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서 주로 어떤 도구를 이용하시나요?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가 있었다. 이 이상한 병은 어느 의사도 고치지 못했다. 수줍은 아이는 친구들의 시선과 말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다. 또 한 명의 아이가 있었다. 늘 재채기를 달고 사는 아이였다. 이 희한한 병은 고칠 수가 없었다. 이 둘이 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만남은 점차 위안이 되어갔다. 어느 날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친구처럼 온종일 재채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재채기를 하는 아이는 햇볕에 몹시 그을린 날 친구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행복했다. 얼굴이 빨간 아이는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철을 좋아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조리 빨개졌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장자크 상페의 [ 얼굴 빨개지는 아이]이다.
바닷가를 찾게 되는 여름이 돌아왔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눈을 뜨고 해질녘이면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뜨거운 대낮의 열기를 피해 해질녘이면 부지런히 산책을 나갔다. 선선한 바람 덕분에 아기는 유모차에서 초저녁 잠이 들었다. 뽀얀 아기 피부에 주황빛 노을이 물든다. 아기를 바라보다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를 떠올렸다. 지금쯤 흐믓한 얼굴이 되어 온통 노을빛으로 붉은 사람들 사이를 신나게 비집고 다닐 것만 같았다.
오후 일곱 시. 집으로 돌아오니 창 밖에 어둠이 깔리고 있다. 언제나 이 시간이 되면 밤을 맞이하는 의식을 시작한다. 이성을 환하게 비춰주던 형광등을 끄고 감성을 밝혀줄 주광색 스탠드를 켠다. 방에도 하나 거실에도 하나. 집안 곳곳이 주황빛으로 물이 든다. 캔들 워머를 딸깍 켜자 열대과일과 꽃향기를 뿜어대는 향초를 녹기 시작한다. 하루의 긴장감도 솔솔 녹아든다.
언젠가부터 스탠드를 의식적으로 켜왔다. 스탠드를 켜자 마음이 어두운 날들을 밝혀주었다. ‘집안을 비추는 지지 않는 태양’을 향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어 감사함을 보낸다. 주광빛 전등은 집안 사물들에 비추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 그림자는 낮동안 잃어 버렸던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주광등 아래에서 혼자만의 사색이 시작되면 나는 늘 한 뼘 더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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