아들과 비슷하게 생긴, 이십여 년 뒤 아들의 모습으로 예상되는 남자가 있을 겁니다. 그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같이 늙어갈 노후연금 같은 존재는 아들이 아닌 남편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아들이 결혼할 때 생긴 빈자리를 며느리가 아닌 수양딸로 채웠습니다. 며느리를 딸이 아닌 수양딸로 관계 설정한 것은, 버젓이 부모가 있는데 남의 딸을 빼앗아 올 수 없다는 이유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서로 예의를 갖출 것 같아서입니다. 현재 저는 착한 수양딸에게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내가 시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하는지 자주 돌아보려 합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아직 제가 초짜 시어머니이기도 해서요. 그 노력의 일환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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