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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Sep 19. 2018

예술과 스폰서쉽에 대해서

발레를 그 예로 들어보다

음치에 박치인 데다, 그림은 스틱맨을 그리는 수준이고, 운동 신경까지 없는 저는, 어려서부터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존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내가 갖고 태어나지 못한 능력에 대한 부러움도 있지만, 주어진 달란트를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뤄내는 그들의 의지가 절 감동시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술인들의 경우,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분야가 대부분이라, 그들의 열정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 농담 같은 진담으로 “만약에 내가 돈벼락을 맞는다면, 가난한 예술인들의 스폰서가 되겠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불행히 돈이 저를 안 좋아해서 아직 제 희망은 그저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대신 공연을 볼 때 할인권에 연연하지 않고 티켓값을 지불한다거나, 전시를 보러가면 작은 돈이나마 기부금 박스에 넣고 나오는 등의 형편에 맞는 후원을 하지요. 그리고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나 기업체를 발견하면 마음속으로 마나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해 주는 그들이니까요.


캐나다 토론토의 Four Seasons Centre


발레에는 왜 스폰서가 있어야 할까?


대부분의 예술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스폰서 없는 발레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공연 수익만으로는 발레단 운영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레 공연을 볼 때마다 후원 기업들을 체크해 보는 오지랖을 떨곤 하는데, 최근 캐나다 국립발레의 팸플릿에서 특이한 형태의 스폰서십을 발견했습니다. 발레 팸플릿에 적혀있는 스폰서는 발레단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정 무용수들을 후원하는 이름들이 적혀있는 겁니다. 저는 예술인도 운동선수처럼 개인적인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에, 팸플릿에 적힌 이름들을 보니 고맙고도 반갑더군요.


“sponsored by” 옆에 후원하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발레 댄서가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아야 하고, 등급 시험을 모두 거쳐야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으며, 발레단에 들어간다 해도 군무로 시작해서 솔리스트를 거쳐 주연급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길고 험하기만 하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잦은 부상도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발레단에서 받는 재정적 지원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활동할 수 있는 기한 또한 짧습니다. 몸으로 하는 예술이다 보니 은퇴가 빠를 수밖에 없죠. 따라서 이들을 후원한다는 것은 그들의 힘든 여정에 힘을 보태주는 일이 되는 겁니다.


발레 스폰의 슬픈 역사


발레에서의 스폰서 쉽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발레리나들이 천대받던 시절이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도로 행해졌었지요. 있는 집 자식들이 발레를 전공하는 요즘과 달리, 20세기 이전엔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집안의 딸들이 발레계에 입문했었습니다. 발레리나가 되면 돈 많은 스폰서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벋어 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린 소녀들이 발레를 통한 원조교제를 했던 겁니다. 이 슬픈 역사는 드가의 그림에 남겨져있습니다. 어둡고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에드가 드가 <발레 리허설>


에드가 드가 <스타>


에드가 드가 <무대 위에서의 리허설>

<발레 리허설>의 경우, 스폰서로 추정되는 남자가 우측에 있습니다. 그의 모습은 어둡게 채색돼서 마치 어린 발레리나들을 덮쳐버릴 마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아래 그림인 <스타>에는 발레리나 뒤로 검은 연미복을 입은 스폰서의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약간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그의 자세를 보건대, 시선은 분명 무대 위의 발레리나를 바라보고 있네요. 그리고 제 추측으로는 박스석에 또 다른 잠재적 스폰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의 시선은 발레리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거든요. 현재와 달리 과거엔 2층이 비싼 자리였고, 박스석은 왕이나 귀족들이 앉던 자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스타>에서는 그림 속, 그리고 그림 밖 모두에 탐욕스러운 시선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무대 위의 리허설>에는 오만한 자세로 자신들의 쾌락을 채울 상대를 물색하는 스폰서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발레리나들은 열심히 공연 준비를 하고 있지만, 오른쪽의 남자들은 공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빨리 리허설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듯한 지루한 모습이죠.


후원받는 예술은 좋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와 같이 발레와 스폰서는 한때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가졌지만, 사실 초창기에는 그런 형태가 아녔습니다. 발레는 궁정에서 즐기던 댄스였으며, 루이 14세의 후원에 힘입어 최초의 발레 학교인 프랑스 왕립 무용학교까지 탄생되니까요. 루이 14세는 진정 발레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후원 덕에 학교가 설립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발레가 체계화된 것을 보면, 돈과 예술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시애틀 PNB(Pacific Northwest Ballet)에 관한 설명을 간략히 해봅니다.


발란신의 <아폴로>


PNB는 발란신(George Balanchine) 발레에 주력합니다. 추상 발레라는 평을 듣는 발란신의 작품은, 무대와 의상 등의 볼거리를 배제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에만 주력합니다. 그러니 당연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PNB는 매년 발란신의 작품을 올립니다. 시애틀이 뉴욕처럼 다양한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의문은 그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납득이 됩니다. 솔직히 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얼마나 많은 액수의 후원금을 내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래스카 항공, 스타벅스 등, 다른 스폰서 또한 있음에도, PNB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을 보건대, 그들이 적잖은 후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겠죠. 그리고 이는 발레단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연을 올릴 수 있게끔 힘을 보태 주는 것이고요. 이는 발레뿐 아니라 다른 분야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스폰서의 도움이 있다면 예술인들이 더 작품 활동에 주력할 수 있고, 그 결과는 훌륭하고 다양한 창작물로 나오는 것이지요.


글을 쓰다보니, 저의 재력(?)으로 할 수 있는 후원이란 공연과 전시의 티켓을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그렇지만 이 또한 후원의 한 형태가 된다고 믿습니다. 제가 구매하는 전시회 티켓이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의 무료입장을 가능하게 하고, 공연 티켓은 더 좋은 공연을 위한 모래알만큼의 도움은 될 수 있으니까요. 그 일환으로 올 겨울 PNB에서 올리는 발란신 작품의 티켓을 질러봅니다. 그리고 PNB가 있는 시애틀까지 차로 달려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모래알보다는 조금 더 알갱이가 큰 후원이 될 수 있다고 자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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