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드신가요?
어릴 때 친구들과 모이면 불장난을 하곤 했다. 장소는 주로 으슥한 골목이나 뒷산. 행인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너는 아빠가 담배를 피우니까 라이터를 챙겨오고, 너는 집에 불쏘시개 할 만한 게 뭐있나 뒤져보고, 나는 가서 깡통을 구해올게.” 그때는 길거리에서 다 쓴 분유통이나 페인트 통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과자봉지나 다 쓴 연습장을 한 장씩 떼어 구겨 넣을 때마다 현란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가슴속에서 따뜻한 무엇인가 꿈틀대고 있음을 우리는 모두 느낄 수 있었다.
하루는 시골 할아버지댁에 방문했다. 북한을 코앞에 둔 휴전선 인근 시골마을이었다. 그 날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척들로 할아버지네 마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마도 잔칫날 이었나보다. 마루에 다 앉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마당 여기저기에 은박 돗자리와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상을 차렸다. 남자들은 개울가에 나가서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왔다. 부엌에 있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건넨 묵직한 냄비를 받아들곤 눈썹을 찌뿌리면서도 깻잎과 들깨가루를 넣고 얼큰하게 탕을 끓여냈다. 시골 앞마당에 어둠이 내릴수록 잔치는 고조되었다. 누군가 틀어놓은 카세트 리듬에 맞춰 막걸리에 취한 어른들이 춤을 추자 아이들이 따라 추기 시작했다. 은박돗자리에 흰 양말을 신은 발을 비빌수록 춤은 현란해졌고 발바닥에는 금방 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마당 옆에 덤불을 수북히 쌓아 올려 불을 피우셨다. 시골에서 피우는 천연 모기향이라고 하셨다. 공기 중에 춤추는 하얀 연기와 진한 나무 향기가 더해지자 잔치는 무르익어갔다.
요즘 나는 종종 집에서 향을 태운다. 불장난을 하던 어린 시절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피워주신 시골집 모기향을 떠올리게 한다. 키즈카페도 놀이공원도 없던 그 시절 향 피우는 법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불장난을 덜 했을까. 아닐것이다. 그때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할수록 더 좋았으니까. 그럴수록 자꾸 어른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모험과 충동의 시절을 지나 나이를 먹을수록 이제 위험한 건 되도록 피하고 싶다. 안전하고 따뜻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간다. 하늘이 찢어질 듯이 천둥치는 날에도 집안에 앉아 향초를 켜면 온 세상에 걱정과 시름이 사그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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