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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먹통이 불러온 패닉의 단상

by 마마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설레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직장을 다닐 때야 일요일 저녁만 되어도 이미 기분은 바닥을 기어 다니곤 했지만, 풀타임 주부를 맡은 현 상황의 나에게는 사실 월요일 아침이 가장 반갑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 내내 식구들 챙기느라 가장 바빴던 건 나이니, 출근하고 등원한다고 모두가 집을 나서고 났을 때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란 그야말로 꿀이 따로 없다. 단, 그들이 휩쓸고 간 폭풍의 흔적 같은 집안꼴은 제외하고 말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마음의 평화를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보통 모닝 루틴으로 지키고 있는 간략한 운동을 하고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물건이 너저분하게 늘어져있는 건 그렇다 치고, 어쩜 그렇게도 먼지가 많은지 매일 청소기를 들이대도 그렇게 한 켜가 쌓여있는 먼지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보통 집안일을 할 때는 오디오북으로 책을 듣는다. 오늘부터는 새로이 '미움받을 용기 2'를 듣기 시작했는데, 어렵기도 하지만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터라 요즘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그렇게 책을 들으며 집안 정리를 싹 다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휴대폰을 좀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남편한테 보낸 문자가 안 보내진다.


'어 이게 왜 이러지? 라우터에 문제가 있나?'


잠시 켜놨던 TV도 갑자기 끊어진다. 라우터 전원을 껐다 켜서 리부트를 시켰는데, 여전히 와이파이가 안 잡힌다. 뭔가 이상이 생겼더라도 남편이 집에 올 때까지 어차피 내가 손볼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럼 오늘은 와이파이 없이 살아야 할라나 생각하며 아예 접속을 껐는데, 이건 또 왜 이런가. LTE도 먹통이다. 그야말로 네트워크가 다 사망한 상태였다. 그래서 살펴보니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기기가 다 꺼진 상태였다.


'아놔... 얘네 왜 이래.. 이 지역 전체가 다 나갔나 보네...'


바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거는데, 이번엔 고객센터가 먹통이다. 이건 분명 서버가 터진 거다. 아마도 사람들이 고객센터에 폭격기 백만 대 수준으로 전화를 걸어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숨)

다른 회사 사용하는 다른 집 네트워크를 몰래 동냥해야 하나. 갑자기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들이 와이파이 네트워크 잡히는 곳을 찾아 화장실 구석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앉아서 가만히 생각을 했더니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오디오북, 못 듣는다. 카톡? 당연히 안된다. 음악 스트리밍, 세상에 are you kidding me!? TV도 안 켜져.. 참 나원, 브런치도 안 열리니 글도 못쓴다. 라디오 조차도 앱으로 듣다 보니 그것도 못한다. 고요 가운데 다 돌아간 빨래를 꺼내어 털어 널며 보통 때 같으면 귀에 열심히 들려오고 있을 오디오북의 부재가 새삼 너무 허전하고 이상할 따름이다.


이제부터 조용히 종이책을 펼쳐 들고 뭔가 목가적인 아날로그 시간을 좀 즐겨볼까? 근데 그런 건 조용한 새벽에나 하는 거지 왠지 지금은 아닌 거 같다. 주말에 못 본 SNL도 보려고 했는데 뭔가 생각했던 걸 못하게 되니 너무 섭섭하다. 어쩜 이젠 집에 CD 플레이어조차도 없다. 그 흔한 음악을 들으려면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그게 편리한 줄만 알았지, 그 네트워크 하나 끊겼다고 나의 생활이 이렇게 송두리째 무기력해질 줄은 정말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생활은 편리함으로 가득 찼는데, 그 편리함이 모두 '네트워크'라는 보이지도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그게 끊어지는 순간 우린 그 누구보다도 무능한 인간이 돼버리는 거였다. 과거의 선조들이 보면 그야말로 이해 불가한 상황이 아닐 수 없을게다.



월 E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지구가 망하고 인간들이 모두 화성으로 이민을 갔는데, 그 인간들의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다. 모두 앉아서 편리하게 생활하다 보니 다리는 작아지고 힘이 빠져 걷지도 못해 뭔가를 타고 다니고, 배 둘레에 지방이 엄청나게 붙어 체형이 모두 오뚝이같이 변해있는 모습이다. 현대 우리의 생활상을 보면 그게 단순히 애니메이션에서 허구로 만든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다분하단 생각이 든다.


요즘 가까운 거리도 왜 그리들 걸을 생각을 안 하는지 안전장치도 없이 전동 킥보드 타고 쌩쌩 달려 다니는 모습이 아슬아슬 위험천만해 보인다. 그저 지나는 모습을 보며 저리도 다리를 아꼈다가 어디다 쓰려고 하냐며 혀를 끌끌 찼는데(그야말로 꼰대의 모습이라 하겠지만) 이런 생활 패턴이라면 다리가 퇴화된 신 인류가 등장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행히도 네트워크 먹통 사태는 대략 30분 만에 원상복구 되었다.

너무도 당연하다 싶은 것이 사라졌을 때 느껴지는 당황스러움을 잠시 경험하고 나니 그저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우리네 삶에 대해 새삼 진지하게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제 한 나라가 마비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네트워크 하나만 무너지면 사실상 모두가 혼란에 빠지게 될 테니 말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기처럼 이토록 당연하게 느껴지는 편리함들이 조금은 무섭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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