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 반점.

수상한 중국집의 숨겨진 비밀.

by 지각쟁이

<산 정상을 오르다.>


우리 가족은 산으로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반달곰이랑 사진도 찍고 일곱 살 인생 처음으로 케이블카도 탔습니다. 문이 열리자 무지개 요정들처럼 울긋불듯한 등산복 차림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창문가로 돌진을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던 나는 회전문처럼 갈 곳을 잃다가 아빠의 허벅지에 매미 신세가 되었습니다. 케이블카 안은 설렘과 흥분의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콩나물처럼 빼곡히 실어진 우리들은 바쁘게 산 정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와~~ 산 정상이 이런 곳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나의 짧은 두 다리 덕분에 오르지 못한 정상을 늘 상상해 보았습니다. 운전하는 아빠 등 너머로 지나던 산 위의 풍경은 포근한 잔디가 뒤덮인 산할아버지가 마치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산할아버지의 뻥 뚫린 두 개의 콧구멍같은 터널을 지나갈 때면 캄캄한 밤이 내리는 마법이 나타납니다.


산 정상의 풍경은 박치기 공룡 파키케팔로 사우르스의 머리처럼 딱딱한 바위들이 사방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빛을 올려보다 보니 하늘을 향해 줄달음치는 뾰족한 나무들도 보입니다. 몇 발자국만 옮기면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이 나타납니다. 그 위를 위태롭게 서있는 한 아저씨가 보입니다. 숯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닮은 뿔테를 쓴 아저씨. 그의 안경알이 햇볕을 반사해 반짝입니다. 축 처진 어깨와 팔작지붕 같은 눈썹을 하곤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크게 숨을 몰아쉽니다. 무언가 고민이 있나 봅니다.


케이블카로 내려가기 전에 화장실에 왔습니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한옥 화장실에는 거미줄이 쳐져있어 왠지 으스스합니다. 변기 안에는 거품 괴물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 빠지면 엄마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뒷간 귀신이 해코지하며 똥통에 빠뜨리기 전에 서둘러 쉬야를 끝내고 나옵니다. 옆칸에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구슬처럼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이름을 소리쳐 부릅니다.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닙니다. 설마 뒷간 귀신의 짓일까요...?


잠시 뒤 화장실을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어깨에 둘러맨 왕골가방 밖으로 불쑥 튀어나온 무언가가 보입니다. 비쩍 마른 단풍잎을 연상시키는 수상한 물체는 어린아이의 손을 빼닮았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마법처럼 사라진 아저씨는 반짝이는 검정 뿔테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동 실종 예방 교육시간에 배운 바로 그런 납치범인가 봅니다.


"은유야~ 케이블카 탈 시간이 다되었는데 어딜 돌아다니는 거야. 어서 서둘러 타야지."


우리는 거대한 산 정상에 매달아 놓은 빨랫줄을 타고 빗방울처럼 빠른 속도로 내려왔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도 빠르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산에 다녀오니 뱃속이 왠지 허전합니다. 아빠는 붉게 물든 하늘을 보고 있으니 얼큰한 짬뽕 한 그릇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나는 재빨리 짜장면에 탕수육 추가를 외쳐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는 중화요리 집으로 목적지를 변경하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자동차는 엎질러진 딸기우유처럼 분홍빛 하늘을 지나 커다란 산 할아버지의 콧구멍 터널 속으로 들어갑니다. 경찰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다가 이내 환상적인 광경의 무지개 터널이 나타났습니다. 무지개를 보니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으신 아주머니들의 수줍은 미소가 떠오릅니다.



[ illustrated by Kimi ]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드디어 중국집에 도착했습니다. 적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앞에는 커다란 계수나무가 잎을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중국집 사장님들은 붉은색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세월을 거스른 듯한 원목 현판에는 적색 글씨로 24시 육두반점이라 적혀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육두반점입니다."


불투명한 통유리가 끼워진 알루미늄 샷시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갔습니다. 밀가루가 묻은 손으로 무심히 면을 수타하던 아저씨가 인사를 건네 옵니다. 나는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기도 전에 잽싸게 주문한 요리를 기다립니다. 맛집으로 티브이에 출연한 아저씨의 사진이 벽에 가득히 붙어있습니다.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검정 뿔테를 낀 아저씨를 발견하곤 경악합니다.


'혹시 산 정상에서 본 유아 납치범 아저씨가...?!! 여기 육두반점 주인이라고??'


어찌 된 일인지 차근차근 생각을 하다 보니 등골이 저릿저릿합니다. 갑자기 오줌보가 급히 만남을 요청합니다. 잘 달군 불판에 콩을 볶는 속도로 빠르게 화장실을 다녀오는데...주방 한 켠에 딸린 쪽방에서 불빛이 세어 나옵니다. 마음은 눈을 질끈 감고 지나치려는데 두 발이 이미 방문 앞 도착했습니다. 열린 틈으로 들여다봅니다.


