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主授業: 경주마 히든티아라
그 말은 외로웠다.
태어난 지 2년 갓 넘긴 어린 암망아지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하늘을 날아 이 땅을 밟았을 때, 진이 다 빠졌을지언정 씩씩하고 건강하게 생애 첫 여정을 마쳤을 때, 특별히 반겨주는 이 없었다. 참 잘 왔다, 대견하구나, 정 붙일 동물 아니라곤 해도 하나의 "생명"이라면 받을 법한 격려 한 마디 없었다.
말은 지체 없이 부산으로 실려갔다. 전략적으로 좋지만 먼 곳. 쉬이 가보게 되지 않는 곳이었다. 무소식에 익숙해져 시간은 흘러갔다.
데뷔전에서의 선전은 물론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곧장 부상 소식이 날아들었다. 말은 수술을 했고, 무려 6개월을 쉬었다.
회복을 마치고 말은 부산으로 돌아갔다. 이제 드디어 건강히 경주마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수 있겠다며 기대를 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도와줄 이 하나 없는 한밤중의 마사에서 말은 갇혔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어떻게든 일으키기 위해 발을 구르고 몸부림을 쳤다. 다음날 아침 발견했을 때 말은 만신창이의 상태로 일어나 있었다. 스스로를 구하고 살아있었다. 그러나 사투의 여파는 몸에 고스란히 남았고, 말은 건강을 되찾지 못한 채 또 한 번 휴양길에 올랐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회복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굽에 온 급성 염증으로 뼈가 내려앉기까지 불과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말은 발이 너무 아파서 걷지 못하게 됐다. 서있는 것조차 버겁게 됐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복귀를 꿈꾸던 말의 코 앞까지 죽음이 다가왔다.
히든티아라의 얼굴을 제대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말이 죽어간다는, 죽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헐레벌떡 내려갔을 때.
좁은 마방에서 부들거리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히든이를 보며 깨달았다. 이 말은 너무 외로웠구나. 내가 이 말을 외롭게 했구나. 그것은 방어였다. 내가 처분권을 가지지 않는 말, 내 읍소와 내 고집과 내 사랑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없는 말에게 정을 주는 짓, 그 고통과 슬픔뿐인 지긋지긋한 노릇을 안 하고 싶었다. 이미 충분히 많이 했다. 한 번 겪을 때마다 상처를 받고 영혼은 깎여나갔다. 그래서 항상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었다. 나 스스로를 위한 그 행위는 그러나 히든이에게 곧 방관이었고, 무관심이었고, 고독이었다.
주인이 "법인"인 말의 임종은 누가 지키나. 누군가 한 명은 두 눈 똑바로 뜨고 말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었다.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말에 다음날 새벽에 다시 내려갔다. 제대로 된 주인 하나 없는 말처럼 쓸쓸히 죽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기를 쓰고 가고 또 갔다.
그러나 히든이는 버텼다. 하루가 이틀이, 이틀이 나흘이 되고, 어느새 2주를 넘겼다. 앙상하고 위태로웠지만 여전히 삶을 이어나갔다. 그런 히든이를 보며 희망과 절망을 무수히 오갔다. 나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절망이, 그러다 생각을 가다듬으면 희망이, 그러나 다시 내려가는 길에는 불안이, 눈앞의 히든이를 보면 또다시 절망이 반복되었다.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인사를 해버리면 영영 끝일 것 같아서, 포기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까 봐 버티라는 말만 했다. 그러다가 사과를 했다. 그다음에는 부탁을 했다, 다시 태어나면 꼭 우리에게 한 번만 다시 와달라고. 그때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너를 대하지 않을 테니까 속죄하고 바로잡을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마지막으로 보러 간 날 저절로 이 말이 나왔다. "히든아, 나는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네가 너무 힘들면 가도 돼. 만약에 가게 된다면 하디를 찾아서 안부를 전해줘. 그렇지만 만약 네가 기다릴 수 있다고 하면 내가 다다음주 월요일, 아니 일요일에 올게. 오늘부터 딱 9일이야." 그만큼 히든이의 몰골은 처참했다. "학대"와 "존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옳고 그름이라는 일반론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무엇이 히든이를 위하는 길인지 그것만을 고민했을 뿐이다. 그러나 답을 내리는 것은 어려웠다.
가위를 가져갔다. 갈기를 조금 잘라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함께 하디 유골 옆에 놓아두려고 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히든이를 쓰다듬으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가위는 꺼내지도 못했다. 행여나 하늘나라에 가서 다른 말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어쩌나. 제대로 된 주인도 없어서 갈기 하나 예쁘게 관리받지 못하고 이 꼴이라는 비웃음을 살까 봐. 내 부질없는 집착과 서운함으로 끝까지 이 말의 아름다움을 망칠까 봐.
히든이가 나고 자란 이곳 켄터키에 와서 히든이를 생각한다. 살아있나, 어떻게 하고 있나, 더 나빠졌나, 이빨이 하나 더 깨졌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면서도 뜯어다 준 풀을 열심히 씹어 먹던 모습을 떠올린다. 밥을 먹는데 어떻게 희망을 버릴 수 있을까.
그래도 히든이가 살길 바란다. 버티길 바란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루하루 이겨내길 바란다. 최소한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줄 수 있도록 그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