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의 꿈.

엄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by 지각쟁이

<은유 엄마와 조개구이>


약이 바짝 오른 숯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따뜻한 양철지붕 위에 젖은 빨래를 말리듯 조개들이 일제히 불판에 몸을 널고 있다. 딸깍 열린 조개 사이로 다져 놓은 청양 고추와 모짜렐라 치즈를 얌전히 올린다. 창문 밖에서 밀려오는 바다의 짠내음에 고소한 치즈향이 더해진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조개구이냐 ~ 꿈이야 생시야~'


아이를 키우고 부터 식탁 위에서 굽고 찌는 음식들과 아쉽게도 이별을 해야만 했다. 오랜만에 바다의 해풍을 맞으며 구워 먹는 조개구이라니 꿈만 같다. 조개 껍데기 위에서 팔팔 끓고 있는 조개를 나무 젓가락 사이에 집어 들고 후후 불어 초장에 찍는다. 입에 넣고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온다. 소주 한 잔 을 부르는 깔끔한 맛이다.


'빠~지직~'


집은 해감을 도대체 어떻게 길래...크고 실한 돌덩이가 씹혔다.


순간 입속 안으로 혀를 굴려보는데 매끄러운 질감이 심상치 않아 꺼내 보았다.


'이거 웬걸! 진.... 진주잖아! 세상에 조개구이 먹다가 진주를 발견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우지~끈~"


그 뒤로 다른 조개들을 골라 먹을 때마다 개암을 깨무듯한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테이블 위는 조개에서 나온 보석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진분홍색의 루비와 물방울 모양의 사파이어 그리고 바다 빛을 닮은 오팔까지 색색깔의 작은 보석들이 도깨비방망이로 두드린 듯 불어나고 있었다.


'우와~~ 내 눈으로 보아도 도저히 못 믿겠는걸.. 설마 이거 꿈 아니야...?'


[ illustrated by Kimi ]


혹시나 싶어 이글거리는 화로에서 펄펄 끓는 조개를 꺼내어 맨손으로 만져보았다. 오미~ 미적지근하다... 얼른 조개구이집 문을 드르륵 열고 길가로 뛰어나왔다. 두 발을 모아 무릎을 굽히고 도움닫기를 준비했다. 지금 있는 곳이 꿈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점프를 하는 것이다. 꿈속에서는 늘 공중부양을 하곤 하니까. 앞발가락과 허벅지에 힘을 잔뜩 주고 땅을 차내며 푸른 상공을 향해 힘껏 뛰었다.


나른해진 기분과 함께 발 밑에 땅이 멀어지고 있었다.


'서.... 성공이다!! 아~~ 뭐야 꿈이었잖아~~'


나른해진 몸은 하늘을 부웅~날고 있었다. 어릴 적 꿈에서는 한 걸음에 백두산을 뛰어넘고 팔을 휘저으면 세계여행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딘지 어설프다. 꿈속에서 나잇살이라도 쪘는지...어른 키 높이 밖엔 날지 못한다. 마음은 예전처럼 신나게 날고 싶은데 사람들의 머리가 자꾸만 발 차여서 걸리적거린다. 결국 허공에서 수 많은 머리들을 피해 사뿐사뿐 걸어야만 하는 신세가 되곤 한다.


오랜만에 하늘을 날며 바닷가 경치를 둘러보았다. 오솔길처럼 조그만 오르막길 옆으로 꺾어질 듯한 벼랑이 펼쳐져있다. 그 아래에서 파도가 능글맞게 넘실거린다. 멀리 있는 푸른 바다는 고요해서 떠있는 배들 조차 멈춘 듯하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동굴 하나가 보였다.


텔레토비와 호빗이 살던 마을처럼 작은 동굴 위에는 푸른 잔디와 꽃나무로 뒤덮여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회백색 암석들이 석회동굴처럼 펼쳐져 있었다. 천장에는 푸른빛의 오팔 보석들이 은하수처럼 박혀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채우던 시골의 밤 풍경을 닮았다.


'이.. 이게 다 뭐지? 누가 동굴 속에 뷔페라도 차려 놓은 걸까? '


동굴 안을 휘젓고 다니다 보니 한 쪽 벽에 음식들이 천장까지 높게 쌓여있었다. 김밥과 떡볶이 순대와 돈가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김밥은 크기가 남다르게 컸다.


소풍날 아침이면 참기름 냄새로 온 집안을 솔솔~ 풍기며 엄마가 싸주셨던 그 대왕 김밥을 닮았다. 친구들의 도시락에는 늘 한 입 크기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김밥들이 갖은 기교를 부리고 있었다. 내 도시락은 뚜껑을 열자 주먹 크기의 투박한 김밥들은 마치 자리가 없어 싸운기라도 한 듯 빼곡히 차있었다. 턱뼈에 힘을 주고 한 입 가득 넣어 우물우물 먹던 김밥은...엄마가 만들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충만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맛이었다.


'어차피 꿈속이니 오늘은 다이어트 걱정 없이 배 터지게 먹어볼까~~~? '



배가 찢어지는 듯한 포만감이 느껴진다. 오랜만이었다. 이 흥미로운 꿈에서 깨기 전에 얼른 동굴 구경을 더 해야겠다. 깊이 들어갈수록 천장에서 흘러내린 석순들이 호랑이의 앞니처럼 날카롭고 괴기하게 뻗어있었다. 한 참을 거닐다 보니 동굴의 높이가 점차 낮아졌다. 고개를 숙인 채로 통과해야 했다. 잠시 후 눈 앞에 푸른 에머럴드 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동굴 호수가 나타났다. 나무로 된 나룻배에는 한 아저씨가 노를 들고 서있었다.