아빠의 턱수염처럼 짧고 빳빳한 털로 뒤덮인 작은 동물이 어기적 어기적 돌아다닙니다. 두 개의 발톱이 장판과 부딪히며 엄마의 구두처럼 또각또각 소리를 냅니다. 촉촉하고 둥그런 코로 침을 묻히며 부지런히 쑤셔대는 걸로 보아 아기돼지가 틀림없습니다.


'혹시 아까 사라진 그 아이가..? 돼지로 변한 거야???'


순간 헨젤과 그레텔처럼 길 잃은 아이들을 잡아다가 동물로 바꾼다는 망태기 아저씨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얼른 이 사실을 어른들에게 알려야겠습니다. 나는 용수철처럼 튕겨져서 엄마와 아빠가 담소를 나누던 테이블로 돌아왔습니다. 아뿔싸! 한 발 늦었습니다. 아저씨는 뿔테 안경 아래의 비뚤어진 입술사이로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음식을 나르고 있습니다.


기본찬으로 단무지와 간장 그리고 짜샤이가 나왔습니다. 곧이어 붉게 타오르는 낙조를 닮은 짬뽕이 나왔습니다. 닭 육수에 죽순과 무, 홍합 그리고 재워둔 닭다리살을 넣은 짬뽕 위에는 문어가 왕관처럼 올라가 있습니다.


"어익후~ 진한 국물이 얼큰한데 뒷맛은 깔끔하네~거기다가 건더기까지 실하다니. 이렇게 만들어 팔면 뭐라도 남을까. 주인분이 건물주라도 되시나요."


아빠는 머리 사이로 송송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휴지로 찍어내며 맛있게도 짬뽕을 흡입합니다.


마법 가루를 넣은 듯 반지르하게 윤기가 흐르는 짜장면이 나왔습니다. 그 뒤로 아기 새의 솜털처럼 하얀 튀김옷을 입은 탕수육이 나왔습니다. 엄마는 공중에서 부리로 먹이를 낚아채듯...젓가락으로 탕수육 한 뭉치를 빠르게 집어 입에 넣습니다. 바삭바삭하던 튀김옷은 엄마의 턱에서 찹쌀 특유의 쫀득한 소리로 바뀝니다. 잘린 탕수육의 절단면에는 핑크빛 육질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옵니다. 다이어트를 한다던 엄마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다시 집어 들기를 반복하며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엄마 아빠의 먹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주인아저씨의 안경 속으로 눈물 두 방울이 상기된 볼을 타고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 illustrated by Kimi ]

<육두반점 주인의 비밀>


"오늘 저희 가게는 마지막 영업을 합니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요리를 그릇에 담았습니다. 너무나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바라보니 그동안 고생해왔던 세월이 머리 위를 흘러가더군요..."


아저씨는 열린 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려는 감정을 주워 담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사실 육두반점의 시작은 24시 포장마차였습니다. 관광지와 유흥가를 떠돌며 휘황찬란 불야성의 밤이 되면...얼큰히 술에 취하거나 마음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달빛 아래에서 해장 국수를 말아서 팔았습니다. 해 두 해 공들이며 장사하자 달밤의 국수 맛을 잊지 못한 손님들이 친구들과 가족들을 물고 되돌아오기 시작했답니다. 한 푼 두 푼 국수를 팔아 모은 돈으로 메뉴를 보강해서 이곳에 육두반점을 오픈했답니다. 이열치열 더위와 싸우고 장대비가 쏟아지면 무너질까 걱정하던 포장마차와 달리 요리에만 몰두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맛 잠행단이라는 수상한 사람들이 홀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손님들찾아오게 되었답니다. 저희 가게 음식은 자극적으로 맵거나 달지 않아 세대를 뛰어넘을 맛집이라나요... 그게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건물주인이 나타났습니다. 길게 줄이 늘어선 손님들을 숨어서 잠행하던 건물주는 번쩍번쩍한 검정 세단을 타고는 떠나버렸습니다. 걸려온 전화기 너머로 더 이상 계약 연장이 어렵다고 통보를 하더군요. 조물주 위에 악덕 건물주가 있다고 하던가요. 이 자리에서 건물주의 아들이 상호명만 다른 짬뽕집을 오픈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더군요. 지금까지의 수고에 억울함이 몰려오지만... 저는 처음 마음가짐을 되품고 포장마차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애용해 주신 손님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렵사리 말을 끝마친 아저씨는 가게 이전 장소가 그려진 전단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안경을 벗자 토끼처럼 새빨개진 두 눈이 퉁퉁 부어있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애완용 미니돼지 육두가 아저씨의 신발 옆에서 안아달라며 끙끙대고 있습니다.


오늘 부로 아저씨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아마도 건물주라는 녀석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망태기 할아버지나 뒷간 귀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무서운 녀석인가 봅니다. 어른들에게도 아직 무서운 괴물이 남아있다니... 녀석에게 해코지당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약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해 봅니다.


"조물주 위에 악덕 건물주 덤벼랏! 착한 사람으로 바뀌는 마법 물약을 연구해왔다! 이얍~ 받아랏!"




글. 지각쟁이.

그림. 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