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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Oct 04. 2023

알고 보니 그 남자가 내 아들이라고?

18세기 막장 드라마,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모차르트가 남긴 오페라 작품들 중 현대까지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라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피가로의 결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이태리어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즉, 코믹 오페라 장르에 속합니다. 당시 상당히 인정받던 각본가인 '로렌조 다 폰테'가 스토리 작업을 하고 모차르트가 음악을 완성하여 1786년 5월 비엔나에서 초연되었어요. 시대적 배경으로는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사회상을 담고 있는데, 귀족들의 행태를 풍자하고 있어 상당히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입니다.


피가로의 결혼에는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고 플롯이 상당히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보니, 스토리를 미리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관람을 하게 된다면 무대에서 일어나는 대환장 파티에 무슨 소린지 당최 따라갈 수가 없어 속 타는 대환장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럼 애먼 티켓값 본전을 떠올리다 아련히 꿀잠에 빠지는 수밖에요. 모차르트의 천재적 음악이 속절없이 자장가가 되는 순간이죠.


본격적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살펴보기 전에 간략히 언급해 보자면, 훗날 로시니가 이 작품과 연결되는 전작前作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합니다. 요즘은 영화의 프리퀄이 본편보다 후에 제작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전작이 훗날 등장한 게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죠.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번 짚어보고 넘어가도록 할게요. 뒤에 이어질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와의 연결 고리도 참고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 알마비바 백작 - 하녀 수잔나를 꼬시려 질척대는 바람둥이 귀족(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를 사모하는 젊은 귀족)
* 알마비바 백작부인 - 수잔나와 결탁하여 남편을 골탕 먹이고 참교육하는 부인(세비야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로지나)
* 피가로 - 백작의 하인, 수잔나의 약혼자(세비야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그 이발사 피가로)
* 수잔나 - 백작부인의 하녀, 피가로의 약혼녀
* 케루비노 - 백작부인을 연모하는 백작의 어린 시종
* 마르첼리나 - 그 언젠가 피가로에게 돈을 빌려줬던 채권자(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바르톨로 박사의 하녀)
* 바르톨로 - 피가로에게 복수할만한 이유가 있는 남자(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의 후견인)
* 바질리오 - 알마비바 백작 집안에 고용된 음악가(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바르톨로와 한통속인 음악 선생님)
* 안토니오 - 백작 집안의 정원사
* 바르바리나 - 정원사 안토니오의 딸

그냥 나열된 이름만 봤는데 이미 피곤하지 않으신가요? 너무 지치기 전에 서곡을 한번 들어보고 넘어가시면 피로가 가실지도 모릅니다.

피가로의 결혼 서곡 들으러 가기



전반의 스토리는 이러합니다. 알마비바 백작의 궁정에 고용된 하인들 중 피가로와 수잔나가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연필도 아닌데 흑심을 품은 백작의 새까만 마음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밉니다. 이러한 백작의 흑심을 무사히 피하기 위한 이들의 묘책과 술수로 모두가 속고 속이며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 실마리가 풀려가는 난장판이 벌어지는 거죠.


사실 지금이 어떤 상황이냐면요, 옛날 중세시대부터 아주 어이없는 악습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시녀의 첫날밤을 먼저 취하는 영주의 봉건적 권리, 즉, 결혼 초야권이란 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작인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알마비바 백작이 로지나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이 초야권을 폐지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작품에서 백작은 피가로가 결혼하는 상황에 수잔나에게 눈독을 들이며 자신이 폐지한 초야권을 다시 되살리려는 못된 마음을 품고 있는 중이랍니다.(이런 도둑님을 봤나!) 그러나, 수잔나와 피가로는 그리 만만한 하인들이 아니랍니다.


전체의 줄거리는 슬며시 옆으로 치워 두고요, 이제부터 작품 속 등장하는 재미난 해프닝으로 넘어가 볼게요. 닥터 바르톨로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전작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현現 백작부인 전前 로지나와 결혼하려다가 피가로의 계략으로 인해 실패하는 바람에 그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인물이죠. 이런 사실 관계를 잘 모르고 피가로의 결혼 작품만 보면 바르톨로가 왜 피가로에게 뜬금없이 복수하려는지 납득이 안 갈 수도 있어요.


닥터 바르톨로가 예전 자신의 가정부였던 마르첼리나라는 여인을 대동하고 나타나는데, 어떤 사연이 있냐면요, 피가로는 오래전 마르첼리나로부터 큰돈을 빌렸는데 제때 갚지 못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했어요. 세상에 대부업체 이자율보다 더 무섭지 말입니다. 그런데, 피가로가 돈을 제때 갚았을까요? 그랬다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지겠죠. 피가로에게 앙갚음을 해야만 하는 닥터 바르톨로가 복수를 위해 마르첼리나와 동맹을 맺었지 뭐예요. 돈을 제때 못 갚으면 결혼하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할 수밖에 없게끔 자신이 변호하겠다면서 말입니다.


