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뮤 Aug 09. 2021

미용실 잔혹사

내가 시드니에 살고 있을 때의 일들이다.

가뜩이나 멋 내고 싶은 20대 시절 헤어 스타일에 죽고 사는 그야말로 폼생폼사였는데, 이를 위해 수없이 찾아다닌 미용실에 관해서는 참으로 할 말이 많다.


사실 그렇지 않나? 사람의 인상 중 8할은 헤어 스타일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머리 모양에 따라 줄 수 있는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이 헤어 스타일은 참 웃기게도, 남들이 보면 매일 그 머리가 그 머린데, 내 눈에는 매일매일이 다르고 딱 내 생각에 바로 이거야! 하는 황금비율과 타협 불가한 절대 불문율이 각자 있다는 것이다. (매일 그냥 모자를 눌러쓰고 나가는 우리 남편 같은 사람도 물론 있다)


내가 원하는 머리 모양에 대해 헤어 디자이너 분께 아주 섬세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멀쩡한 모국어로 장황하게 설명을 해줘도 헤어 디자이너와 나는 곧잘 동상이몽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결과물을 열어봤을 때, 바로 이거다! 대만족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기대만큼 그다지 많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저 나는 A라고 설명했으나 나온 결과물은 A-1 이어도, 딱히 이상하지만 않다면 '응??'이라고 생각하며 '괜찮네요'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이럴 땐 그저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하다) 헤어 디자이너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 놨을지라도 만일 그게 안 어울린다면 그것은 오롯이 내 머리카락과 얼굴의 잘못 것이다.




모국어도 이러할진대, 애매한 영어 실력으로 살아가던 과도기에 영어로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해야 하는 미용실을 찾는 건 실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손재주로만 친다면 누가 과연 한국인들을 따라올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외국인들은 비싼 인건비를 곧이곧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사실 머리 한번 하는데 비용이 곱절은 더 비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나름의 변변한 이유들로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미용실을 매와 같은 눈으로 탐색하곤 했다. 말이 탐색이지 몇 군데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의 폭은 아주 좁았다.


여기서 찾아오는 딜레마가 있다. 대부분 시드니에 있던 한국인 미용실은 미용사로서 경력이 충분한 분들이 아닌 경우가 당시에는 사실 많았다. 이민을 준비하며 그곳에서 밥벌이를 해결하기 위해 급히 한국에서 미용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을 따서 나가시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런 미용실에 가서 내 머리를 해주십사 그대로 맡겨놓는 건, 말 그대로 '실험대상'이 되어 드리는 아주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짧은 영어로 가서 어버버버 설명하고 이상한 머리를 만들 것이냐, 유창한 모국어로 상세히 설명하고 이상한 머리를 만들 것이냐, 이것이 선택의 문제였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아닐 말로 헤어 스타일링을 하며 나름의 기분 전환을 하자고 가는 건데 뭔가 어렵게 설명을 하고 노심초사 앉아 있다가 그 대가로 비싼 돈을 지불하고 나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마는 자고로 '모' 아니면 '도'


당시에 난 어깨 밑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분들은 너무도 잘 아실 테지만, 생머리를 오래 하고 있으면 웨이브를 넣어주고 싶고, 웨이브 머리를 오래 하다 보면 쭉쭉 펴 생머리를 하고 싶은 게 여자들 마음 아니던가.

나는 오랜만에 파마를 해야겠다 맘을 먹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한국인 미용실을 찾아 나섰다. 살던 곳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았고 번화가 역세권에 위치하고 있어 손쉽게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는 헤어 디자이너 언니가 나름의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풍기려 애쓰며 친절하게 머리를 말아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머리에 파마 뼈다귀 좀 말아본 유경험자로서 왠지 느낌이 싸했다. 왜 그리 머리를 마는 손가락에 힘은 없으며, 뭔가 얼기설기 대충 말린 듯한 불길한 예감. 그러나 나는 전문가가 아니고 말아 주는 미용사님은 전문가라 하니 별 말 안 하고 잠자코 있었다. '잘 될 거야'라는 나의 밑도 끝도 없는 긍정 마인드가 또 발동한 것이다. (이럴 때 진짜 싫다 너!)


머리를 다 풀었을 때, 뭐 아주 빠글빠글은 아니지만 나름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대충 나왔다. 나는 원래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어서 대다수의 헤어 디자이너 분들이 가장 난이도가 높은 머리카락이라고 평가하는데, 그 자연스러운 웨이브는 분명 내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서 생긴 일이니, 내 머리가 잘못한 일이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샤워를 하며 머리에 물만 묻혔다. 파마한 다음날 샴푸로 머리 감으면 안 되는 건 이제 온 국민 상식 정도 되니 아실 듯한데, 안정적으로 해당 스타일잘 정착 때까지 일단 샴푸로 씻어내는 일은 하면 안 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래서 머리에 물만 묻히고 나왔다.

