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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Jan 15. 2019

우리 복순이

아무리 잘살아도 망할 것 같은 집에는 절대 딸을 시집보내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통용되던 시대가 있었다. 행여 집안에 불상사가 생기면 그 화살은 만만한 며느리가 뒤집어쓰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불행이 닥쳤다는, 논리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못된 풍습이 활개를 치던 세월이었다. 게다가 며느리는 대를 이을 후사가 없을 때에도 의례 불공정한 심판대에 올랐었다. “여자가 애를 못 낳아서 그렇다”라는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날리는 집안 어른들의 눈총과 학대를 감내해야만 했던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개뼈다귀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과거의 며느리가 상식 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것은 기정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조상님들에게 과학적 식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편파적 자세로 며느리를 대한 원인이미신 숭배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그분들도 여자와 남자의 성염색체가 만나야만 아기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후사가 없는 경우, 며느리에게 씨 내리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남편의 불임에 관한 책임을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황당함을 며느리들은 감내해야만 했었다. 하긴..... 그 정도의 누명을 쓰는 것은 사소한 일이었다. 씨 내림을 당한 며느리에게, 출산 후 자결을 요구할 정도로 무자비했던 사회였으니 말이다.


박수근 <빨래터>

어차피 며느리는 집안의 블랙쉽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이건만, 우리네 여인네들은 모질게도 당하고 살아왔다. 본인만 빼고 모두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환경은 어차피 그녀들을 이방인 신세로 만들어버리는데 말이다. 이미 낙동강의 오리 알이건만, 그녀들은 시댁의 야비한 집단 따돌림까지 견뎌내야만 했다. 오죽하면 고초 당초보다 매운 시집살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우리 역사, 특히 조선 시대 이후부터 내려오는 여인 잔혹사에 관한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지만 존 레넌이 자신을 몽상가로 일컬으며 불렀던 노래, ‘Imagine’에 나오는 이상향처럼, 온 세상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아니, 그렇게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서로 감정 다치지 않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박수근 <맷돌질하는 여인>

그 목적으로 나는 작년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소소한 행운들을 다 며느리의 공으로 돌렸다. ‘며느리가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고정관념의 역발상 버전인 셈이다. 내 며느리는 복순이라는 타이틀을 고사했지만 나는 복덩어리가 집 안에 굴러들어 와 일이 잘 풀렸다며, “복순아~ 이게 다 네 덕이야~” 라며 칭찬을 잔뜩 해줬다. 사실 나는 미신을 믿지 않거니와 그 흔한 타로점 조차 본 적 없다. 그런 내가 곰팡내 나는 소릴 하니, 온 가족이 다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이런들 저런들 뭔 상관이 있겠는가. 덕담을 통해 서로 따스함을 나누고, 이를 통해 관계가 돈독해지면 그만이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2018년은 많은 행운이 깃든 한 해였다. 이는 정해진 운명에 의한 운빨일 수도, 각자의 노력에 의한 결과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어느 한 사람이 타고난 복을 몰고 와서 떨어진 행운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의 복순이 타령은 과거 며느리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기 위한 취지였다는 허세를 떨어본다. 그리고 아울러 며느리를 딸로 입양했던 나의 마음 자세를 한 번 더 다잡아 본다. 우리의 고부 관계는 좀 색다른데, ‘시’ 자 들어가는 관계를 형성하고 싶지 않은 바람으로 우리는 수양딸과 양엄마로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관계 성립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니만치,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번 글을 쓰면서 존 레넌의 ‘Imagine’을 몇 번이나 듣고 가사도 다시 살펴보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이상적인 내용이지만, 사실 존 레넌은 노랫말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했다. “Imagine no possessions”를 통해 무소유를 주장했지만, 사실 그는 막대한 부를 소유했고 화려한 생활 또한 영위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남긴 사회적 영향력까지 무시하고 싶진는 않지만, 그의 무소유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진실하게 와 닿지는 않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2019년엔 나 자신을 좀 더 자주 점검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2018년에 여인 잔혹사에 반기를 든 시어머니로 등극했으니, 새해엔 그 타이틀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겠다. 말로만 며느리가 복순이며 수양딸이라고 운운하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자주 점검해 볼 것이다. 갑자기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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