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여전히 불지만, 우리는 적응 중
여행하듯 사는 삶을 꿈꾸며 왔지만, 막상 텅 빈 집을 보니 조금 막막해졌다.
양양의 겨울은 삭막했다. 아니, 사실 그럴 틈도 없었다.
왜냐하면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기 때문.
알고 보니, 양양은 사람이 날아가고 컨테이너 박스가 넘어지는 바람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걸 ‘똥바람’이라 불렀고, 우리는 그 뜻을 곧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
이사 첫날밤, 똥바람이 불어닥치며 현관문이 덜컹덜컹 난리가 났다.
처음엔 “뭐야?! 도둑이야?!” 하며 깜짝 놀랐지만,
가만 들어보니 도둑이 아니라 바람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도둑보다 더 무섭다.)
그렇게 창문이 흔들리고, 문이 요동치는 집에서, 우리는 미니멀한 삶을 꿈꾸며 첫날밤을 보냈다.
그러나 현실은 빈방과 똥바람뿐이었다.
짐을 최소한으로 가져온 건 좋았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다는 것.
주방 도구, 밥상, 책상, 옷걸이, 수납장...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아... 이건 있어야 하는데...”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입장에서 새로 사는 건 뭔가 배신(?)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있는 자원으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이웃들이 나눠준 물건, 중고 거래로 구한 것들,
그리고 버려진 나무 수납함까지 깨끗이 닦아 화장대로 활용했다.
조금씩 살림이 채워지면서, 우리는 단순히 짐을 들이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얻은 낡은 교자상 하나.
이 순간만큼은 비싼 다이닝 테이블보다 더 소중한 보물이었다.
비록 오래된 상이었지만, 드디어 밥을 차려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
배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농촌 생활을 시작했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이전에는 “뭐 먹을까?” 하면 배달 앱을 열면 됐는데,
이제는 “뭐 먹을까?” 하면 직접 만들어야 했다.
결국, 요리를 해야만 했다.
요리의 ‘요’ 자도 모르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인생 최대의 요리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가 만든 음식은 뭐든 맛있게 먹어주는 동반자가 있었다.
덕분에 요리 실력도 늘었고, 결혼 초 새색시 시절 허둥대며 요리하던 감성이 떠올랐다.
(단, 그때보다 확실히 맛있어졌다는 점이 다르다!)
난방을 해도 집은 여전히 춥고, 도시의 편리함은 없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점점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좋은 물건들로 집을 채우지 않아도, 시골의 불편함이 있어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불편함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은 우리가 농어촌 유학을 선택한 이유를 아이의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건 우리 가정을 위한 결정이었다.
우리는 결혼 11년 차 부부.
언제부턴가,
손을 잡고 걷지 않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고,
무관심을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 착각했다.
서로 힘들어도, 싸우기 싫어서 그냥 피했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삶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똥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양양의 바람은 여전히 강하다.
창문을 흔들고, 문을 덜컹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이제는 그런 소리도 익숙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