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마법 물약 레시피>
오늘은 유치원 친구한테서 마녀의 마법 물약 레시피를 받아왔다. 자그마치 반짝이는 색종이를 다섯 장이나 주고 얻어왔다. 친구는 찜통 속의 감자를 고구마로 바꾸는 마법에 성공했다고 한다. 호박 꿀이 줄줄 흐르는 노란 고구마는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줄줄 흐른다. 제발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조심스럽게 실험을 시작했다. 우선 양치컵에 물을 찰랑찰랑하게 받는다. 놀이터에서 뜯어 온 계란 프라이 모양의 개망초 꽃과 새우과자를 넣는다. 가장 중요한 건 잠자는 아빠에게서 뽑아온 다리털 하나를 물약 위에 퐁당 띄운다. 마지막으로 따끔하게 매운 어른 치약을 듬뿍 짜 올린 후 칫솔로 양치컵 안을 휘이 휘이 빠르게 젓는다. 신성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운다.
'서.. 성공인 것 같다!'
보글보글 거품 괴물이 묵은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듯 컵 위로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참, 얼른 소원 빌어야지...'
'마녀님, 우리 아빠를 포근한 뽀송이 아빠로 만들어 주세요! '
"은유야~화장실에서 안 나올 거야? 엄마 요기 집 앞 미용실 다녀올 테니까~ 아빠랑 아침밥 먹고 있어~"
[ illustrated by Kimi ]
<은유 생각>
요즘 나는 우리 아빠가 걱정됩니다.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치열한 하루를 살아내는 아빠는 마치 날카롭게 날이 선 쌈닭 같습니다. 아빠가 운전을 할 때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바짝 독이 오른 발톱과 화려한 벼슬을 휘날리는 쌈닭이 달려드는 것 같습니다. 까만 승합차 한대가 갑자기 우리차 앞 유리로 순간이동을 하였습니다.
"저런 천하에 더러운놈..갑자기 칼치기를 하고 들어오면 어떡해!! 은유야 괜찮아? 다친데없어? 내 저걸 잡아다가 뼈를 발라다가 아주 아작을 내줄테다......(아빠의 동공이 커지며 콧구멍이 벌렁벌렁 거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우리 가족이 회식하는 날이었습니다.
한 주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걸 축하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유치원 급식처럼 엄마의 서툰 집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뜯으러 갔습니다. 이곳의 주인아주머니께서 직접 칼로 포를 떠서 만드는 수제 갈비의 달인이라고 합니다. 달인의 맛집에 간다는 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꾹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키워야 합니다.
달콤 짭짜름한 간장 과일소스에 절여진 고기를 불판 위에 올릴 때면 치~치~ 마음속의 기차가 소풍을 떠나기 위해 기쁨의 경적을 울려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받아 든 아빠의 얼굴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거립니다.
"돼지갈비 먹으러 왔지 누가 목살 먹을라고 삼십 분 씩이나 줄 서서 들어왔나. 나원 참. 여기 주인아주머니 나오시라 그래!"
순간 아빠의 뒤통수에는 붉고 오돌오돌한 벼슬이 조금씩 자라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뭐든 뱃속에 집어넣고 싶었던 내가 말했다.
"아빠, 우리 그냥 이거라도 빨리 먹으면 안 될까? 돼지 목살은 비타민 대마왕이라서 아빠처럼 지치고 피곤한 사람이 먹으면 힘이 난데. 돼지들이 이 뚱뚱한 목살을 키우느라 살면서 한 번도 하늘을 바라본 적 없다고 하더라. 너무 웃기지?"
관심 돌리기 작전이 실패했다. 아빠는 이미 식당 아줌마랑 결판에 나설 기세로 신경질적으로 벨을 누르고 있었다. 엄마가 아침에 보는 TV드라마에서는 김치로 싸대기를 날리던데... 호...혹시나 싶어서 돼지 목살이 넓게 펼쳐져 있는 고기 접시를 꼭 붙들고 있었다.
"아이고~이런 죄송해요! 손님들이 갑자기 몰려드는 바람에 호호호~ 물량이 부족해서 돼지 목살도 같이 쓰고 있어유~요즘 젊은 사람들은 갈비보다 목살을 더 좋아해서 내가 일부러 챙겨준 건데...왜 바꿔줘유? 내가 얼른 갈비로 바꿔주게 조금만 기다려요~ "
갈비 달인 아주머니는 알고보니 꼬리가 아홉 개 달린 백발마녀였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약한 손님들만이 묵묵히 앉아서 갈비양념이 발려진 목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우리 아빠처럼 삐죽삐죽 까칠한 사람들에게만 갈빗살로 바꿔주었다. 그날 아빠의 고된 전투 승리하였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보돌보돌 기름기가 골고루 밴 갈비를 상추쌈에 올려 호호~ 불어먹었다.
누구의 삶인들 고단하지 않을까요. 나는 가족을 위해 일부러 악역을 도맡아야 하는 아빠의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러다기... 고슴도치같이 뾰족뾰족한 우리 아빠를 꼬옥 끌어안아주고 싶습니다.
<뽀송이 아빠로 변신>
화장실에서 마법을 건 후 아빠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먼지날린다고 잔소리 할 엄마가 없으니 마음껏 아빠에게 이불 썰매를 태워달라고 해야겠습니다. 평소에는 핸드폰 알람 소리가 공습경보라도 되는 듯이 일어난 아빠는 총알처럼 회사로 날아갑니다. 오늘은 주말 아칩입니다. 아빠는 어쩐일인지 배터리가 방전된 인형처럼 영 일어나질 못합니다. 굼뱅이처럼 이불을 뚤뚤 말고 아직도 자고 있습니다.
