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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an 11. 2021

솔직한 게 좀 어때서..


"이거 고무장갑 같은데...?"


"어우 과장니임~~~~!!!"


어이없음, 황당함, 짜증남, 자존심 상함, 근데 김 등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그녀의 표정과 외침에 난 그저 미소를 장착할 따름이었다. 그녀가 디자인한 건 분명 드리 헵번이 티파니 앞에서 커피 마실 때 끼고 있던 바로 그거였다. 긴 장갑.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첫 장면


내가 패션회사에서 상품기획 MD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패션이라는 게 옷부터 액세서리까지 아이템이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브랜드마다 여러 명의 MD(merchandiser)와 디자이너가 존재하고, 각각 담당하는 아이템별로 MD와 디자이너가 파트너가 되어 같이 일을 하게 된다. 시즌 기획 단계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정해진 콘셉트에 맞춰 여러 가지 샘플들을 뽑아내고, 다 같이 모여 품평을 하고 샘플들 중 최종 어떤 것들이 상품화되어 나가게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바로 이 최종 상품을 선택할 때가 말하자면 MD와 디자이너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고 가는 전쟁터가 된다. 디자이너들은 나름 고심하여 생각하고 만들어낸 디테일들인데, MD는 이 옷을 생산하는데 단가가 얼마나 들어갈지, 이 디테일이 존재함으로써 상품 가치가 정말 있는지, 그래서 고객들에게 쉽사리 선택을 당할지의 관점으로 상품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생산 단가를 가장 먼저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사실은 크다.


"이거 여기 레이스는 웬만하면 뺍시다아... 이거 한번 더 박는데 가공임이 얼만데.. 이거 없어도 별 차이 없을 거 같은데...."


그러나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고심 끝에 넣은 자식 같은 디테일을 디자이너가 포기할리 없다. 때로는 아무리 그게 있으나 없으나 같은 옷으로 보이더라도, 차라리 그게 없는 게 백배는 낫겠단 생각이 들더라도, 양보해야 할 때는 서로 한 발짝씩 물러나 주는 게 모두가 수월하게 일을 하는 방법일진대, 각자의 이익이 최우선인 입장 차이를 좁히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레이스를 빼도 별 차이가 없다니.. 그들의 영혼을 담은 디자인에 이런 솔직한 망발도 서슴지 않던 나란 사람... 좀 돌려 말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참 솔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호주 생활을 하게 되면서, 뭔가 아주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서양인들 틈에 지내다 보니 그런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내 생각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솔직함은 미덕인 줄 알았었다. 뭔가 복잡한 걸 싫어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친구 사이에서도 솔직함만이 서로 간 우정의 근간이라는 내 나름의 엉뚱한 철학도 있었다.


그런 내가 근 15년간의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사회생활, 정확히는 그 어렵다는(?) 대기업에서의 조직생활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그러했듯 나는 늘 시작에 용감한 편이었다.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는 무모함이 내 무기였으니...


상당히 독특한 백그라운드에 외국에서 오래 묵었다 나타났다는 새로운 직원에 대한 눈길은 호기심 반 선입견 반이었다. 내가 금수저 하나쯤 물고 태어나 일찍부터 외국물 좀 벌컥벌컥 마시다 누군가의 입김으로 낙하산 고이 타고 내려앉은 사람쯤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모양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상이야 어떠했던 나는 그저 외국에서 나타난 조금은 엉뚱하고 독특한 캐릭터의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르는 걸 모른다 솔직히 말했고,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를 솔직히 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직장인치고 상당히 드문 인종인 건 확실했다.




그게 뭐라고 그리도 '솔직함'을 강조하는 나는 가족 간에도 사실 솔직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화를 많이 시도하고 언제나 솔직하게 얘기해줄 것을 요구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 간에 솔직함으로 포장된 '팩트 폭격'이 난무할 때도 있다. 일곱 살에 접어든 딸아이가 이제는 컸다고 본인 생각들을 갖가지 다양한 표현들로 쏟아낼 때면, 저걸 언제 키우나 싶던 게 엊그제인데 깜짝깜짝 놀랄 때가 참 많다. 그런데, 아무리 애가 하는 말이지만, 아이가 아무런 여과 없이 솔직하기 짝이 없는 얘기들을 던질 때면, 그게 은근히 맘 상한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엄마 배가 왜 뚱뚱해?"(네가 들어앉았다 나와서 그런다 왜!)

"엄마 머리 위에 속이 보여" (머리숱은 나의 최고 콤플렉스인데 콕 짚어 말하기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 입에서 냄새나" (니 입도 장난 아냐)


애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듣고 보면 그다지 없는 말도 아니니 그저 속으로 부글부글.. 그러게 이렇게 당하며 살다 보니 너무 솔직하면 이뻐 죽겠는 내 새끼도 쥐어박고 싶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애한테 이제는 하얀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건가...




솔직해서 잘못된 건 없다. 그렇게 솔직하지 말걸 그랬다 후회하는 일은 좀 있을지 몰라도, 솔직했기 때문에 딱히 더 손해 보는 건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내 인간관계의 바탕에는 늘 솔직함과 진솔함이 기본이었고, 그렇기에 나의 진심을 본 사람들은 오히려 더 끈끈하고 탄탄하게 내 사람들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생긴 증상(?)이 하나 있는데, 문득 사색에 잠긴 날이면 과거 어느 때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때는 미처 몰랐던 깨달음이 지금에야 찾아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야말로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싶은 것들 투성이지만, 자연스레 인생에 경험이 켜켜이 쌓이고 세월에 쓸려가야 결국엔 알게 되는 것을 어찌하리..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쿨함으로 잘 포장된 나의 솔직함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는 나는 상대방의 솔직함에 100% 쿨하긴 했던가. 솔직함이 미덕은 아니다 싶어 진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 모습보다는 다소 세월의 중력을 고스란히 지고 있는 듯하다. 아직 저세상 갈건 아니지만 나의 철없던 시절 과거의 그 누구들에게 새삼스레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어 진다.

'그때 고무장갑이라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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