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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ul 07. 2023

아이가 손해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 집 어린이가 학교를 들어갔나 싶더니 벌써 2학년 여름방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이러다 머잖아 중학생 된단 소리 나오지 싶다.


1학년일 때는 아직 아이도 처음이기도 하고 주변의 분위기상 상당히 많은 것에 엄마가 함께여야 했다. 아이들끼리 동네에서 만나 노는 일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이제 커가는구나 싶게 제법 스스로 약속도 정할 줄 알게 되고 사리분별이 더 명확해져 지난해보다는 조금 엄마의 역할이 덜 수고롭단 생각도 들긴 한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내 손을 덜어내게 되는구나 싶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라 한다면, 이제는 정말 아이의 사회생활이 본격 시작된 것이다. 요즘 들어 전과 다르게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생겼던 갈등에 관해 많이 이야기한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속상했던 사연을 늘어놓는 것이다.


사실 아이는 모든 것을 본인 입장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가만히 듣다 보면 상당히 억울하거나 속상했겠구나 싶은 포인트들이 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우리 아이 잘한다~만 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어보려 하는 편이다. 그래도 주서들은 풍월이 있어 아이의 속상한 마음은 한 번씩 공감해 다.

"그래.. 그건 네가 되게 화가 났을 거 같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저런..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고? 되게 속상했겠네.. 그런데, 그럴 땐 너도 분명하게 말해줘.. 네가 그렇게 말하면 너무 불편하니까 하지 말아 줄래?"

그렇게 해도 계속 해결이 안나는 경우에는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라고 마무리를 한다.




어릴 때 나는 어땠는지 떠올려본다. 사실 동네 친구들 한 무리가 있어도 여자 아이들은 괜스레 편 가르기도 잘했던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은 A라는 친구가 B 하고만 놀며 나를 멀리하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도 A가 나와 마치 절친이라도 된 듯 붙어 다니며 또 괜히 B를 따돌리기도 하고.. 아직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전후사정을 객관적으로 따져보기도 애매하다. 그냥 아이들이라 그런 거다. 어찌 보면 그것 역시 본능적으로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아이들만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유독 아이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쪼르르 달려와 우리를 중재하거나 야단하는 어머님이 계다. 아무개 엄마는 맨날 쫓아온다며 다들 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동시에 어찌 보면 그것 조차 부러움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가끔 친구들 사이에 속상한 일이 생겨 집에 와 엄마에게 가서 혼내주라고 징징대다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우리 엄마는 일체 아무런 반응도 안 하셨었다. 어쩜 그렇게 나의 속상한 마음을 몰라주나 야속함을 느꼈었다. 어쩜 그렇게 나서서 도와주지 않으시나 원망도 했다. 만일 요즘처럼 오은영 박사님이 그 시대에도 활동하셨더라면, 아이의 속상한 마음은 공감해 주세요라고 알려주셨을 텐데 말이다!




우리 아이는 형제 없이 혼자 자라다 보니 이런 단점이 있다.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집에서 투닥거리며 치열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악을 써보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투쟁해 볼 경쟁 상대가 없다. 물론 아이의 성향 자체가 순한 탓도 있지만, 환경적으로 그런 갈등 상황을 겪어보질 못하니 친구가 대놓고 속상한 말을 해도 거기에 딱히 반응을 잘 못하는 편이다. 간혹 내가 함께 있을 때도 그런 경우를 목격하는 경우가 있다. 어른인 내가 봐도 저 아이는 왜 저러나 싶어 슬쩍 부아가 치미는데, 당연히 내가 나서서 뭐라 할 수는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


아이한테 맞서 싸우라고 가르칠 수도 없고, 험난한 세상 앞으로 살면서 속상한 일은 더 많이 당해볼 텐데 어떡하면 아이가 '덜' 상처받으며 대응하도록 알려줘야 할지가 요즘 새로운 고민거리다. 그저 아이에게 재차 반복해 주는 말은 이것뿐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너의 생각을 얘기할 줄 알아야 하고 결코 억울한 마음을 눌러 담고 참는 게 답은 아니라고..


원래 시끄럽게 짖는 개보다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는 개가 더 무섭다. 가만히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물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 살다 보면 때로는 시끄럽게 짖는 것도 무기가 되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말이 있듯, 반응 안 하는 사람을 만만하게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반세기 가까이 살아오며 깨달은 경험을 이제 9년 차 인생에게 어떻게 단번에 알게 해 줄까마는... 어차피 스스로 경험하고 헤쳐나가며 배워야 할 텐데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빨리 깨우쳐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래서 한평생을 경험하고 깨달은 지금의 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달인이라고 자신할 수 있던가? 어차피 실수하고 깨닫고 배우며 한평생을 살아가는 게 인간사인 것을. 그저 9년 차 인생이 제 세월의 몫만큼이라도 놓치지 않고 배워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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