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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Jun 11.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여름 방학

8090 뜨겁게 그리웠던 그 시절의 여름방학 이야기.

 

"혹시 포켓몬 빵 이전에 국진이 빵 있었고,

파리바게트 이전에 뉴욕제과가 있었다는 걸 아시나요?"


심서현 기자


IMF가 연일 뉴스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굴지의 건설회사에 다니시던 부모님도 구조조정 앞에 속수무책이셨다. 지금은 파리바게트가 있다면 그 시절엔 뉴욕제과가 있었다. 케이크를 빙그르르 돌리며 바르는 이국적인 생크림 냄새는 어린아이에게 확신의 냄새였다. 금방 재기할 줄 알았던 부모님의 사업은 바뀔수록 점차 영세해졌다. 거실 한편 아버지의 장식장에는 해외출장에서 사 온 LP판과 세로로 쓰인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장식 장 안에 색색깔로 모아 둔 로열살루트 양주병이 하나 둘 사라지며 대신 에메랄드빛 소주병이 마당 한편에 쌓이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부모님은 새로 시작한 사업에 은근한 기대감을 보이는 눈치이다. 혼자서 밥을 꺼내먹고 학원을 갈 수 있는 언니는 집에 남기로 결정했다. 막내인 나는 돌봄의 손길을 위해 친척집에 맡겨졌다. 일명 메뚜기 작전. 돌봄과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맞벌이 부모에게 방학은 커다란 부담감이었다. 아이들은 방학을 맞아 무언가 커다란 이벤트를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지만 애써 외면하는 부모들의 눈빛엔 고단함이 묻어나곤 했다.      


어느 여름은 대리석이 깔린 강남 초호화 저택에서 보냈다. 페르시아에서 볼 법한 양탄자 수술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엔틱 가구의 둥근 곡선과 옹이를 손바닥으로 매만지면 반질하고 차가운 기운이 좋았다. 고모는 집을 자주 비웠다. 그 커다란 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와 어린 내가 번갈아가며 어색한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적막한 고독감이 스멀스멀 차오르던 여름의 끝자락에서 현관문이 열렸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가 웃으며 양팔을 한껏 벌렸다. 그때 익숙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을 비집고 나온 초라한 배신감이었다. ‘우 씨,,, 나 혼자 여기 남겨두고,,, 지금 행복카냐,,,?’     


또 다른 여름 방학은 최전방 지역 연천에서 보냈다. 머리를 곱게 쪽지고 한복을 입으시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가 “삼촌”이라 부르던 할아버지가 집을 개조해 살고 계셨다. 전에는 화장실이 없어 비닐하우스 속 두 개로 엎어놓은 판자 위에 볼 일을 보았다. 하우스 안의 열기와 암모니아 냄새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큰 일을 볼 때 뒤척이던 똥돼지의 발굽소리였다. 삼촌 할아버지가 살고부터 한옥집에 현대식 샷시와 주방이 들어왔다. 변기를 갖춘 화장실을 보자 나는 반가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할아버지의 품에서는 쾨쾨한 책방 냄새가 났다. 오래되어 빛바랜 책들이 할아버지 방 안을 나뒹굴었다. 가구라고는 별로 없는 방 안에 장구와 꽹과리 등 농촌에서 볼 법한 물건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직함을 맡고 계셨다. 고된 농사일을 쉬이 술로 풀던 사람들 사이에서 책만 붙들고 사시던 할아버지는 나름 지식인이셨다. 할아버지는 축 처진 눈매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으시곤 했다. 살짝 느리고 어눌한 말투 속에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재치가 담겨있었다.


말 수가 적으셨지만 행동에서 따뜻함이 뚝뚝 묻어났다. 하루는 어린아이가 더위에 입맛이 없을까 봐 물이 찰랑한 논바닥에 바지를 걷고 들어가셨다. 골뱅이 만 한 논우렁이를 잡아와서 솥에 끓여주셨다. 초고추장을 푹 찍어 입에 넣고 숭덩 씹자 이 사이로 달큼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따뜻한 할아버지는 왜 아직 짝이 없을까...’     



할아버지는 잠시 마을 일을 도우러 가고 동네 아이들과 재인폭포에 갔다. 매해 여름 봐 온 아이들은 언제 만나도 똑같았다. “왔냐?”, “어!”, “뛰러 가자!” 높은 곳에서 벼락처럼 떨어지는 물줄기들이 다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할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아이들은 뛰어내리기에 적당한 바위를 골랐다. 제일 센 녀석이 먼저 의기양양하게 뛰어내렸다. 바위에서 내려다본 계곡 물은 짙은 진녹색이었다. 계곡 표면에는 시커먼 제비나비가 저승사자처럼 훨훨 날아다녔다. 하나 둘 뛰어내리고 차례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콩콩 뛰었다. 마치 몸 밖으로 멀리 줄행랑이라도 치려는 듯이. ‘여기서 뛰어내리면 저 초록 괴물이 집어삼킬지도 몰라...’     


도시에서 왔다고 얕잡아 보는 게 싫어서 오기를 내었다. 코를 꽉 쥐고 뛰어내렸다. 수면 위로 나오자 저쪽에서 낯익은 신발 한 짝이 떠올랐다. 손을 물속에 넣고 더듬거리는 데 발가락이 만져졌다. 물살을 타던 신발을 잡으려고 쫓아가다 그만 이끼로 덮인 바위를 밟고 휘청거렸다. 귓속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터졌다.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조류 만난 기분이 들었다. 물가에서 멀어지던 작은 몸은 빨대처럼 수면 위로 솟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 중이었다.     


결국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에게 구조되었다. 급하게 연락을 받은 부모님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시던 부모님의 뒷모습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왠지 모를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 여름방학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이를 먹고 제법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자 더 이상 방학에 시골은 가지 않게 되었다. 에어컨 냉기로 서늘한 학원에 앉아서도 종종 할아버지랑 거닐던 산길을 떠올랐다. 해무처럼 하얀 안개가 잔뜩 낀 야생 숲에 나무들은 초록색 이끼 옷을 입고 서있었다. 가끔은 할아버지가 쳐주시던 꽹과리 소리가 귓속에서 찰그락 울리곤 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 나는 할아버지의 결혼 소식과 부고 소식을 함께 전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첫눈에 반한 아가씨가 나타났다고 한다. 수수하고 인상 좋아 칭찬이 자자했다. 결혼 후 아가씨는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셔서 경제적인 도움을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조금씩 모아 온 통장을 하나 둘 헐어 사랑하는 아내의 가족을 살리는 데 쓰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사라졌다. 그즈음 뉴스에서는 시골총각을 울리는 꽃뱀 뉴스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술을 입에 셨다. 짙은 초록병 안에 든 소주를 꿀꺽 삼키며 술이 인생을 삼키는 걸 묵묵히 바라보셨다. 자신을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진녹색 계곡 속으로 서서히 걸어가신 걸지도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름방학이면 작은 몸을 할아버지에게 의지하던 어린아이는 이제 곧 마흔이다. 신도시에 조성된 천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아파트 숲 속에서 시커먼 제비나비 한 쌍이 날개 짓을 하며 날아갔다.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보내던 여름방학 추억도 함께 날아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는다. 사랑하던 고마운 한 사람을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하는 법이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해 본다. 나는 떠나간 사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책을 좋아하고 자연에서 산책과 사색을 즐기던 할아버지의 유산이 오늘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상상을 해본다. 떠나간 사람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작은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곧 다시 여름방학이 우르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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