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가 쓰리고 소화가 잘 안 되시나요?
가끔 이 세상 속 시간이 빨라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아니면 하루가 짧아지는 걸까. 일상 속에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차오르면 마치 4대째 내려온 재래식 된장 장인이 된 기분이다. 메주가든 된장 항아리에 묵직한 뚜껑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열고 닫아야 하는 삶 말이다. 하늘과 맞닿은 너른 마당에는 바위 위에 앉아 쉬는 물개처럼 장독들이 숨을 쉬고 있다. 하나 같이 가만히 앉아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바지런히 뚜껑을 열고, 해 떨어질 때 도로 닫는다. 그런데 요즘 뚜껑을 열은 기억과 닫은 기억은 있는데 그 중간이 기억나질 않는다. 왜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밤에 수면을 취한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비슷하다. 잠을 자는 동안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기 위해 하루 동안의 기억을 처리한다고 한다. 분리수거를 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장기기억으로 보내고, 반복되는 일상들은 지우거나 지하실 어딘가에 저장된다. 하루 일과가 잘 기억나지 않았던 이유는 요즘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칠 줄 모르는 코로나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는 일상에 점점 지쳐가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는 사실상 가택구금이 내려 진거나 마찬가지다. 타지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전화기 화면으로 만나도 아쉬움이 사그라들지 않는 눈빛이다. 코로나는 “함께”라는 빛나는 문화를 빼앗아 갔다.
사람들은 각자 하나의 떠도는 섬처럼 살고 있다. 고명한 선비나 부와 권력이 있던 죄인을 유배지에 보내 여생을 살게하는 귀양살이가 떠올랐다. 평생 유배지을 벗어나지 못하는 감옥 없는 징역살이가 지금의 우리의 신세랑 다를 게 무엇일까. 때 아닌 역병의 창궐은 부와 권력이 없는 일반 평민들에게도 귀양살이를 살게 했다.
고려시대 이자겸은 영광법성으로 유배를 갔다. 하루는 그곳에서 나는 조기가 맛이 있어 왕에게 진상을 올렸다. 왕이 그 고기의 이름을 물으니 이자겸은 생각 끝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라고 한 것이 지금의 법성포 굴비이다. ‘그래, 코로나에 굴하지 않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자.’
재래식 된장 항아리의 뚜껑을 닮아 묵직한 원형 무쇠 철판을 꺼내었다. 아기를 다루듯 기름을 살살 둘러 불 위에 얹었다. 냉동실에는 마침 굴비 옆에 칵테일 새우 한 봉지가 들어있었다. 마침 요리하고 남은 마늘은 종지에 담겨있었다. 새우와 마늘을 기름에 졸이는 스페인식 전채요리 감바스 알아히요를 해봐야겠다. 스페인어로 감바스(gambas)는 새우를, 아히요(ajillo)는 마늘소스를 뜻한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조리법은 간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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