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한 켠에 풍경을 걸어요

아침에 일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편인가요?

by 지각쟁이

제철 식자재로 지은 따뜻한 밥을 먹고 나면 스님들의 발우공양을 떠올리곤 한다. 발우공양은 차려진 모든 음식이 낭비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배는 부르고 조금 눕고 싶은데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매미와 잠자리 그리고 하루살이와 선풍기처럼 날개달린 모든 것들이 분주해지는 여름이기 때문이다. 여름철은 부엌일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자칫하면 물곰팡이나 하루살이와 함께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집안을 정리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나는 이상하게도 설거지는 만큼은 피하고 싶다.


우리 집 주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다. 창문 너머로 큰 도로를 지나면 도심 속에 산이 있다. 창문을 열자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흙냄새가 진동을 한다. 집안과 이질적인 공기는 차가운 습기와 향기를 머금고 있다. 청량한 공기덕에 절로 흉광을 들어올려 숨을 들이쉬게 만든다. 금세 머리가 맑아진다.


이 조그만 주방 창이 때로는 액자가 되기도 한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변하는 바깥 풍경과 채도에 따라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운수 좋은 날에는 작은 새와 잠자리가 날아와 놀다가곤 한다. 전에 살던 집은 창문을 열면 바로 앞집 창문이었다. 창문끼리 서로 훤히 보여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조그만 창 하나가 주는 삶의 해방감이 얼마나 큰지 이사 온 후 알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며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코끝을 자극하는 꽃내음을 맡는 일은 지나칠 수 없는 삶의 기쁨이 되었다.


주방 창문의 주된 역할은 환기이다. 거실 베란다와 서로 바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집안의 공기를 순환시킨다.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은 건조대에서 세척을 마친 식기들을 뽀득하게 말려주기도 한다. 주방 집기류들 사이에서 티 안나게 묵묵히 일하는 친구가 있다. 바로 수세미이다. 가족과 아이들의 입속으로 들어갈 수저나 밥공기를 닦아주는 고마운 친구이지만 관리를 잘 못하면 세균들이 증식하는 온상이 된다. 주기적으로 끓인 물에 식초와 베이킹 소다를 넣어 소독해주면 좋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바로 ‘일광소독’이다. 조그만 집게를 이용해서 주방창 한 가운데 걸어둔다. 바람이 살랑살랑 오가며 수세미를 말려주고 햇빛이 말끔하게 소독해준다. 다음에 쓰려고 집었을 때 수건처럼 뽀송하다. 코바늘 뜨개로 만든 동그런 수세미. 가끔은 창문에 해가 뜬 자리에 수세미가 개기월식처럼 겹친다. 우리집 부엌창에는 황금빛을 발산하는 말간 수세미 해가 뜬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수세미 햇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창 밖으로 빠르게 노을이 진다. 가장 보잘 것 없지만 영웅적인 일을 하는 수세미. 늘 바쁘게 움직이는 수세미처럼 부지런하게 살고 싶어진다. 차가운 바람 한 점이 불어와 그릇을 말리고 노동하는 이의 땀을 말리자, 어수선했던 감정들은 어느새 깨끗이 사라졌다. 이러다 언젠가 설거지도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이어지는 글과 그림이 궁금하시다면 신간 [엄마의 삶에도 문진표가 있나요?]를 구매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감바쓰는 장인정신으로 졸이는 거야