그런데 나와서 거울을 보니, 어제 파마한 머리가 왜 생머리가 되었다? 응? (깊은 한숨)

이건 100% A/S가 필요한 상황. 나는 또다시 그 미용실로 향했다.


"어머 죄송해요 고객님~ 제가 다시 말아 드릴게요.. 비용은 물론 안 받고요~"


거기서 멈춰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단 사후 처리를 받기 위해 머리에 다시 파마 뼈다귀를 잔뜩 말았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엄청 세게도 만다. 과연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불안이 엄습했다.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말아두었던 뼈다귀를 풀어내는데 내 동공이 흔들린다.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당시 내가 아마도 좀 뻔뻔한 아줌마였다면 엄청난 '진상'과 '바닥에 드러눕기' 콤보를 시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나름 청순(?)했던 20대 초반 시절, 나는 우간다 아줌마가 되어 미용실을 나섰다. 

(우간다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면 좋겠다)

약간 이렇게 됐는데, 이 사진은 '김희선'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괴리감이 존재한다.





그때 머리에 있던 것은 다시마 한 장..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을 정도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침에 헤어드라이어와 롤빗을 들고 전쟁을 치러야 그나마 좀 '인간'의 모습이 되곤 했다. 그나마 건조한 나라였기에 천만다행이지, 그곳이 습기 충만한 나라였다면 아침에 헤어드라이어와의 전쟁이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어떻게 하든 어차피 난 뽀글이 아줌마여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지내다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헤어드라이어와의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또 다른 (검증 안된) 미용실을 찾았다. 이쯤 되면 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가 좀 궁금해진다. (한국만큼 풍부한 미용실 인프라 속에 살지 못했던 탓으로 돌리고 싶다)


"파마를 풀어주세요.. 그냥 생머리를 하고 싶어요.."


이렇게 명확하고 간결하게 의지를 전달했건만, 생머리를 얻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당시에 나름 따끈따끈 새로 등장한 미용 시술법이었던 '매직 스트레이트'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뭔지도 모르고 '스트레이트'에 꽂혀 오케이를 날렸다. (이건 분명 무식한 거다)

소위 고대기라 불리는 열을 내는 판판한 다리미 같은 집게로 머리를 한 땀 한 땀 (좍좍) 펴서 치고 들어갈 빈틈 하나 없이 "쌩" 머리를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매직 스트레이트였다. 그건 머리가 악성 곱슬이거나 머리숱이 많아서 좀 더 차분한 스타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시술법이지, 나처럼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는, 게다가 그렇게 숱이 풍성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하는 게 아니라고 훗날 어떤 헤어 디자이너님이 말씀해 주셨다. (분노 게이지 상승)


그래서 그렇게 뜨거운 다리미로 머리를 쭉쭉 다리고 펴서 어떻게 됐을까?

아주 얇고 까만 종이 한 장이 왼쪽 어깨 즈음에서 시작해 오른쪽 어깨 위로 늘어져 있었다. 정말 다시마 같았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얼굴이 그렇게나 크고 뚱뚱하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고 말았다.(예전 미스코리아 대회에 언니들이 얼굴 작아 보이려고 사자 머리를 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내 머리통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얇고 까만 다시마 한장은 나를 그렇게 얼큰이의 세계로 안내해버렸다.

다시마 한장을 물에 적셔 머리에 올려놓으면 딱 그 모습!






이제야 다시금 돌이켜보니 너무나 가슴 아픈(??) 나의 흑역사들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미용실 인프라 속에 나를 가장 인간답고 가장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주시는 좋은 헤어 디자이너 분을 만나 다행히도 사람 꼴을 갖추고 살게 되었다.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물론 지금은 시드니에도 실력 있는 헤어 디자이너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하튼 나의 젊은 시절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내맡겼던 머리로 인해 웃지 못할 일들을 참 많이도 겪었던 것 같다.

그나마 젊은 시절이었기에 그 조차도 나름의 시도였고 회복이 가능했지만, 만일 지금의 내게 그런 미용실 흑역사가 발생한다면....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난이도 높은 내 머리를 잘 만져주시는 단골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본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 & 구글 서치




         


        

매거진의 이전글 망설이는 당신을 위한 세 가지 키워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