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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Oct 12. 2023

플라시보 효과? 와인도 약이 된답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익히 들 아시죠? 실질적으로 약효가 있지 않은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믿는 상태에서 복용하면, 실제 상태가 개선되거나 이로운 작용이 일어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의학적으로는 정말 나아지는 게 아닌데 나아진 것처럼 느끼는, 즉, 착각의 현상인 경우도 있어 되려 치료 시기를 놓칠 위험이 있다고도 하죠.

아 그런데 그런 복잡한 얘기 말고요, 이제부터 아주 귀여운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Elixir of love)'은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을 바탕으로 도니체티가 작곡했어요. 전체 2막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1832년 5월 밀라노에서 초연을 올린 이후로 오늘날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도니체티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을 했죠.


이 작품의 배경은 어느 한 작은 시골 마을이에요. 그곳에 사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청년 네모리노가 마을 지주의 딸인 아디나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어느 날 아디나가 농부들을 모아놓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있었어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중세 유럽의 전설처럼 가공되어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하나인데요, 트리스탄이 이졸데에게 사랑의 묘약을 먹이는 내용을 듣고 네모리노는 정말로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는 그런 묘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자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뻑 군인 하사관, 벨코레라는 인물이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마을에 등장해요. 오자마자 그는 아디나에게 한눈에 반해버리죠. 어차피 저 잘난 맛에 사는 남자인데 가릴게 뭐가 있겠어요~ 바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아디나와 결혼하게 될 거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벨코레를 보며 아디나는 내심 콧방귀를 뀌어댑니다. 속으로는 그랬겠죠~

'흥~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우리의 순진남 네모리노는 이 상황이 어땠을까요? 가뜩이나 자존감바닥에 붙어 있고 자신감은 '잣'이냐고 물어볼 때나 쓰는 말인 줄 아는 마당에 얼마나 속이 탔겠어요~(잣인감?) 멀끔한 장정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반한 여인에게 사귀자는 고백도 아니고 대번에 결혼하겠단 선언을 하다니요.

이럴 때 네모리노가 택한 방법은 바로 '정공법'이었습니다. 진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아디나에게 고백하죠.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네모리노의 고백에 아디나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럴 리가요~ 그녀는 아직은 좀 철없고 콧대 높은 데다 약간은 네(사)가지가 없는 그런 아가씨였거든요.


BGM(미안하다 사랑한다 OST 中 마지막 선택)


세상 무너지는 네모리노에게 한줄기 빛이 나타났죠. 마을에 돌파리 약장수, 둘카마라가 찾아옵니다. 그는 순진한 마을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 외치며 약을 팔고 있는데, 이거 정말 아무런 약효도 없는 가짜 약이라는 거 척 보면 다들 아시겠죠?


상심한 네모리노는 둘카마라에게 묻습니다.

"정말로 이졸데가 먹었던 사랑의 묘약이 있나요?"

(둘카마라의 촉 발동)

"암요~ 암요~ 내가 마침 따~악 그 묘약을 가지고 왔네! 세상에 이렇게 운이 좋으실 수가~ 이게 아무 때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둘카마라는 네모리노에게 아주 싸구려 포도주를 들이밀고 네모리노는 수중에 가진 돈을 모두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이 약장수가 어찌나 장사수완도 좋고 촉이 좋은지 말이죠, 자기가 가짜약을 팔아놓고 들키기 전에 내뺄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 묘약은 24시간이 지나야 약효가 나타난다고 말해요. 한시라도 마음이 급한 네모리노는 재빨리 그 소중한 묘약을 벌컥벌컥 들이켭니다.


안주도 없이 깡 포도주를 냅다 들이켰으니 우리의 네모리노 어떻게 됐을까요?

낮술은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본다 하죠~ 그는 이제 엄청나게 취해서 상당히 대범해졌습니다. 아디나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떨지도 않아요. 수줍게 말 한번 걸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뵈는 게 없습니다. 길에서 춤도 추고 주접을 떨기 시작해요. 그리고 아디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죠. 어차피 다음날 약효가 나타나면 아디나가 자신에게 푹 빠질 거라며 속으로 엄청나게 의기양양하거든요. 


그런데 잠깐! 여러분은 이 느낌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관심을 주던 상대방이 갑자기 태도가 변했다면? 뭔가 싸하죠? 왜 그러는지 궁금해지죠? 하~이것이 운명의 장난이라던가요~


갑자기 아디나의 속마음 이게 됐어요.

'흥! 칫! 뿡!'

그녀는 약간 홧김에 벨코레의 청혼에 Yes! 를 외치고 맙니다.


딴딴! 따라단!