피가로를 마르첼리나와 결혼시켜 버리겠다는 굳건한 결심을 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알마비바 백작이죠. 그래야만 초야권을 되살리는데 걸림돌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아예 신랑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수잔나가 온전히 자신의 차지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백작은 닥터 바르톨로가 제기한 소송에 강력히 동의하면서 피가로에게 마르첼리나와 결혼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영리한 피가로는 순간 임기응변의 대가답게 이렇게 응수하죠.

"우리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나의 원래 이름은 라파엘로였고 어릴 때 누군가에 의해 납치당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럴 때 이런 음악 나와야죠.

딴딴! 따라단! 

그때 마르첼리나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외치죠.

"아들아! 암 유어 마더!"

띠로리~ 하마터면 아주 잠시나마 결혼할 뻔했던 남성이 갑자기 아들로 둔갑하는 순간!

그러나 설상가상 일타쌍피 엎친데 덮친 격 일거양득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하여간에 엄마가 나타난 동시에 아빠가 커밍아웃을 합니다. 바로 닥터 바르톨로였어요!

이들의 동맹 관계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단순한 동맹 관계만은 아니었던 거예요. 사랑의 결실을 맺을 만큼 대단히 진했던가 봅니다. 갑자기 가족 상봉의 아름다운 순간이 펼쳐지고 말죠. 세상에, 이보다 더 콩가루일 수 없다! 18세기 막장 드라마, 스페인 버전이었습니다.




이 작품 속 등장하는 케루비노라는 역할은 흔히 Trouser Role(바지 역할)이라고 부르는데요, 이게 뭐냐면 여성의 보이스 타입 중 낮은 음역을 담당하는 메조소프라노가 남성의 역을 맡는 거예요. 대개는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시기의 소년을 표현하고 싶을 때 이렇게 여성이 배역을 맡게 됩니다. 백작부인을 남몰래 흠모하는 케루비노가 노래하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한번 들어보실까요?

케루비노의 아리아 들으러 가기


또 한 가지 많은 분들이 영화를 통해 기억하시는 듀엣(이중창)이 있습니다. 바로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교도소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찾게 된 음반을 방송실의 문을 잠그고 교도소 전체에 틀어 들려주는 장면이 죠. 이때 등장하는 음악은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라는 곡인데요,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계급의 차이를 넘어 알마비바 백작을 함께 곤경에 빠트려 그의 수작을 막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 여인로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을 묘사한 곡입니다.

안 들어보면 섭섭하겠죠.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이중창 들으러 가기


사실 이 작품 속에는 몇 가지만 손꼽아 좋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주옥같은 음악으로 가득 차 있어요. 다만, 17~18세기 오페라의 주 특성이라 한다면 모든 대화가 레치타티브(Recitative)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 부분을 노래라고 표현하기엔 좀 무리가 있고요, 아주 간단한 음의 오르내림에 대화를 얹어서 어찌 보면 이건 무슨 타령인가 싶은 부분이 많이 옵니다. 등장인물들 간에 대화 형식의 대사가 오가는 게 아니라, 노래인 듯 노래 아닌 노래 같은 레치타티브로 대가 오간다는 특징이 있지요.


전체를 듣기엔 이 부분 때문에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데요, 사실 이태리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다면 이런 대화 부분도 흥미롭게 듣게 되겠죠. 그러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말이 아닌데 어떻게 온전히 즐기겠어요. 그나마 지루함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 한다면 조금씩 건너뛰며 듣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참으로 번거롭죠! 그렇기 때문에 극장에서 전반적 연기 잘 어우러진 무대를 직관하는 것이 '재미'를 배가시키는 방법이긴 합니다.




모차르트의 수많은 옥석들 중 대표작으로 '피가로의 결혼'에 대해 나눠봤어요.

작품의 상세한 스토리를 모두 펼쳐놓고 싶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마 얼마 못 가 모두 이 글을 닫아버리셨을 거예요. 무려 4막으로 구성되어 3시간에 이르는 길고 복잡한 스토리이니 말입니다.

여기서는 이 작품에서 주목할만한 포인트들 몇 가지와 더불어 나름의 하이라이트만을 말씀드렸어요. 혹시 전체가 궁금하시다고요? 그럼 <알아두면 부티 나는 오페라 상식>으로 연결해 드리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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