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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Apr 16. 2019

가버린 강쥐가 내게 남겨준 시간

15년이란 시간을 함께 한 내 강아지가 사라져 버렸다. 그 아이와 같이 하는 일상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녀석이 빠져나간 나의 삶은 재정비를 기다리는 자동차의 몰골이 되어 엇박자로 굴러가는데, 그것을 억지로  끌어안으려니 힘겹기만 하다.


제한된 시간으로 맺어진 인연인 줄은 알고 있었다. 개의 인생은 짧은 것인지이라, 인간과 정이 들 데로 들어버린 정점에서 작별을 해야 할 운명이잖은가. 그래서 난 늘 진저와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고, 함께 할 시간은 15년 정도라는 경고를 나 자신에게 해왔었다. 그런데 내가 미래를 예언이라도 한 듯이, 진저는 딱 십오 년을 우리 가족 곁에서 머물다 떠났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다지만 이별은 늘 어려운 것이다. 내 삶 깊숙이 새겨진 진저의 흔적은, 그 녀석이 떠난 후 뚫린 구멍을 숭숭 드러낸다. 아침에 나를 깨우던 침대 긁는 소리, 부엌에서 일할 때 내 발 끝을 간질이던 털의 감촉, 음악을 틀면 이 층으로 도망가버리던 녀석의 뒷모습,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나를 반기던 작은 몸뚱이의 따뜻한 온기가 내 인생에서 삭제된 것이다.


그뿐인가! 진저가 내게 남긴 작은 습관들은 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집안을 헤맨다. 아직도 나는 양지머리를 삶을 때면 고기를 기다리던 진저의 까만 눈동자를 찾아 내 발치를 내려다보곤 한다. 내 두뇌는 가끔 진저의 이름을 부르라고 명하며, 밥 줄 시간이 되면 내 시선은 진저의 밥그릇이 있었던 자리를 찾는다. 이젠 밥그릇의 주인이 떠난 그 자리를 청승맞게도 바라보며, 새삼 다시 생각한다. 몸뚱이에 새겨진 습관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눈이 예민해서 열 살 때부터 선글라스를 썼던 진저. 사진은 햇님과 비가 함께 오신 날.


상실을 극복하는 단계에서 나는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충격으로 인해 현실을 부정하다가, 분노하고, 자책을 한 뒤, 절망과 우울감에 빠지고, 마지막엔 현실을 수용한 뒤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슬픔의 5단계'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의 스텝을 밟고 있겠지? 아직도 진저의 급작스런 죽음에 분노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것 보면 말이다. 내게 병을 간호할 시간 조차 주지 않은 녀석은 이렇게 마음의 상처 또한 깊게 남겨주고 가버렸구나!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곤 했던 진저는 거짓말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신장에 병이 생기자 음식은커녕 물까지 거부했는데, 그 결과 건강이 급속하게 악화된 것이다. 서둘러 무지개다리를 건너려는 녀석 때문에 멀리 있던 아이들은 페이스 타임으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저의 고통이 심하니 편히 보내주라는 수의사의 권유에 따라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진저는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진저는 대체 왜 음식과 물을 모두 거부했을까?

우리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빨리 떠나버린 건 아닐까?


순전히 추측이지만, 나는 진저가 우리의 걱정을 눈치챈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늙은 진저를 남에게 맡길 수가 없으니 우린 당분간 여행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대화, 그리고 터무니없이 많이 나온 동물병원의 청구서를 받은 뒤 걱정한 진저의 미래 등을 느낌으로 알아버린 것만 같다. 워낙 눈치 빠른 녀석이었고, 우리와 어느 정도 텔레파시가 통했으니 가능한 추론이 아닐는지.... 물론 남들은 내 의견에 추호의 동조도 하지 않거니와, 심지어 비웃기까지 한다. 개 주인은 원래 자기 개를 과대평가한다나? 그것도 심하게.



어쨌거나 진저는 떠났고 내게는 '자유'라는 것이 주어졌다. 말년의 진저는 네, 다섯 시간마다 오줌을 눴는데, 배변을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관계로 우리의 생활은 진저의 오줌 줄기에 메어있었다. 나는 외출했다가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야 했으며, 남편은 매일 오밤중에 일어나 오줌을 뉘어야 했다. 한 밤중에 진저가 침대 긁어대면 우리 부부가 모두 잠에서 깨곤 했는데, 이젠 밤새 푹 잘 수 있게 됐으며 외출 또한 편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나는 지난 시간을 점검해 봤다. 진저가 주고 간 선물인 '시간의 자유'를 가치 있게 써왔는지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나는 그저 시간이 슬픔을 해결해 줄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저가 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온 것이다. 그래서 최근 나는 하이킹 클럽과 북 모임에 가입했다. 그간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고 조금씩 과거의 상황을 수용하게 되는 날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진저의 죽음을 끌어안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슬픔과 함께 ‘시간’이라는 소중한 선물 또한 주고 간 진저! 이제 내겐 남편과의 여행은 물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열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진저가 주고 간 귀한 시간에 글을 쓰고 있으며, 내일은 하이킹, 이틀 뒤에는 북모임, 주말에는 남편과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진저와 다시 만나게 되는 그날까지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



우리 가족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동네 강아지들을 위한 공을 한 박스 샀습니다. 박스에 진저를 추모하는 글(아래 한글로 된 내용이 있습니다)을 붙이고, 진저가 걷던 산책로에 저 박스를 갖다 놨어요. 그리고 공 하나하나에 진저와의 추억을 담아 떠나보냈습니다. 다른 강아지들에게 보내는 사랑도 더불어서....


사랑하는 진저를 추모하며

이 공을 가져가서 데리고 계신 강아지와 놀아주세요.

그리고 더 많이 쓰다듬어 주고, 뽀뽀도 해주고,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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