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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ul 25. 2021

제 뇌는 중도성향입니다만...

넌 너무 감정적이야


그 언젠가 대학 시절 친구라는 아이 하나가 내게 조언하듯 던졌던 멘트이다.

마치 감정적이라서 결함이라도 있는 듯 들린다. 나는 당시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었고, 다소 표현에 솔직한 성격상 그렇게 정의 내리기 딱 좋은 사람이긴 했다.

소위 음악은 '감정'으로만 한다고들 쉽사리 생각하지만, 사실 악보 안에 들어있는 음표와 규칙들이 어느 정도로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섣불리 감정에 치우쳐 연주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감정적'으로 보이는 연주조차도 치밀하게 계산된 '악상기호'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악가라서 감정적이고, 그러기에 뭔가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처럼 표현하는 건 너무 오만한 발상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통념적으로 좀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을 좌뇌형 인간이라 부르고, 좀 더 감성적이며 예술적인 사람을 우뇌형 인간이라고 딱 잘라 정의 해왔다. 그러나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으로 선을 그어 정리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는 학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의학박사인 '하루야마 사게오'가 저술한 '우뇌를 활용하는 뇌내 혁명'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 좌뇌와 우뇌의 기능에 대해 상당히 새로운 정의를 내려주고 있다.


좌뇌와 우뇌는 상당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뇌의 기능은 좌뇌라고 인식이 되어 왔기 때문에, 좌뇌형 인간을 좀 더 스마트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야마 박사는, 좌뇌는 이익과 손실뿐만 아니라 쾌감과 불쾌감도 담당한다고 정리하며 덧붙인다. 기존에 우리가 우뇌의 기능이라고 인식한 감정 부분을 좌뇌에서 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따스한 마음의 배경에는 그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고 싶다는 욕구가 깔려 있으므로, 이것은 마음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즉 쾌감을 추구한 결과라고 정의했다. 우뇌의 작용이라고 인식했던 감정 통제는 사실 좌뇌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뇌내 혁명 中)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사실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아주 많이 '독특한' 인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왜냐하면 피아노 친다더니 오페라 코치가 되었다던데, 어느 날 갑자기 경영학을 공부한다며 훌쩍 유학을 떠나버렸던 좌충우돌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친구들 중 음악 전공자 친구는 스스로를 감정적인 우뇌형 인간으로 정의 내리고,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는 스스로를 논리 중심의 좌뇌형 인간으로 정의 내렸는데, 나는 그들을 짬뽕시킨 중뇌형 인간으로 정의되어버렸다. 예술을 하던 애가 뭔가 논리적인데 지나치게 현실적이기까지 한 복잡 다단한 인간이라는 거다.


그러나, '뇌내 혁명' 책에 의하면 우리는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내가 마치 결함이라도 있다는 듯 들어온 '감정적'이라는 표현을 돌려 생각해보자면, 나는 충분히 좌뇌를 잘 사용 중인 사람이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마치 태어남과 동시에 성인이 되도록 왼쪽에 붙어있는 뇌는 단 한 번도 사용을 안 해본 사람처럼 취급을 받다가, 뒤늦게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겠다며 마른걸레 비틀어 짜듯 머리 때려가며 공부를 통해 어렵사리 잠들었던 좌뇌를 깨워낸 인간 승리의 결과물인 것처럼 생각을 지만, 실상은 나는 좌뇌가 활성화되어 있었기에 감정적일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왜 내가 감정적인 것에 대해 이렇게 항변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건 내가 오랜 세월 동안 감정적이기 때문에 마치 미숙한 인간인 것처럼 '취급'을 받아온 데에서 비롯된 나름의 열등의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닐 말로 좀 감정적이면 어떻단 말인가.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초 이성적 인간들을 향해 '넌 너무 감성이 메말랐어'라고 맞받아치면 그만인 것을..

사람은 모두 제각각이고, 나는 그저 당신과 '조금' 다를 뿐이니 말이다. 그 다름이 잘못은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감정에 지배받는다. 감정으로부터 기분이 형성되고 그 기분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그렇게 놓고 보면 우리 몸의 '감정'이라는 신호 체계는 사실상 가장 실세(實勢)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감정적이라는 말이 마치 마음껏 드러내서는 안 될 부분을 들킨 것처럼 다소 부끄러운 듯 느껴야 하는 지적질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이러나저러나 도토리 키재기일 뿐인 똑같은 인간들끼리 서로 간에 우열을 가르기 위해,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만들어낸 하나의 프레임일 뿐...


나는 뇌과학자가 아니니 늘어놓은 말들은 그저 내 개인의 부족한 생각인지라 심오한 학문적 진리와는 거리가 상당할 테지만, 생각을 그려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 나의 뇌가 어느 쪽이 더 잘 돌아가든 간에 그게 다른 사람의 지적질 소재가 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저 한번 짚어보고 싶었다.


어쨌든 우뇌를 더욱 활성화 함으로써 인간은 괴로운 상황에서 더 긍정적으로 사고하며 살 수 있고, 엔도르핀이 활발하게 분비된다고 저자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니, 좀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좌뇌형 인간임에만 뿌듯해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우뇌를 발달시켜볼 방법을 궁리해보는 게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어느 쪽 뇌가 더 발달을 했던지 간에, 나는 감정에 충실하기에 삶이 더 풍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감정적이라 행복하다.





*사진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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