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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Apr 28. 2021

야메라서 더 행복해요

엄마표 미용실 홈앤 펌! 과연 그 결과는?

혹시 야메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요즘 여러 가지 야메 짓을 하고 있는데, 문득 야메라는 말의 본 뜻이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떡하니 뜻이 나와있었습니다.


야메(야매)

야메란? 비 합법적인 방법으로 일을 할 때 쓰이는 말이다. 물건을 팔 때나 물건을 살 때, 혹은 어떤 일을 배울 때 쓴다. (예) 운전면허를 [야메]로 땄더니 하나도 모르겠다.


저는 일상에서 야메 짓?을 꽤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집에 사과그림을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미숙한 그림 실력으로 열심히 사과를 그린 후 액자에 넣어 걸어두었습니다. 사과 그림을 본 친정엄마는 해바라기를 집에 걸고 싶다며 해바라기 그림을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야메지만 열심히 그렸고, 완성된 해바라기 그림은 곧 친정집의 벽에 걸릴 예정이죠. 여기서 끝나면 좋을 텐데 이번엔 다른 버전으로 야메 짓을 했습니다.


엄마표 야메(펌) 용실 오픈!

손 볼 때가 된 아들의 머리는 덥수룩하니 볼 때마다 쑥쑥 하더군요. 자르려니 어중간하고, 펌을 하자니 이제 좀 컸다고 별로 안 내켜해서 일단 내버려 두었죠. 그러다가 쿠*에서 셀프 펌이라는 것을 보고 바로 구매했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와 함께 셀프 펌 도구들이 도착했어요. 기막힌 타이밍! 


이런저런 도구들을 호기롭게 바라보며 언박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불렀어요.

"아들아~ 이것 봐! 엄마가 오늘 네 머리를 멋지게 꾸며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뭐... 뭐.. 뭐라고? 내 머리를?"

"응. 예쁘게 말아줄게!"

"아니야. 엄마, 난 괜찮아!"

"아니야. 아들, 엄마가 안 괜찮아."

"엄마 미용 기술도 안 배웠잖아."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어요. 이럴 땐 비겁하지만 아들의 약점을 긁어줍니다. 먹는 것에 약한 아들에게 떡볶이를 제안했고, 우린 극적으로 타협을 보았어요. 


저는 겁도 없이 아들의 머리를 만졌습니다. 삐뚤빼뚤 술 한잔 걸친 것 같은 불규칙한 정렬들... 이 마저도 얼마나 힘겹게 말아 올린 것인지 몰라요.

소근육 발달이 덜 된 아이처럼 한 땀 한 땀 힘겹게 감아올렸습니다. 위대한 미용사분들의 손길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아들은 금방 알아차렸죠. 

"엄마, 정말 괜찮은 거 맞... 맞지? 내 머리 괜찮은 거지?" 

"처음 하면 원래 다 어설프고 그런 거야. 그래도 잘 나올 거야."

무슨 자신감인지. 이럴 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저를 보고 한 말인 것 같아요. 

아들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저는 어떻게든 마무리하려는 의지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건 다 따라 했어요.


1. 비닐을 덮는다.


2. 열 모자를 씌우고 15분 동안 열처리를 한다.


3. 모자를 벗고 20분 동안 방치한다.


4. 롤 하나를 풀어서 탄력을 확인한다.


5. 탱글탱글 탄력이 확인되면 중화 약을 바른다.


6. 바른 상태에서 10분 정도 방치한다.


7. 하나를 풀어보고 탄력이 완성되면 전체를 푼다.



어설프지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펌을 진행한 야메용실! 과연 그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야메다 보니 오래 지속될 것 같진 않지만 이 정도면 나름 만족해도 되겠죠?

끝도 없이 의심하던 아들도 만족하는 눈치였습니다. 신이 났는지 드라이를 하며 콧노래도 불렀어요. 



야메지만 마음껏 즐기는 인생

야메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도 저는 야메로써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펌도 하고...  그런데 타인으로부터 나의 이런 행위들이 야메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썩 유쾌할 것 같진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메로서의 인생을 꿈꾸기보다 프로로서의 인생을 꿈꿀 테니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야메이기 때문에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야메 딱지를 가슴에 부착하고 어떤 일을 시도하게 되면, 부담감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그 일에 더 몰입할 수 있고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야메여서 글을 잘 못써도 괜찮고, 그림을 잘 못 그려도 괜찮고, 펌이 잘 안 나와도 괜찮을 거예요. 다만 영원히 야메로 불리고 싶진 않겠죠. 


살아가면서 야메로 누적된 경험치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다 보면, 때가 되어 야메 딱지가 뚝 떨어질 거예요. 그리고 프로 딱지가 붙는 순간이 올 것이고요. 인생은 그런 것 같아요. 비록 지금은 야메로 살고 있지만, 야메로써의 인생을 마음껏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멋진 프로의 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꿈꿔봅니다. 


이렇게 엄마표 야메 펌을 시도한 경험치를 획득하면서 또 한 번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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