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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Oct 04. 2023

세상 모두가 알지만 실은 잘 모르는 그의 일생

모차르트

클래식은 몰라도 모차르트 모르는 분은 안 계실 거라 생각니다. 많은 분들이 오래전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로 그를 만나보셨죠. 그가 엄청난 음악의 천재였고 상당히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그를 지독하게도 질투하던 살리에르라는 인물이 있었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대략적으로 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사이에 일곱 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네 번째 태어난 딸 난네를과 1756년에 일곱 번째로 태어난 막내 울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녀라고 합니다. 당시엔 태어나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으니 세상 시작부터 참 험난했죠. 누나 난네를과 울프강은 집에서 아버지로부터 모든 교육을 받았는데요, 일곱 살에 *합시코드를 배우기 시작한 누나를 옆에서 보고 바로 따라 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가 세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라고 해요. 그야말로 신이 주신 탤런트를 가진 '신동'이었던 거죠. 겨우 다섯 살이 됐을 땐 짧은 소곡(小曲-작은 규모의 곡)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모차르트가 연주를 하면 아버지가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아, 오해하실까 봐 부연 설명 드립니다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 역시 실력 있는 음악가였답니다. 그러니 받아 적을 수 있었겠지요.

*합시코드(harpsichord)- 14세기경 이탈리아 또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고안된 건반악기로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독주 및 합주 악기였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아들의 천재성을 자랑하기 위해 아버지 레오폴드는 아들이 여섯 살 때부터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귀족들 앞에서 연주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동수단이 겨우 마차밖에 없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어린 나이에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는 게 생각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거라 추측해 볼 수 있죠. 천재로 사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결코 모르는 삶인 거죠~)


영화뿐 아니라 우리는 '모차르트'라는 뮤지컬을 통해서도 그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데요, 거기서는 모차르트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드는 아버지 때문에 방황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나라나 매 한 가지일 텐데, 자식을 내 뜻대로 하려는 부모들의 실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종 일어나는 모양이에요.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아주 귀여운 외모로도 사랑받았다고 합니다. 신동의 완성조차도 얼굴인가요? 아이가 천재적인데 귀엽기까지 했으니 부모님이 얼마나 뿌듯해했을지 안 봐도 알 것 같네요. 하도 귀여워서 도자기로 빚은 소년 같다며  도자기 소년(Porcelain Child)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하죠.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됐는데, 그가 피아노 앞으로 걸어가다가 넘어졌다고 합니다. 넘어진 모차르트를 여제의 막내딸인 '마리아 안토니아'가 다가와서 일으켜줬다고 하는데, 이때 모차르트가 고마움을 표하며 이다음에 크면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어요. 마리아 안토니아가 한 살 연상이었는데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참 맹랑했던 거 같죠? 그로부터 7년 뒤 마리아 안토니아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었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비운의 왕비,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마리 앙투아네트'에요. 독일식 이름 '마리아 안토니아'가 프랑스식 '마리 앙투아네트'로 변한 거죠.



살리에리는 정말 그를 죽이고 싶을 만큼 질투했을까?


많은 분들이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끝없는 '질투의 화신'으로서 '살리에리'라는 인물을 기억하고 계시죠. 영화 속의 살리에리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모차르트의 천부적 재능을 질투하다 결국엔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게 정말 사실이었을까요? 살리에리는 당시 상당히 유명했던 음악 학원의 원장이었다고 합니다. 왠지 학원이라 하면 우리나라 대치동에서나 등장해야 어울릴법한데,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에도 학원이 있었다니 왠지 생소하면서도 상당히 친근하네요. 살리에리가 운영하던 학원 출신 중에는 다른 사람들도 아닌 무려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니 사회적으로 그가 누렸을 부와 명성은 결코 모차르트를 질투할 정도의 하찮은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역시 사교육이 알짜배기인 건 시대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살리에리는 그만의 만족스러운 인생을 충분히 잘 살았을 수도 있는데, 훗날 연극과 영화를 통해 지독하게도 모차르트를 질투하던 인물로 그려지는 바람에 사실 관계를 확인할 길 없는 '오명'을 뒤집어썼으니, 그가 하늘에서 원통해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짧은 생애, 그러나 넘쳐날 만큼 주옥같은 작품들의 향연


모차르트는 35세의 짧은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도 스무 편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걸작들이 여럿 되죠. 지금까지 우리가 접하는 모차르트의 수많은 작품들을 들어보면 과연 그는 음악 속에서 '실패'라는 걸 조금이라도 겪어보긴 했을까 의아해지기도 합니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하나같이 주옥같아서 그 어떤 곡도 버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중의 막귀가 들어도 그저 아름다운데 말입니다, 후세 대대손손 역시 걸작들을 남긴 수많은 유명 작곡가들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칭송하기에 바빴거든요. 전문가들이 봐도 그야말로 '갑 오브 갑'이었단 의미겠죠.


그가 작곡한 오페라들 중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는 대표작들은 대체적으로 그의 인생 후반에 등장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죠반니', '코지 판 뚜떼' 등은 오늘날 세계 여러 오페라 하우스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또한 '밤의 여왕' 아리아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작품 '마술 피리'는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였던 1791년에 작곡됐습니다. 세계적인 디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께서 부르시는 바람에 아마도 대개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걸 모르신다면 그동안 지구에 살지 않으셨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요.


수많은 명작들이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피가로의 결혼'에 대해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페라도 아침 막장 드라마처럼! 18세기이게 머선 일이고! 족보가 뒤집히는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이제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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