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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Aug 23. 2018

너구리가 거부한 내 된장

된장 소스를 곁들인 수육 레시피

밴쿠버의 여름은 된장 숙성에 최적의 기후입니다. 밤 열시는 돼야 해가 지기 때문에, 햇살을 듬뿍 받아 된장이 맛있게 익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날씨가 건조해 구더기가 꼬일 걱정도 없고, 물까지 달아서 맛있게 된장을 담을 수 있습니다. 비만 안 맞히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유리로 된 항아리 뚜껑을 한국에서 가져왔는데, 거기에 맞는 용기를 찾을 수가 없어서 무용지물이 돼버렸습니다. 이민 올 때 항아리를 왜 안 가져왔나 몰라요. 그래도 요즘엔 ‘황토 용기’라는 플라스틱 통을 밴쿠버에서도 구입할 수 있어, 위안을 삼습니다. 플라스틱과 황토라는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두 물질이 하나의 제품으로 태어났다는 게 이해 안 가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된장을 담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대신 저는 비 한번 안 맞히고 열심히 볕을 쪼여주며 된장을 보살펴줬어요. 항아리 안에서 숨 쉬어야 할 된장을 플라스틱 통에 집어넣고, 맛난 된장이 되라고 요구한다는 건 염치없는 바람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렇게 각별한 보호를 받는 된장이 동네 악당들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너무나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 사고였습니다.


사진 왼쪽, 테이블 위에 너구리 발자국이 보입니다.

때는 늦가을이었습니다. 여름 내내 해를 잘 쪼여 된장의 물기가 많이 사그라든 지점이었죠. 밴쿠버는 가을과 겨울이 우기인데, 그 해 가을엔 비가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낮에 된장 뚜껑을 열어 놓았는데, 어느 날 제가 깜빡 잊고 그냥 잠자리에 든 겁니다. 다행히 밤새 비가 오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왔다간 흔적이 보였습니다. 된장을 덮은 천이 고무줄 위로 빠져나가 있는 데다, 깨끗했던 천 가장자리에 흙이 묻어 있더군요.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된장을 살펴보니 한쪽으로 파낸 흔적이 보였습니다. 짚이는 데가 있어 테이블을 살펴보니 역시 너구리!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더라고요. 된장이 입맛에 안 맞았는지 아주 소심하게 조금만 파먹고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아깝지만 된장 윗부분을 깡그리 걷어내 버렸습니다. 이 정도 피해면 천만다행이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요.


한 손(발?)로 통의 가장자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 천을 벗겨낸듯 합니다.


된장을 완전 소심하게 파드셨습니다.


고맙게도 내 된장을 거부해줬지만, 사실 너구리는 이미 우리 집에 들어와 이미 대형 사고를 친 바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먹을 쿠키를 그 녀석들이 홀랑 도둑질해간 겁니다. 쿠키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은 마음에 내놓고 잤더니, 밤새 난장판이 벌어진 거예요. 그 녀석들이 쳐들어 와서는 실컷 먹고, 잔디에 질질 흘리며 가져가기까지 했는데, 발자국을 보니 적지 않은 수가 왔다간 듯하더라고요. 그리고 플라스틱 통 하나가 안보이길래 찾아보니, 집 밖에 그 통이 떨어져 있는 겁니다. 플라스틱은 상처 투성이었고 안에 있는 쿠키는 다 깨져있는 걸 보건대, 그 통은 락앤락이라 열기 힘들어서 던지고 별 짓을 다하다가 포기하고 버린 것 같습니다. 다른 통들은 일회용 플라스틱 통이라 열 수 있었나 봐요. 그런데, 일회용 통이라 해도 어린아이들은 잘 열지 못하잖습니까? 너구리는 작은 손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악력 정말 대박입니다.



잡식성인 너구리는 뭐든지 잘 먹는다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단맛과 고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집은 꼬리곰탕을 밖에 내놓았는데, 너구리가 냄비 뚜껑을 열고 국 안에 있는 꼬리를 홀랑 집어 먹고 갔다더군요. 저도 냉장고에 자리가 없어 갈비탕을 밖에 내놓은 적이 있는데, 그때 비닐을 겹겹이 싸서 놨더니 너구리가 비닐만 뜯다 포기하고 간 적이 있어요. 너구리 녀석은 코가 개코인 데다 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여요. 맘 같아선 다듬고 남은 고기라도 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동네 너구리가 다 몰려오기 때문에, 꾹 참고 그들을 외면하고 살아야 합니다. 쏴리~ 너구리님들~~


너구리님들께서 외면하신 제 된장은 그 후 잘 익어서, 우리 가족에겐 엄치 척을 받았습니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된장이 떨어져 가서 급한 마음에 보리막장을 만들어 된장과 섞어 먹고 있어요. 한국에서 메주를 공수해 올 때까지는 이렇게 버텨야 하는데, 묵은 된장에 막장을 섞으니 염도는 줄고 감칠맛은 더하네요. 묵은 된장도 이미 재작년에 메주콩을 삶아 치대 놓은 것인데, 올해 한번 더 생명 연장을 시켜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랜만에 된장 수육을 만들고 싶어 지네요. 밴쿠버는 여름이 선선하지만,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너무나 더웠어요. 더위에 지친 몸을 구수한 된장 소스에 수육을 찍어 먹으며 달래렵니다. 이 레시피는 제 시어머님께 전수받은 것으로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고, 큰 수고 없이 만들 수 있어 여러분과 나누고 싶네요.



*된장 소스를 곁들인 양지 수육


*재료

- 수육

양지머리           800 그램

물                     2 리터

양파                  작은 거 반개

마늘                  4-5 쪽

생강                  한쪽

파뿌리               약간

술                     1 큰술

통후추               1 큰술(없으면 안 넣어도 됨)

파                      1 단


-소스

물                    1/2 컵

꿀                    1 큰술

된장                 3 큰술

고춧가루           1 큰술

마늘                 3-4 쪽

마요네이즈        약간(원하는 사람만)

마늘                  3 쪽

청양고추            1-2 개


*조리법

1. 물에 양파, 마늘, 파뿌리, 술, 생강, 통후추를 넣고 팔팔 끓입니다.

2. 양지머리를 넣고 삶아요. 젓가락으로 찔러 푹 들어갈 때까지.

3. 마요네이즈를 뺀 재료를 모두 넣고 끓여 소스를 만듭니다.

4. 고기를 썰어주세요. 고기 결 반대 방향으로 썰어야 질기지 않아요.

5. 고기 삶은 물에 파를 살짝 데치고, 그 국물을 고기에 뿌려 주세요.

6. 소스와 함께 서빙합니다. 고소한 맛을 원하는 분은 마요네이즈를 살짝 섞어주시고, 토속적인 맛이 좋다면 넣지 마세요.

7. 고기에 파와 소스를 얹어 먹습니다.


*마마 킴의 요리 꿀팁

1. 고기 삶은 국물은 뒀다가 찌개나 국을 끓일 때 사용하면 좋습니다. 단, 파를 삶아서 미역국엔 사용 못하겠지요.

2. 소스를 만드실 때, 된장찌개 하듯 약한 불에서 오래 끓여야 깊은 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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