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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Oct 13. 2023

죽어서야 진가를 인정받은 비운의 천재

조르쥬 비제

아마 오페라 카르멘은 알아도 비제는 모르시는 분들 꽤 많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의 가장 대표작인 카르멘은 되게 귀에 익숙한 선율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그만큼 방송에 자주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렇게 유명한 작품을 작곡한 장본인이 '비제'라는 사실은 잘 연결 짓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게 어쩌면 그가 사망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주욱 이어지는 비제에 관한 가장 안타까운 점이 아닐까 싶어요. 왜 그리 안타까운지 이제부터 비제의 삶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할게요.


조르쥬 비제는 1838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1875년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버지는 성악 교사였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던 전형적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적 재능을 기본 DNA로 장착한 사람이었죠. 그만큼 실제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가 불과 열 살밖에 안 됐을 때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당대 저명했던 음악가들로부터 수학을 했는데요, 열여덟 살 때는 *칸타타 <다윗>이라는 작품으로 로마대상 콩쿠르에서 입상을 했다고 하죠. 이 로마 대상(Prix de Rome)이 뭐였냐면, 단순히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분야까지 통틀어 다양한 문화 예술 문화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되는 대단히 명예로운 상이었다고 합니다.

* 칸타타 - 17~18세기에 걸쳐 발전한 성악곡의 한 형식으로 독창, 중창, 합창과 기악 반주로 구성되어 있다. (원빈이 마시는 커피 우유 이름이기도 함)


비제는 일찍부터 오페라 작곡에 주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오페라가 그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장르였던 가봐요. 그런데 참 인생이란 얄궂기 짝이 없죠. 좋아서 열심히 한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따라주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열심히 작품을 내어 놓아도 늘 대중의 시선은 그에게 싸늘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제는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했지만 무려 10년이 넘도록 크게 빛을 보지 못해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하죠. 남얘기 같지 않아요. 뭔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은 쉬워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갈길이 멀고 험할까 생각해 본 적 다들 있으시잖아요. 알고 보면 그들의 성공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지만 말입니다.



인생은 때로 메인이 아닌 사이드에서 터지기도 한다.


그러던 비제에게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찾아왔답니다. 1872년에 <아를의 여인 모음곡>으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이 작품은 오페라는 아니었어요. *보드빌 오페라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L. 카르발로의 권고로 작곡을 했다는데, 알퐁스 도데의 희곡인 '아를의 여인'에 들어갈 27개의 연주곡을 만들어 묶어놓은 모음집이었어요. 알퐁스 도데는 우리에게 '마지막 수업'이라는 단편소설로 상당히 친숙한 작가이죠.

*보드빌(Vaudeville) - 17세기 말엽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된 버라이어티 쇼 형태의 연극 장르이다.
(출처: 위키백과)


오페라 한 길만을 그렇게 열심히 팠어도 크게 빛을 못 보다가 살짝 다른 길로 가봤더니 그렇게 좋은 성과를 얻어낸 거죠. 여하 간에 '아를의 여인' 모음곡의 대성공으로 인해 비제는 상당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데요. 그래서 다시금 새로운 오페라에 도전합니다. 그게 바로 오늘날까지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카르멘'이었어요.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서가니 문제!


왜 오늘날까지 우리가 위대하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잖아요. 사실 그런 경우의 대다수는 대중이 익히 알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파격적인 새로운 것을 선보였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비제 역시 '카르멘'에서 상당히 혁신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오페라에서는 주로 신화나 아주 화려한 귀족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뤄왔다면, 카르멘에는 하층계급의 노동자들과 집시가 등장하거든요. 이렇게까지 극 현실적인 하층민들의 이야기를 보며 주 관객층이었던 부르주아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자연스럽게 이 작품 전체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비제는 이런 대중의 반응에 우울증에도 걸리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될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요. 사실 이런 대작을 내어놓는 아티스트들은 대게 상당히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같은 상황이라도 좀 더 받아들이기가 힘겨웠을 거란 짐작은 됩니다. 아마도 오랜 세월 마음 고생하며 누적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거겠죠. 결국은 비제의 건강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졌다고 해요. 그러던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고작 서른일곱 살에 말이죠.


당시 파리에서는 카르멘이 혹평을 얻었지만 다른 유럽 도시들에서는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고 해요.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잖아요. 그런데, 정작 비제는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까지 넘치도록 사랑받을 거라는 사실은 짐작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요.


그럼 비제만 몰랐던 카르멘의 인기!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랑받는지 카르멘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다음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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