아디나가 벨코레와 바로 '오늘' 결혼식을 올린답니다. 이를 어쩌나! 사랑의 묘약을 사발로 드링킹 했음에도 빨리 약효가 나타나지 않으면 보통 우리는 약장수를 찾아가 멱살을 잡지 않을까요? 그런데, 네모리노는 허를 찌르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너무도 다급해진 네모리노는 다시금 둘카마라를 찾아가 애절하게 뭐라고 했을까요!?


"그거보다 더 센 약을 주세요!"


그러나 더는 내어놓을 돈이 없는 네모리노에게 벨코레는 짤 없이 약이 없다며 쌩~ 가버리죠. 좌절한 우리 순진남. 축 쳐진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반전의 인물이었습니다. 바로 벨코레였죠! 그의 사연을 들은 벨코레는 네모리노에게 군대에 입대할 것을 제안해요. 그렇게 하면 자신이 월급을 가불 해주겠다고 꼬십니다. 벨코레는 아디나에게 질척대는 이 경쟁자(?)를 어서 전쟁터로 보내 제거해야겠단 속셈이 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쯤에서 또 반전이 한번 일어나 줘야 하잖아요. 네모리노의 삼촌이 돌아가셨는데 막대한 재산을 조카에게 남겼다는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집니다. (그 와중에 본인만 몰라요) 온 동네 여인들이 네모리노에게 꼬리 치기 시작하죠. 네모리노는 가불 받은 월급으로 좀 더 센! 가짜 약을 사 마구 들이킨 상태였고요. 그러니 네모리노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하~ 이제 약발이 먹히는구나~ 온 동네 여인들이 다 나한테 반하는구나~'

싸구려 포도주를 사발로 더 마셨을 테니 정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취한 상태였겠죠?

그는 너무 행복합니다 지금 이 순간!


온 동네 여인들에 둘러싸인 네모리노의 모습을 발견한 아디나는 묘한 질투심에 휩싸입니다. 그녀는 둘카마라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죠. 아무것도 모르는 둘카마라는 네모리노가 사랑에 빠진 여인의 마음을 사려고 전 재산을 털어 사랑의 묘약을 구입했고, 더 많은 양을 사기 위해 군대에까지 지원했단 이야기를 해줘요. 그러면서 천하의 약장수 둘카마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디나에게 한 마디 던집니다.

"아가씨도 이 묘약을 잡숴보려오?"

그러나 아디나는 단호하게 말하죠.

"나는 그런 약 없이도 스스로의 매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살 수 있어요!"


슬그머니 아디나의 마음이 움직였어요. 다소 무모했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게 되죠. 아디나는 네모리노를 찾아가 진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실은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당신의 군대 입대 계약서를 벨코레에게 돈을 지불하고 받아왔다고 말하죠. 그 계약서를 내미는 아디나와 네모리노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모든 상황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야기가 좀 길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상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사랑의 묘약은 상대방이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왜 본인이 마시고.....???

네모리노는 정말 맑고 투명함의 끝판왕인 듯합니다. 어쨌거나 약발이 딱 먹혀들었으니 그럼 된 거죠~


도니체티의 음악 역시도 다 너무나 주옥같은데요, 그중에서도 약장수 둘카마라와 네모리노의 이중창 부분은 음악이 즐겁기도 하고 상황이 우스워서 한번 들어보시도록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둘카마라는 열심히 가짜 약의 효능에 대해 떠벌리는 중이고, 네모리노는 그의 말에 엄청난 희망을 품고 들떠서는 아마 둘카마라는 천국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칭송하는 내용이거든요. 세상 순진한 청년과 속이 시커먼 약장수의 유쾌한 이중창 들어보시죠.

네모리노와 둘카마라의 이중창 들으러 가기


아마도 사랑의 묘약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아리아일 거라 생각해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라는 곡인데 이 노래 역시 심심찮게 다양한 매체에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종종 등장하는 곡이다 보니 익숙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지 않으실까 생각됩니다.

상황을 보면 아디나가 결혼을 한다니 네모리노가 속상해 남몰래 눈물을 흘렸을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네모리노가 자신이 사랑의 묘약을 들이켜고 아디나를 무시했을 때 그녀의 눈에 맺혔던 눈물을 떠올리며 그녀 역시 분명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그런 내용이에요. 반전이죠~


오페라를 보러 가면 간혹 이렇게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아리아를 연달아 두 번 연주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아리아 역시 그에 해당되는 곡입니다. 순수히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인 거죠. 

네모리노의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들으러 가기





이번 작품은 하이라이트라기보다 전체의 스토리를 다 풀어 드렸는데요, 그래도 좀 더 디테일한 내용과 음악을 곁들여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이번에도 역시 <알아두면 부티 나는 오페라 상식>으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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