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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Aug 15. 2021

괜찮아 개털이야

엄마표 야메 미용실 시즌 2 - 파마 레시피 대방출!

미용실을 가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다양하다.

예쁨 혹은 멋있음을 장착하기 위함, 지저분한 머리를 해결하기 위함, 때론 변신하기 위함 등. 아름다움을 만들어가기 위한 저마다의 목적과 이유로 미용실에 방문한다. 그러나 내가 미용실을 방문하는 목적은 어느 순간부터 단하나였다. 젊음을 완성하기 위함, 이름하여 새치커버! 아직 흰머리로 뒤덮일 나이가 아니건만, 10대부터 새치의 기미가 서서히 올라오더니 본격적으로 머리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리를 많이 쓰면 새치가 생기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ㅋ) 흰머리카락이 머리의 지분을 점점 더 넓혀가고 있다.


어학사전을 검색해보면, 젊은 사람의 검은 머리에 드문드문 섞여서 난 흰 머리카락이 '새치'라고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드문드문에서 그치면 참 좋겠는데, 새치로부터의 횡포로 인해 어느새 젊은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지긋지긋한 새치! 불청객으로부터 생겨난 미용실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다. 

새치로 점령당한 머리카락이 보기 싫다 -> 미용실에 간다 -> 새치염색을 한다 -> 펌도 하고 싶다 -> 미용사 언니, 오빠께 상담한다 -> 머리가 상해서 권하지 않는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보름 뒤에 오란다 - > 귀찮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 결국 못 간다 -> 그사이 머리는 새치로 다시 점령당한다. 

이런 미용 루틴으로 인해 펌을 안 한 지 꽤 오래되었고, 몇 년 동안 단발머리를 고수하다가 바쁜 일상이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긴 머리가 되어있었더랬다. 미용 알고리즘에 빠져서 펌은 평생 못하는 것이라고 단념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어느 날! 나의 레이더망에 딱 걸려든 것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삐삐 롯드"였다. 인터넷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삐삐 롯드에 나의 호기심이 반짝였다. 아들의 펌을 위해 성황리에 오픈했던 엄마표 야메 살롱! 역대 최고의 조회수를 찍었던 '야메라서 더 행복해요' (https://brunch.co.kr/@miyah28/80) 이탄을 적어보고 싶어 졌다. 그때 말았던 롯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바로 삐삐 롯드였던 것. 일반적인 파마 롯드는 고무줄을 튕겨서 고정하는 형태인데, 삐삐 롯드는 똑딱 핀처럼 똑딱 누르면 고정이 되어서, 당시 고무줄 튕기기가 미용기술이라고 느꼈던 나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아이템이 분명했다. 나는 귀신에 홀린 듯 인터넷 쇼핑으로 눈에 불을 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야매 펌 아이템들이 집에 도착해있었다. 




엄마표 야메 미용실 시즌 2 오픈! 개털을 각오한 무모한 용기

첫 번째 도전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그런지 용기는 더욱 진화되었다. 이번에는 셀프 펌을 꿈꾸며 야심 차게 야메 미용실 시즌 투가 오픈되었다. 개털이 되어도 단골 미용실에 가면 해결이 될 것이라는 무모한 용기를 품고 삐삐 롯드로 내 머리를 지지고 볶는 것을 실천해보려 했다. 경험상 아마추어의 파마 롯드는 얇은 것일수록 잘 나온다는 분석이 있었으므로, 삐삐 롯드는 강한 웨이브 용(3, 4, 5호)으로 구입했다.


삐삐 롯드에서 나온 파마 약인데, 인터넷 평을 보니 순하고 나름 좋다고 되어있어서 망설임 없이 구입했고, 1번과 2번을 용기에 담아 번호를 적어두었다. (1번은 펌용, 2번은 중화제)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머리를 하려고 폼을 잡는데.... 아뿔싸, 안 되겠다!! 앞과 옆머리는 얼추 말아보겠는데, 뒷머리는 도저히 손이 안 돌아가는 것이다. 너무 무모했던 것. 번개 같은 속도로 준비했지만, 번개 같은 속도로 정리했고, 대안을 찾았다. 시작도, 포기도, 정리도 너무 빠르다ㅋㅋ 이대로 접었다면 이 글은 시작도 안되었겠지? 내가 찾은 대안은 순임 씨였다. 엄마에게 SOS를 쳤고, 파마 도구를 몽땅 싸들고 곧바로 친정으로 내달렸다.  


