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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Apr 21. 2018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현대인의 모습을 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에서 그린 인류의 미래는 환경 오염으로 식량이 고갈되고, 넘쳐나는 쓰레기로 살 공간 또한 부족한 디스토피아 그 자체입니다. 겹겹이 트레일러를 올려 만든 주거 공간은 당장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해 보이구요. <월 E>에 나온 미래 세계엔 청소 로봇이라도 하나 있었고,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싸구려 먹자 골목이나마 등장 했지만, 그곳엔 잔뜩 쌓아 놓은 쓰레기와 그 쓰레기를 타고 넘나드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끔찍한 미래이며, 영화 속 인물들이 왜 현실을 피해 게임이라는 도피처로 은신하는 지 이해가 갈 만한 상황입니다.



영화의 등장 인물들이 찾는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상 현실은 게임 속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VR 안경(가상 현실 안경)을 쓰고 들어간 오아시스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누립니다. 본래 자신들의 모습 보다 더 출중한 외모의 아바타로 빙의해, 쿨한 차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돈까지 벌며, 실제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행복감을 만끽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현실 보다 게임 속에서 만나는 허상의 인물과 더 나은 소통을 하는데, 그 모습에서 저는 현대를 사는 우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불안으로 현실 도피를 하는 현대인들 말입니다.



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굳이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도 현실을 탈피해 위로를 찾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추억을 아름답게만 포장하거나 왜곡해서 기억하는 무드셀라 증후군, 힘든 삶에 몸과 영혼이 방전돼버리는 번 아웃 증후군, 현실에 대한 불만족으로 새로운 이상을 찾는 파랑새 증후군, 마음 속으로 꿈 꾸는 가상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는 리플리 증후군 등, 뭔 증세들이 이리도 많은지요. 이렇게 현실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게임에 빠지기도 하고, SNS에서 자기 과시를 하며 즐거움을 찾으려 합니다. 실제 불가능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짜릿한 매력이 될테니까요. 이런 면에서 볼 때, 현대인들이 SNS에서 위로를 찾는 것은 게임 속 오아시스로 도피하는 영화 속의 인물들과 같은 심리인 것 같아요. 특히 인스타그램의 경우, 실제 자신의 외모나 재력을 부풀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종종 봅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이런 사람들의 온 라인에 올라 온 거짓된 모습이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게임 속 아바타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스타그램 안의 모습들은 게임 속의 아바타가 그러하듯이, 실제 인물 보다 외모와 능력이 더 출중한 경우가 많거든요.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세계 속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 드보아가 생각납니다. 그녀는 밑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과거로의 회피를 했죠. 당시 미국 남부는 흑인 노예들에겐 고욕의 시절이었지만, 농장주들에겐 풍요로움이 넘쳐나던 땅이었습니다. 그곳 농장주의 딸이었던 블랑쉬는 자신의 화려했던 모습에 집착합니다. 과거의 영광을 모두 날려 버린 그녀의 현재는 늙고 병든 데다, 동생 집에 얹혀 사는 신세인데, 블랑쉬는 비싼 옷을 입고 허세를 부리며 삽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인물들이 도피하는 게임 속 현실이, 그녀에겐 화려했던 과거의 생활이었던 것이죠. 그 차이가 있다면 게임 속 세상은 가공된 판타지이고, 블랑쉬의 화양연화는 이미 현존했던 리얼리티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 언니는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시조이자 원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는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생존의 질주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질주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좌절하고 박탈감을 느끼기 마련이구요. 어쩌면 현대인들에겐 메마른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갈 피신처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오아시스가 필요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근래엔 공포나 불안장애를 치료를 위해, VR 안경을 쓰고 가상 현실 세계로 들어가는 테라피까지 개발됐다고 하네요. 이를 뒷받침 하는 듯 <레디 플레이 원>의 원작자인 어니스트 클라인은 ‘적당히 절제할 수만 있다면 현실 도피는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도 했었구요.


어찌보면 가상 현실은 ‘맛있는 불량 식품’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량식품은 적당히 먹으면 행복감을 주지만, 배를 채우도록 먹으면 건강을 해치게 되니까요. 이젠 우리 삶의 일부가 돼 버린 가상 현실이, 맛있고 건전한 불량 식품이 됐으면 좋겠네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는 영화 안에서만 존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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