"아~ 아빠 지금 김밥말이 놀이하는구나! 그럼 내가 올라타 줘야지 으흐흐흐~ 이랴이랴~~"
"아야..아야.. 으으윽...."
김밥처럼 잘 말아진 이불속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이불을 뒤져보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불속에는 아빠의 늘어난 흰색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만이 죽은 동물의 가죽처럼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빠가...사라졌습니다. 잠시 동안 랙걸린 화면처럼 멍한 상태로 있다가...갑자기 마녀의 물약이 떠올랐습니다. 마법이 성공했습니다. 예상했던 바와 조금 다르지만 말입니다.
보송보송한 아빠를 만들어 달라는 나의 주문은...아빠를 이불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 illustrated by Kimi ]
시한폭탄의 남은 시간을 알리는 시계 소리가 귓속에서 점점 크게 울려옵니다. 째각 째각. 이제 곧 엄마가 집으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사자의 갈퀴처럼 부푼 머리를 하곤 거울 앞에서 예쁘냐는 질문을 늘어놓을 게 뻔합니다. 일단 아빠를 숨겨야겠습니다. 급한일이 생겨서 회사에 나갔다고 둘러대야겠습니다. 두근두근 요동치는 마음에 이불을 이리저리 끌고 돌아다니다가 식탁 위에 엄마가 차려둔 아침밥을 발견했습니다.
'아빠가 밥 안 먹고 나간 걸 알면 화낼 텐데...'
밥공기에 찬물을 콸콸콸 부어 수저로 밥알을 갈라냅니다. 밥 한 술을 떠서 반찬을 올립니다. 단단함이 사라진 자리에 짠맛과 단맛이 가득 배인 오이지를 오도독 오도독 씹으며 아빠를 꼭 되돌려 놓겠다고 결심 합니다. 사각 접시 위에는 계란 프라이 두 덩이가 남았습니다. 뿌지직~ 케첩을 잔뜩 뿌리고 포크로 찍어 입으로 빠르게 나릅니다. 아뿔싸...!!!
포크에서 미끄러진 계란 프라이가 느리게 식탁 위 상공을 날아갔습니다. 내가 들고있던 흰 이불 위에 안착했습니다. 아빠 이불은 이내 빨갛고 노란 꽃들로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안돼에~~~~아....아빠아~~~~!!!!"
엄마가 돌아와서 얼룩 묻은 아빠 이불을 보면 빨래통에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를게 뻔합니다. 우리 아빠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이 집에서 얼른 아빠를 데리고 피해야겠습니다.
"띠~띠띠~띠~문이 열렸습니다."
아뿔싸! 엄마가 돌아와 버렸니다. 이럴 땐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쳐봅니다.
"어.. 엄마! 아빠는 급하게 회사 나갔어! 나도 놀이터 나가서 좀 놀다 오게!!" 아빠를 꼭 끌어안은 나는 몸을 숙인 채로 전속력으로 달려 나갑니다.
"어머.. 어머!! 얘가 신줏단지 모시듯이 이불은 왜 싸들고나가!!! 이번에는 애착 이불 놀이라도 하는 거야?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보고 웃겠네 너 빨리 이불 들고 안 들어와~~~!!"
엄마의 킹콩 같은 목소리가 닫힌 엘리베이터 문 사이를 찢고 들어왔습니다.
놀이터로 가는 길에는 인공 호수가 흐르고 그곳에 돌다리가 놓여져 있습니다. 아빠를 들고 달리다 보니 팔은 점점 무감각하고 힘이 빠집니다. 하늘에는 쨍쨍한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들은 이내 소나기로 바뀌었습니다. 비를 먹고 무거워진 이불 아빠를 안고서는 도저히 돌다리를 건널 수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게 다 나 때문이야...그런데 이대로 아빠를 포기할 순 없어...!'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남은 힘을 쥐어짜내며 건너가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엉망이 된 아빠를 바라봅니다. 잠시 후 눈 앞의 풍경이 뿌옇게 흐려집니다. 나의 뜨거운 눈물은 차가운 빗방울과 함께 떨어지며 물웅덩이에 고인 무지개를 뒤흔듭니다.
"흐엉~~ 아빠 미안해! 난 아빠가 쌈닭이 된다고 해도... 삐죽삐죽한 고슴도치 아빠가 된다고 해도 난 괜찮아... 그러니까 제발 원래 내 아빠로 돌아와 줘..."
아빠를 꼬옥 끌어안고 주저앉은 은유는 한 없이 비를 맞으며 그 작은 어깨를 들썩들썩입니다.
"은유야~~?얼른 일어나! 오늘은 아빠랑 조조영화 보러 가기로 했던 거 기억 안 나? 아빠가 팝콘 티켓도 함께 사놨는데... 얘가 오늘따라 늦잠이네..어구~이녀석 머리는 왜 이렇게 불덩이야...은유야 괜찮니? "
무슨 이유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꿈속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일어나 보니 아빠가 보였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서러움이 마음속에서 울컥 울컥 올라왔습니다.
아빠는 두 팔로 나를 꼬옥 끌어안고서 연신 이마를 짚어가며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냅니다.
나는 아빠의 품속으로 안겼습니다.
아빠한테서 좋은 냄새가 납니다.
엄마가 꽃잎을 넣어 빨아서 햇볕에 바삭바삭하게 말린 이불에서 나는 뽀송한 향기가 납니다. 아무래도 친구에게 받아온 마녀의 마법 물약이 제대로 성공한 것 같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늘어진 아빠의 흰 러닝셔츠 허리춤을 꼭 움켜쥡니다.
오늘, 우리 아빠는 뽀송이 아빠입니다.
글. 지각쟁이.
그림. 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