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는 엠마야. 엄마는 엄마지. 그리고 할머니는 할머니야. 하지만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이기도 해. 그것 참 쉬우면서도 어렵지?"
아이가 네 살 무렵 읽어주던 책의 내용이다. 이제 막 가족 친지 관계 내에서 누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개념을 잡아가고 있던 시절인데,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에 참 좋은 책이었다. 요즘은 많은 아이들이 할머니 손에 자라나기도 하는데, 우리 딸은 외할머니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저 외할머니가 너를 보셨다면 얼마나 많이 사랑해주셨을까 나 혼자 생각만 해볼 뿐...
우리 엄마와는 11년 전에 이 생에서의 이별을 했다. 엄마는 오랜 기간 투병하시다 가셨는데, 나는 엄마의 그 생활이 막바지를 향해가던 즈음 어렵고 무거운 맘으로 유학을 결정하고 떠났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투병이 시작되셔서 사실 10년이 넘도록 엄마가 얼마나 당차게 병마와 싸워 이겨내고 계시는지를 알았기에, 다소 상태가 안 좋아졌더라도 분명 다시 괜찮아지실 거라는 믿음이 있기도 했다. 내가 떠나던 날 조차도 큰 수술을 받으셨는데,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께 전화했을 때 그다지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타지에서의 시작을 천근 같은 마음으로 맞이했었다.
힘들게 공부하는 것은 차치하고 사실 늘 엄마 생각으로 마음이 무겁고 복잡했었다. 어렵게 결정하고 떠난 만큼, 나의 그 무모했던 도전에서 절대로 실패를 얻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힘들게 내가 학과정을 버텨내는 동안, 엄마도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계셨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는 게 목표가 되었고, 코스 막바지쯤 학점 수료가 완료된 것을 확인 후 졸업식 참석까지도 기다릴 수 없어 황급히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그때 나의 간절한 기도란, 그저 내가 한국에 돌아가 단 한 달 만이라도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걸까. 단 한 달 만이라도 바랬던 시간은 그 후로 나에게 1년 가까운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딸아이는 그야말로 내 '껌딱지'이다. 갓난쟁이일 때도 결코 바닥에 혼자 누워 잠을 자본 일이 없고, 늘 내 배 위에서 잠을 자곤 했다. 정말 어쩌지 못하게 성능이 뛰어난 등 센서를 장착하고 태어나 바닥에 등이 닿는 순간 귀신같이 '빼~~' 울어 재끼곤 하는 바람에 나는 그렇게 하루 진종일 아이를 안고 지내야 했었다. 어떤 날은 정말 단 10분을 내려놓은 적이 있나 싶은 날도 허다했다. 팔이 으스러질 듯 아픈 건 기본이고 자유를 잃은 건 덤이었다.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는 이 아이는 잠도 얕았다. 밤새 수도 없이 깨서 달래고 재우는 건 그저 나의 일상이었고, 늘 부족한 잠으로 쾡한 내 얼굴은 그야말로 좀비에 가까웠다.
복직하기 전까지 순도 100%의 '독박 육아'를 했던 나는 소위 말하는 '친정 찬스', '시댁 찬스'로 아이 신경 안 쓰며 낮잠도 자고, 운동도 하러 다니고, 가끔 부부끼리 외출도 하고 여행도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모두 나에겐 전혀 허락되지 않는 저세상 이야기였으니까.. 아이가 생긴 이후 매 순간 그렇게도 엄마 생각이 났다. 내 몸이 힘들기에 위로받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낳고 이렇게 키웠겠구나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껌딱지 기질을 타고난 딸아이는 여전히 매 순간 '엄마'를 외친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부르는 엄마, 엄마, 엄마.... 어떤 날은 오죽하면 '엄마 그만 좀 불러!'라는 퉁명스러운 말이 나갈 때도 있는데, 어차피 그런다고 멈추지 않는다. 정말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다. 얘는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엄마 타령인가 했더니, 언젠가 뵀던 큰 외숙모께서 답을 던져 주셨다.
"네가 어릴 때 그렇게 엄마만 찾았잖아"
'아.. 나였구나... 이 엄마 타령의 원흉이 나였어... 내가 너에게 그 DNA를 물려줬구나...'
그러고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도 참 힘드셨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내 새끼가 예뻐도 이렇게 쉴 새 없이 치대는 '투 머치(too much)' 애정은 엄마의 영혼을 탈탈 털기 때문이다. 역시 내가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 이래서 엄마들이 나중에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똑같이 당해보라고 말씀하시는것일 게다. 나도 아이 때문에 힘든 순간에는 무심코 똑같이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중에 네가 겪어봐야 엄마 힘든 거 알겠지....'
엄마가 나에게 남겨주신 가장 큰 자산이 있다면 매일 나에게 큰 사랑을 표현해 주셨던 것이다. 매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칭찬해주셨다. 그렇게 맘껏 표현해 주셨기에 내가 어디에 가서든 자신 있게 '나' 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랑받고 있음을 매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우리 딸에게 매일 넘치는 사랑을 표현한다. 내가 예쁘다, 귀엽다, 사랑한다 표현을 할 때마다 우리 집 꼬마 반응이 가관이다.
"나도 다 알아요~"
이게 요즘 스타일인 건가. 아이의 자존감이 심하게 높은 거 아니냐며 남편과 나는 그저 웃는다. 이제는 겸손을 가르쳐야 할 타이밍인 듯싶다.
나는 감수성이 좀 여린 편이라 눈물이 참 많다. 남이 울면 같이 울고 여러 가지 생각에 눈물이 나고 화가 나도 눈물이 난다. 게다가 눈이 커서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감출 길도 없다 보니 간혹 아이가 놓치지 않고 "엄마 울어?" 라며 훅 들어올 때가 종종 있다.
사실 대부분의 눈물은 우리 엄마 생각 끝인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들키는 게 좀 쑥스럽다 느끼는 순간, 아이는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 묻곤 한다.
"엄마, 외할머니 보고 싶어?"
"응.. 항상 보고 싶어.."
"그치만... 이제 내가 있잖아... 내가 엄마 안아줄게..."
아이의 그 한마디에 울컥 나는 무너진다.
'그래.. 이제는 네가 있잖아... 그 누구보다 소중한 내 보물...'
"엄마가 가끔씩 야단칠 때도 있는데, 그래도 엄마가 그렇게 좋아?"
"응..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제일 많이 좋아~ 태양보다 더더더 많이 좋아~"
그야말로 지금은 내가 이 아이의 전부이구나 싶다. 나는 그 어떤 것보다 굳건하고 올바른 우주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아이가 더 큰 세상을 보게 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믿고 바라봐주고 표현해주는 것, 그게 전부 아닐까... 우리 엄마가 내게 쏟아부어 주셨던 사랑만큼, 나도 우리 아이에게 오래오래 사랑을 퍼부어주고 싶다. 우리 엄마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