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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Feb 10. 2023

강남의 작은집에 삽니다

나는 쭉 강남에서 성장했다. 그저 내가 자라면서 처해 있던 환경이 이곳이다 보니 강남에 살기 때문에 어떤 특권 의식을 갖는다거나, 내가 더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오히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강남에 사는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타이틀을 만들어주고 있을 뿐.


강남이 개발되던 시절에 우리 부모님은 이 지역으로 이사 오셨고, 그 안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오셨다. 내 기억 속 내가 살던 도곡동은 끝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고, 그 흙바닥 위에는 비닐하우스도 심심찮게 줄지어 서 있는 그런 곳이었다. 아직도 가끔씩 아버지께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평지에 알 박기라도 하셨어야지 왜 그냥 사셨냐며 농반 진반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랬더라면 나도 입에 자그마한 금색 숟가락 하나 정도는 물고 있었을 텐데 하는 허황된 상상으로 웃으면서 말이다.


공교롭게도 남편과 만난 이후 알게 됐는데, 우리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한때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다. 그때 그 코 묻은 아이가 당신이었냐며 웃어댔지만 당시 웬만해선 차 한 대 다니지 않던 남부순환도로에서 공 차고 놀던 대치동 왕자가 바로 자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가 기억하는 강남은 주로 그렇게 '허허벌판'으로 요약된다.




강남에서 성장했으나 그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사람들인 남편과 나는 소위 팔자가 늘어진 그 누구들처럼 집 한 채를 떡하니 받아 안고 살림을 시작하진 않았다. 그저 둘이 회사 다니며 모아둔 돈을 모두 싹싹 긁어 은행 대출을 더해 작은 전셋집에서 새 출발을 했더랬다. 다만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는 전셋집 생활은 절대 오래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바람에서 내가 퇴사할 무렵 정말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은행과 함께 세 식구가 살기에 딱 좋은 아담한 집을 매매했다.


그때는 '영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직전이었는데, high risk high return이라지만 좀처럼 모험을 반기지 않는 남편과 나는 우리 가정의 연 수입 대비 적정선에서 대출을 받았다. 영혼까지 끌어당겨 그 큰 부담을 껴안은 채 살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출 이자도 조금이나마 이자율을 낮추기 위해 다들 변동금리를 택하던 시절에, 소탐대실이라며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절대 고정금리로 가야 한다는 나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현재 요동치는 금리에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우리는 그렇게 조금 모자란 듯 안전한 길을 찾아다니며 살고 있다.

가끔씩 남편과 나는 우리가 그래서 고만고만하게 사나 보다며 웃지만, 요즘처럼 금리가 올라 다들 시름이 깊어지는 시절마음 편히 앉아 있으니 그것에 만족하며 감사할 따름이다.




주변에 재개발하는 아파트가 줄을 섰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상당 지분을 차지하는 우리 친정 건너편 아파트도 그때 그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럭셔리한 아파트로 재탄생했다. 그저 건물만 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갖춰진 편의 시설과 인프라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진심으로 그곳에 살려면 관리비를 얼마나 내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지경이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친구들 중 우리처럼 소박한 환경의 아이들도 많지만, 소위 20~3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친구들도 아주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사자들의 능력이 뛰어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진짜로 시댁이나 친정에서 사주셨다고 하는 집들도 상당히 많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나는 것도 능력이라 하니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아쉬워해 뭐 하겠나. 그저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만 다져볼 뿐.




그래도 사람이다 보니 부럽단 생각이 안들 수는 없다. 아닐 말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고 조금 외곽으로 나간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넓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한 집이 다소 불편할 때가 많아도 이곳을 고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게 가장 큰 이유라 한다면 혼자 계신 아버지 가까이 사는 것에 큰 목적이 있다. 혹여라도 다급한 상황에 금방 달려와줄 수 있는 가족이 지척에 있다는 것은 상당히 심정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는 큰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10살에 이사와 지금껏 내리 살아온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그건 아마도 익숙한 것에서 안정을 찾는 나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큰 집을 얻지 못하는 대신 얻은 것이 있다면 환경 인프라이다. 누구 덕분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공들여 개발한 강남의 생활과 문화적 인프라는 모두가 알고 있듯 너무 잘 갖춰져 다. 그와 더불어 포진된 편리한 교통망 덕분에 어디를 가도 그다지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름 스스로 위안하며 살아간다. 집 커봐야 청소하기만 힘들다고. 그저 내 형편에 딱 맞는 적당한 집이니 가끔씩 튀어나오는 불평도 쏙 집어넣자고 다짐하며 말이다.




불평이 튀어나오는 상황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우리 집은 집만 작고 사람은 다 크기 때문에 행동을 크게 했다간 가구에 발을 찧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럴 땐 에라이~@%^#& 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 세 식구가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소중한 집이라는 점을 늘 상기시키며 애정을 쏟으려 한다. 

아름다운 미니멀리즘도 비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거다. 소박한 공간은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놔도 이미 꽉 차있기 때문이다.(웃음)


사실 아이가 아주 아기일 땐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점점 커가니 전보다 인구밀도가 높아짐을 느끼는가 싶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으니 감사하고, 세 식구가 더 가까이 붙어 크게 행복을 키워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이것이 오늘도 이어지는 강남 달동네의 랩소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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