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드신가요?
나도 모르게 노랫말을 흥얼거릴 때가 있다. 마치 머릿속에 라디오가 막 켜진 것처럼 낯설다. 또 어느 날은 잊고 살던 사람의 냄새를 떠올리기도 한다. 기온이나 날씨, 태양의 고도, 주변 환경이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비언어적 기억이라 한다. 멜로디, 소리와 소음, 냄새, 맛과 감각, 이미지, 모형 등을 저장하고 복구해내는 능력이다. 나에게 있어 기억이란 주로 말소리와 글자의 형태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왔다. 되돌려보기에도 편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로 전할 수 있어 즐겁다. 반면 비언어적 기억은 동물적이고 감각적이다. 과거에 느낌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날 때면 이를 정확히 표현할 언어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뒤틀린 시공간은 잠시 나를 과거로 되돌려 놓는다.
아기들은 흥미로운 물건을 보면 우선 입속에 넣어본다. 빨고 물어보며 사물의 감각을 저장한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기억에는 소리와 촉감만이 존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날 입었던 새 옷과 가방의 촉감, 한 여름철 허공에 울려 퍼지던 소리들 말이다. 창문 밖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자주 공놀이를 했다. 발등이 공에 압력을 가할 때 펑하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두부 장수의 종소리와 콩나물 장수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테잎이 울릴 때면 엄마들은 지갑을 꺼내들고 현관문을 밀고나갔다. 그중 어린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건 커다란 트럭의 박물장수였다. 하울에게 움직이는 성이 있다면 우리 동네에는 움직이는 마트가 있었다. 어떻게 쌓아올렸는지 모를 트럭 위에는 나무 도마와 뒤집개, 채반 같은 주방도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더욱 신기한 건 필요한 걸 말만 하면 아저씨는 한 번에 꺼내오는 백만불짜리 기억력의 사나이였다.
어떤 날에는 집 앞에 이동식 도서관이 찾아오기도 했다. 겉에는 관광버스처럼 생겼지만 계단을 오르면 영락없는 도서관이 펼쳐지곤 했다. 손가락으로 책등을 스치며 고르는 순간에도 나는 자주 멀미를 경험하곤 했다. 비록 정차해있지만 버스에서 나는 방향제 냄새는 과거의 멀미를 실어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동안만 골목길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동식 도서관은 어린아이들에게 책을 향한 호기심과 애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무료하고 심심한 날이면 손수 찾아와주던 이 깜짝 친구의 방문이 가끔은 그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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