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각쟁이 Jun 14. 2022

그 여름날의 선풍기 그리고 일력

더 이상 아이스커피가 선택이 아닌 계절, 여름이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는 낡은 물건들이 살았다. 꼬부랑 할머니의 세월만큼이나 낡아 무디고 빛바랜 소품들. 무더운 여름날 풍경을 바라보면 어쩐지 그곳에서 기억이 되살아난다. 거기에는 촐랑촐랑거리던 어린아이가 여름과 손잡고 함께 살았다.


#1. [일력]


손때 묻은 벽지 위에 하얀 일력이 걸려있었다. 양 날개가 슬며시 들린 일력은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일주일 내내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풀이 죽어 축 쳐져있곤 했다. 나가 놀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해가 중천에 뜨고 땅 위 그림자마저 열기에 살금살금 사라지면 갓 구운 김처럼 바삭하게 살아나곤 했다. 한 장, 한 장 들뜬 마음 사이에 바람이 풀썩거렸다. 언젠가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달아나기를 꿈꾸기라도 한 듯. 여기서 잔인한 현실은 볼일이 급한 가족들이 일력을 한 장씩 뜯어 구기며 화장실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일력의 못 이룬 꿈은 창문 밖에 눈송이가 떨어지고서야 깨어났다. 더 이상 펄럭일 수 없이 초라하게 몇 장 남지 않고서야 새해가 왔다. 희고 고운 일력으로 다시 채운 가족들이 둘러앉아 희망과 기대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일력은 매번 다시 태어날 수 있어 좋겠다, 치~’ 그때의 일력은 새로 산 가전제품처럼 위풍당당했다. 다가올 우리들의 삶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2. [선풍기]


할머니 집에는 오래된 선풍기가 있었다. 회전 버튼을 누르자 고개를 돌릴 때마다 ‘투둑’ 소리가 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풍기 고개는 자꾸 주저앉았다. 꼭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사람 같았다. 손으로 올리고 ‘끼익’ 다시 내려가 올리다가 ‘끽’ 마침내 땅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곤 했다. 마음속 자신감이 모두 꺼진 날의 누군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굽은 할머니의 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갑자기 불려 나간 학교에서, 홀로 꾸려온 빠듯한 세간살이를 정리하며, 잠든 네 아이들의 머리맡을 지키며 할머니는 자주 고개 숙인 여인이 되곤 하셨다.


‘자존심을 누르고 돌아온 날에도 자식들을 먹일 끼니 걱정을 하셨겠지...’


불행 중 다행인지 낡은 선풍기는 끈질기게 강인했다. 매해 여름방학 할머니 댁에 돌아오면 선풍기부터 확인했다. “강풍” 바람을 내어주는 신형 선풍기를 기대했건만 결과는 언제나 “아기바람”을 솔솔 내어주는 낡은 선풍기였다.


진정으로 강인한 건 오래 남는 법이다. 값싼 유행처럼 돌지 않고 우직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자존심으로 칼날을 세우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지금 가진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이제 곧 아흔이다. 주말마다 자식들은 각자 할머니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싸들고 옛집에 모여든다. 할머니의 세간살이를 보며 자식들이 거꾸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신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들의 일그러진 여름 방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