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떡볶이

명치가 쓰리고 소화가 잘 안 되시나요?

by 지각쟁이

응답하라 1988에 덕선이는 쌍문동에 살았었다. 그곳 풍경이 나의 어릴적 동네와 닮았다. 딸각고개를 오르면 하늘과 닿을 것 같은 봉천동과 세련된 부자아이들이 살던 흑석동 중간에는 상도동이 있었다. 한 판에 담긴 30구의 계란처럼 집안 사정이 비슷한 중산층 아이들이 모여 살았다. 아빠의 외벌이로도 커다란 양옥집을 사고 차도 살 수 있었던 시절, 한 번 직장이 평생 한 가족을 먹여 살리던 시절이었다.


벽돌로 지어진 이층집에는 철대문과 조그만 앞마당이 있었다. 앵두나무와 포도나무가 자라고 줄에 묶인 강아지가 짖어대는 곳, 그런 환경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웠던 동네였다. 좁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옥집들이 주루룩~마주앉았다.


한 동네 이웃사촌이라는 말처럼, 우린 서로를 잘 알았기에 잘된 일을 함께 축하해주고, 물론 배도 아파하고, 걱정거리 또한 나의 일인 양 서로 나누었다. 동네의 골목길은 두 눈을 감고도 돌아다닐 정도로 익숙했다. 그런 평범한 주택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얼마 전 자식이름으로 불리던 이모의 이름이 “떡볶이아줌마”로 바뀌었다. 드르륵 올라가는 셔터 문이 달린 주차장이 간이분식집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투명하게 씌워놓은 비닐 천막에 김이 서려 뿌옇게 변해갈때면 군침 도는 음식냄새가 흘러나왔다.


구멍이 송송 난 찜기 위에서 비닐이불을 덮고 진땀 흘리던 순대양, 대쪽 같은 성품을 구불구불한 어묵살에 숨기고 있던 오뎅꼬치 총각, 앙칼지게 매운 잔소리를 찰지게 뿜어내는 떡볶이 아줌마, 뽀얗게 튀겨내진 올망졸망한 야채 튀김들...어린 나는 그 곳에 늘 함께하고 싶었다. 떡볶이 가게를 지나다닐수록 주머니 속에 용돈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리곤 얼마 못가 바닥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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