마녀처럼 검은 옷을 입고 비쩍 말라 해골을 연상하게 하는 아저씨는 내 손을 맞잡고 배로 이끌었다. 아저씨의 손길이 닿자...죽은 이의 영혼처럼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겅충 뛰어 올라타자 오래된 나룻배에서는 뼈가 삐걱삐걱 대는 소리가 났다. 아저씨는 늙수그레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지금부터 일곱 개의 방으로 출발합니다."


노가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자 배 위에 켜져 있던 기름 등불은 바람에 흔들리며 힘 없이 꺼져버렸다. 깜깜한 어둠이 내리자 으스스한 분위기가 더해졌다. 배가 기우뚱거릴 때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느라 바빴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두 발로 걸어가야 합니다. "



<일곱 개의 방>


배가 땅에 닿자 나는 도망치는 죄수처럼 서둘러 내렸다. 다시 마주한 동굴을 따라가다 보니 일곱 개의 방이 나타났다. 마치 교도소의 단체 면회실을 연상케 했다. 일곱 개의 방 건너편에는 나이 든 중년 여성 일곱 명이 등을 돌린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의자에 앉은 몸 위로 나무뿌리가 덩굴처럼 감싸고 있었다. 덩굴은 여인의 눈을 가리고 귓속으로 스며들어 아무것도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 illustrated by Kimi ]


이 여성들의 등 뒤에는 젊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성별과 나이가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서 나이 든 여성을 향해 핏대를 올리며 토로 중이었다. 사람들은 의자 위의 여성들을 '엄마'라고 불렀다. 이십 대의 한 남성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보세요. 지금 내 인생이 엄마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어릴 적 엄마는 늘 말했죠. 우리 집안의 장남이 제대로 서야 집안이 잘된다고요. 동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누구보다 열심히 살라고 늘 명심하셨죠. 저는 엄마 말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모든 시간을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살아왔어요. 어릴적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도 할 수 없었어요. 하고 싶은 장래희망도 접고 엄마가 원하시는 공무원 준비를 하는 중이죠.


그런데 말이죠 엄마.

난 지금 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건지 혼동되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모르는 채로 빈 수레만 공허히 끌고 있는 말 신세가 되었어요. 사람들이 절보고 번아웃 증후군이라네요. 인생이 고갈되었다는 뜻이죠. 이제 아무것도 해낼 힘이 없는 것만 같아요. 전... 엄마가 원하는 대로 전부 가지치기당한 관상용 식물이 된 기분이에요."


여섯 개의 방 끝에 남은 한 칸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뒤돌아 앉은 여성의 굽은 등이 낯익었다. 팔꿈치에는 어린 우리들을 돌보느라 밥 한 끼 먹을 새도 없던 엄마가 라면 물에 덴 화상 자국이 찌글찌글 주름져 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


"엄마.. 제가 이곳에 오면서 들었어요. 일곱 개의 방에서 서운함을 이야기하면 씻은 듯이 사라진대요. 그래서 말인데요...


둘째로 태어난 나는 마음속 한 구석에 늘 서운함이 있었어요. 사람들 말로는 카인 컴플렉스래요. 출생순위의 차별에 따른 내면의 갈등이 생긴다나요.


엄마는 항상 첫째부터 키워야 한다 주의였지요. 엄마의 두 눈과 귀는 늘 언니를 향해있었어요. 가고 싶은 학원도 옷도 전부 첫째부터였지요. 내게는 입다만 원피스와 귀퉁이가 닳은 헌 책들만 내려올 뿐이었죠. 제게 있어 세상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투쟁을 해야 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치열하게 살다 보니 눈치라는 녀석이 자라서 뭐든 금방 스스로 익히고 배우기를 시작했죠.


엄마의 공평하지 못했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쓰라려요. 내 인생은 쓰지 못한 채로 매달려있는 스패어 타이어 같았거든요. 그 시절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나 봐요. 어린 마음에 나보다 억센 삶을 살아내는 엄마를 더 걱정하느라 털어놓지 못한 채 숨기고만 있었어요. 미안해요... "


[CLEAR]


말을 끝마치고 나자 벽에서 붉은 버튼이 솟아났다. 마치 버스에서 하차할 때 누르는 동그란 버튼을 닮았다. 검지 손가락을 펴고 꾸욱 눌러본다. 순간 온 몸이 주춤 흔들릴 듯한 지진이 느껴졌다. 갑자기 엄마의 발 밑을 지키던 땅이 두 덩이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열린 땅 속에는 아까 조개들을 굽던 시뻘건 숯들로 이글이글 가득 차있었다.


"엄마~~~~~~~~~!!! 악~~거긴~안돼~~!!!!! "


엄마는 불구덩이 속으로 힘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의자 네 귀퉁이 중의 다리 하나가 돌부리에 부딪혀 돌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시퍼렇게 쪽빛으로 물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목구비가 없는 푸른 천 조각이었다.


엄마를 닮은 인형은 숯불 위에 닿자 찢어진 틈 사이로 모래를 쉴 새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유치원생 은유의 일기>

오늘 우리 엄마가 어딘지 수상하다. 아침부터 식은땀을 흘리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유치원을 지각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갑자기 가훈이라는 걸 적기 시작했다.


"우리 집 가훈. 스무 살 이후부터 엄마 탓 금지"


어떤 작가가 그랬대요. 가족이란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은 존재라구요. 따뜻했던 가족들도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나 봐요.


헌데 울 엄마가 그랬어요. 스무 살부턴 자기 인생은 본인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래요. 그러니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라나요.


혹시 스무 살 지난 삼촌들, 이모님들 아직도 엄마 탓하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요?


오늘부터라도 더 열심히 살도록 노력해봐야 할까봐요.


그럼 다음편에서 또 만나요.



글. 지각쟁이.

그림. 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