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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Apr 10. 2020

빵과 케이크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래도 베이킹은 계속된다 - 밀가루를 쏙 뺀 '아몬드 쿠키'

어릴 때부터 빵과 케이크를 참 좋아했다. 소싯적엔 빵이 밥을 대신할 때가 많았으며, 밥을 먹은 후에도 달짝한 케이크로 입가심을 해야 포만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 빵이나 잘 먹은 건 아니었다. 입맛이 까탈 맞다 보니 늘 맛집을 찾았는데, 그중 김영모 과자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80년대 말의 김영모 과자점은 동네 빵집에 불과했지만, 첫 방문에 나의 원픽이 됐을 정도로 재료와 맛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신라호텔의 신라명과, 김충복 제과점, 나폴레옹 제과, 홍대 앞 리치먼드 등이 나름 고급진 브랜딩을 했었고, 제품 또한 훌륭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들을 최상급 베이커리로 생각했지만, 극성스럽게도 나는 숨은 맛집이었던 김영모 과자점을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제과점 탐방이 최근까지 지속됐으니, 대체 나는 얼마나 많은 케이크이며 빵을 먹어 치운 것인지!



빵과 케이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놀림도 많이 받았었다. 빵에 섞인 방부제를 많이 먹었으니 죽어서 미라가 될 것이라는 저주도 들었었고, 빵순이라는 촌스러운 별명으로도 불렸었다. 그러다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베이킹을 했는데, 내가 만든 케이크와 쿠키를 오물거리며 먹던 두 아이의 작은 입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를 닮아서인지 아이들도 버터와 크림의 풍미가 고급지게 나는 케이크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몇 년 전부터 딸아이가 글루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이어 딸아이를 걱정하던 나까지 건강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



작년 가을과 겨울, 이유 없이 아팠다. 몸뚱이는 걸음을 떼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으며, 머릿속은 공포 영화에 나오는 안개 속인 데다, 극심한 불면증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도 병원에서는 갱년기로 인한 고통일 뿐, 별문제가 없다고 하니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오십 대의 여자가 아프다고 징징대면 일단 갱년기를 의심하기 마련이다. 의사는 물론 본인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수면제와 비타민 D, 영양 있는 식단과 운동'이라는 처방을 맥없이 받아들였다. 일주일에 두 번 하이킹을 하고 영양 풍부한 집밥과 비타민 D를 먹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갱년기라는 말에 설득당한 것이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다른 방도를 모색했겠지만, 패밀리 닥터에게 의존해야 하는 캐나다에서는 별 다른 수가 없었다. 그저 중년 여자의 성장통이 빨리 지나가 주기만을 기다릴 뿐.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갱년기를 심하게 앓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극심한 불면증으로 응급실로 실려 간 지인, 갱년기 우울증이 심해 이 년 동안 집콕을 했던 친구 등을 생각하니 공포와 우울감이 엄습했다. 내 건강이 바닥을 친다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잖은가. 우선 남편에게 큰 짐이 될 것이고, 미국과 토론토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불행을 안겨줄 게 분명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몸이 달고 화가 났다. 가족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도, 귀중한 시간을 침대에서 구르며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당장 유튜브에서 내 증상을 검색했다. 열혈팬들이 연예인 덕질하듯, 의사와 약사들의 유튜브 동영상을 뒤지고 또 뒤졌다.


결과는 장의 문제였다. 눈꺼풀에 올라오는 작은 염증, 손톱의 무좀, 구내염, 불면증, 복통과 설사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장누수 때문이었다. 세상에나..... 내가 장 트라볼타인 줄도 모르고 산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병원에서 사용하는 ‘장누수증후군 진단 리스트’를 본인의 채널에 공개해주신 의사 선생님께 아주, 깊이, 몹시, 매우 감사드린다.


나는 늘 장이 예민했었다. 그래서 찬 음식을 자제해왔고, 유산균도 챙겨 먹으며 나름 관리를 했는데, 바보같이 밀가루 무서운 줄을 몰랐다. 밀가루는 장을 해치는 삼총사(글루텐, 카제인, 알부민) 중에서도 원 탑이라 한다. 그것도 모르고 긴 세월, 많은 양의 밀가루를 뱃속에 들이부어 왔으니..... 그리고 삼총사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그들보다 더 위협적인 것이 있는데, 바로 설탕이다. 설탕은 장뿐 아니라 갱년기에 위험한 식품으로 자주 거론된다. 삼총사의 일원이 아님에도 소설 <삼총사> 주인공인 달타냥과 같은 존재랄까. 그 설탕을 나는 또 얼마나 많이 먹어댔던가!


며느리(이자 나의 수양딸)가 남편 생일에 만든 케이크.  케이크 몬스터들과 케이크 요정이 한 가족이 됐다.


지금까지 먹어온 케이크의 양을 헤아려 보니 오랜 세월 시달렸을 나의 장에게 미안해진다. 케이크는 밀가루, 유제품, 달걀 그리고 설탕을 기본 레시피로 만들어진다. 즉, 장의 숙적들(글루텐, 카제인, 알부민, 설탕)로 이루어진 달콤한 악마인 것이다.


악마를 멀리한 결과, 현재 나는 건강을 거의 되찾았다. 여전히 내 몸은 달콤한 독을 찾지만, 잘 참아내고 있기 때문에 내게 주는 상으로 소심한 탈선 하나를 허락했다. 밀가루와 달걀을 뺀 쿠키를 나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이 쿠키를 지인들에게 선보였더니, "건강한 맛임에도 불구하고 맛있다”라는 평을 했다. 일반적으로 건강 베이킹은 거칠고 맛이 떨어지는데, 나의 아몬드 쿠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공개하는 아몬드 쿠키 레시피는 나 먹자고 개발한 것인지라 최소한의 노동력을 목표로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과 맛이 모두 단순해서 귀차니스트는 물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도 적합한 베이킹이 될 듯하다.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지난날의 베이킹과 비교하니 레시피가 역으로 진화한 듯하다. 아이들을 키울 땐 하루하루가 달랐고 바빴지만, 이젠 단조로워진 나의 삶을 덩달아 따라왔나 보다.



*밀가루 없이 굽는 아몬드 쿠키



재료


아몬드 가루(Almond flour)        2컵

버터                                              70 그램

설탕                                              3 큰술

소금                                             1/4 작은술

바닐라                                         1작은술


조리법


1. 실온에 둔 버터에 재료를 전부 넣고 손으로 주물러 섞는다. 설탕이 대충 녹을 정도까지.





2. 쵸코 쿠키를 만들 경우, 반죽의 반을 떼서 카카오 파우더 2큰술과 섞는다.



3. 동그랗게 빚어 180도에서 12~15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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