야메의 불시착! 내 머리를 부탁해~

 

부랴부랴 친정으로 달려가서 엄마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마치고, 침착하게 절차대로 임했다. 시술 전 나풀거리는 개털 머리를 찍어보며 긴장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참고로 엄마는 젊었을 때 미용학원을 잠깐 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왠지 믿음이 갔다. 나는 인터넷으로 공부한 파마 절차를 적어놓은 수첩을 보여주며 재잘재잘 설명했고, 엄마는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파마 재료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시술 들어갔다. 


1. 물을 뿌려 머리카락을 촉촉하게 해 준 뒤, 파마 약 1제를 전체적으로 발라준다.

2. 파마 섹션을 3구역 정도로 나누어 구역을 고정시켜준다.

3. 적당량을 잡아서 파마 종이를 올리고, 파마 약을 묻히며 삐삐 롯드로 말아 올린다.

4. 아래쪽부터 시작했고, 잔 것에서 굵은 로트로 말아 올렸다.

5. 다 말았으면 비닐 캡을 씌우고 열처리 15분, 열 모자 벗은 후 15분 방치한다.

6. 파마 약 2 제롤 바르며 중화 작업한다. (중화작업은 펌의 탄력을 위한 것) 

7. 10분 후 롯드를 푼다.

8. 머리를 감는다.


야메의 후예! 과연 그 결과는?


잘 나온 것 같은데?

분명 젖었을 때는 잘 나온 것 같았다. ㅋㅋ

그런데, 머리카락이 마르는 과정에서 서서히 나풀거리기 시작하더니 지푸라기화? 되는 것이다..... 

그나마 뒷머리는 괜찮은데, 앞머리 심하게 꼬불거리고, 옆머리는 바스락바스락 아주 난리가 났다.ㅋㅋㅋ

내 머리를 하고 난 뒤 이어서 내가 엄마 머리를 해주기로 했었는데, 엄마는 한마디로 재빨리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그냥 미용실 가서 하련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할 말이 없다. 이 모든 판은 내가 짠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눈치 없는 남편은 궁금함을 못 참고 전화 와서 사진을 보여달란다. 그리고 또 이 한마디를 남긴다.

"가발 쓴 줄 알았다."


또다시 번개 같은 속도로 미용도구들을 정리했고, 단골 미용실에 전화를 해서 미용사 언니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ㅋㅋㅋ  미용사 언니와 바로 약속을 잡았고, 고마우신 언니는 내 머리에 갖가지 영양을 투척하며 마법을 부려주었다. 과정은 엉망진창이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야메 미용실 시즌 투!!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엄마의 미용은 훌륭했다. 나의 머리카락이 문제였던 것. 

이미 비포 사진을 찍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내 머리카락이 무척 건조하고 상해있었는 데 삐삐 롯드에 정신이 팔려 파마를 하는 것만 생각했지, 영양이나 클리닉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했던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셀프 파마를 시도하겠다는 분이 계시다면, 반드시 본인의 머리 상태를 체크해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파마를 할 때 미용실에서 영양을 권하는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건강한 머리카락이라면 위 절차대로 진행했을 때 만족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처럼 잦은 염색으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머리카락이라면 

괜한 고생 마시고 그냥 미용실을 가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




첫 번째 성공을 발판 삼아

두 번째 성공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은 '실패'라는 것이었다.

실패는 분명 불청객이다.

하지만 그 불청객으로부터 의외의 선물을 받았다.

잊혔던 엄마의 취미를 재발견할 수 있었던 것.

머리를 마는 동안 엄마는 무척 즐거웠다.

나의 무모한 도전이 

미용기술을 다시 배워보려는 엄마에게 

새로운 도전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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